그 시절의 인도 여행
아요디아에서 기차를 타고 데라둔까지 꼬박 16시간이 걸렸다. 역에 도착한 건 이른 아침이었다. 다음 목적지인 다람살라로 가기 위해 가이드북에 적힌 대로 오토릭샤를 타고 데라둔 시외버스터미널 ISBT(Inter State Bus Terminal)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다람살라행 로컬버스는 하루에 한 대뿐이었다. 이 버스를 놓치면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 다행히 출발은 오후 12시라 시간이 남았다.
2월의 북인도는 예상보다 훨씬 추웠다. 두툼한 패딩을 껴입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표를 끊고 터미널 의자에 몸을 웅크린 채 쪽잠을 청했다. 씻지도 못해 얼굴은 퀭했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정오가 되자 버스는 정확히 출발했다. 등받이도 젖혀지지 않는 나무 합판 의자, 덜컹거리는 차체. ‘과연 이걸로 다람살라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먼저 들었다. 기사에게 대략 몇 시간이 걸리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짧았다. “트웰브 아워스.” 도로 사정과 버스 상태를 생각하면 그 이상도 충분히 각오해야 할 여정이었다.
2005년의 데라둔 버스터미널의 모습과 다람살라로 향하던 로컬 버스
데라둔을 떠난 버스는 찬디가르, 쉼라를 거쳐 다람살라로 향했다. 로컬버스답게 ‘안 서는 곳이 없는’ 버스였다. 도시에 들어설 때마다 멈췄고, 멈출 때마다 시간은 더뎠다. 찬디가르를 지나 쉼라로 향하던 길, 결국 일이 터졌다.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런데 늘 벌어지는 일인지 기사도, 승객들도 놀라울 만큼 태연했다. 누군가는 “노 프라블럼(No problem)”만 반복했다.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인도 여행 한 달 차, 이쯤 되면 포기도 능력이라는 걸 배우게 된다. 결국 승객들이 하나둘 나서서 고장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3시간 만에 버스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진짜 시련은 그다음부터였다. 해가 지고 버스가 고지대로 접어들자, 날씨는 더 차가워졌다.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갑자기 매서운 냉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버스 뒤쪽 좌석의 창문 하나가 통째로 없었다. 그 빈자리를 통해 차가운 바람이 그대로 밀려 들어왔다. 침낭과 옷이 든 큰 배낭은 버스 지붕 위 짐칸에 실려 있어 꺼낼 수도 없었다.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버스 안은 냉동 창고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잠은커녕 의식을 붙잡는 것조차 힘겨웠다. ‘여기서 얼어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고 스쳤다. 그렇게 몇 시간을 버티는 동안, 몸은 점점 굳어 갔고 마음은 초조해졌다.
새벽 4시쯤, 드디어 다람살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다 왔다는 안도감보다 살아서 내린 기쁨이 앞섰다. 터미널 건너편에 보이는 숙소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한참을 두드리자 잠에서 깬 얼굴의 직원이 졸린 얼굴로 문을 열었다.
“500 루피.”
방값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이는 내 이틀 치 숙박비에 해당하는 금액. 게다가 새벽 4시에 체크인하면 아침 10시에 체크아웃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다행히 여행 막바지라 예산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이대로 얼어 죽을 수는 없었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몸부터 녹이는 게 먼저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두툼한 밍크 담요를 두 겹으로 뒤집어쓰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다섯 시간쯤 자고 일어나 씻으려 욕실에 들어갔는데, 수도에서 녹물이 콸콸 쏟아졌다. 결국 씻는 것도 포기한 채 최종 목적지인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로 향했다. 숙소를 나서자 눈앞에 설산이 펼쳐졌다. 이후 더 많은 여행을 하면서 더 높고 더 장엄한 설산들을 보게 되었지만, 이 순간만큼 벅찼던 기억은 없었다. 아요디아에서 출발해 다람살라까지 이어진 고행길의 고생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추위에 떨며 버티던 시간이 이 설산을 만나기 위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2021년은 내게 유난히 추운 해였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고, 많은 돈과 시간, 의욕을 잃었다. 하지만 2005년 1월 다람살라로 가던 그날처럼, 이 시련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버스 안에서 떨며 버티던 그 긴 밤도 결국 지나갔듯, 지금의 이 시간도 반드시 지나가리라. 그리고 다시, 설산을 마주하는 아침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