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만 가는 길

미지의 인도

by 비주류여행자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
Andaman and Nicobar Islands

이름만 들어도 어디 먼 곳, 낯설고 아득한 섬이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정식 명칭은 북쪽의 안다만 제도와 남쪽의 니코바르 제도를 묶은 것이지만, 여행자들은 그냥 ‘안다만’으로 불렀다. 두 차례의 인도 여행으로 북인도와 남인도를 한 번씩 지나왔기에, 언젠가 '안다만'만 다녀오면 이제 인도는 끝이라고 믿었다. 인도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확신이야말로, 지금 돌아보면 참 인도다운 착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2014년 11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과감하게 짐을 쌌다. 다시 인도로 가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안다만, 미완의 인도 여행에 마침표를 굳게 찍을 요량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뒤로도 세 번 더 인도를 찾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이번이 마지막 인도 여행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마지막이라 믿어야만 떠날 수 있는 길도 있으니까.


안다만을 처음 알게 된 건 2006년, 두 번째 인도 여행 중 오로빌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한 유럽 여행자가 내게 말했다.


“안다만은 꼭 가봐요. 인도 본토에서는 멀지만, 인도에서만 갈 수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더 특별해요.”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잠시 눈을 의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불과 150km, 미얀마에선 19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섬. 그런데 정작 인도 본토인 콜카타에서는 무려 1,200km나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감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건드렸다. 안다만은 ‘섬’이라기보다, 한 장의 지도 위에서 ‘가까움’과 ‘멂’이 동시에 성립하는 어떤 개념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먼 곳이 인도의 영토라니.


게다가 당시의 안다만은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공항은 있었지만 국제선 노선이 없어 결국 인도 본토를 경유해야 했고, 외국인에게는 별도의 퍼밋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안다만 전체가 아니라, 허가된 몇몇 섬만 제한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제약이 이곳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손쉽게 소비할 수 없는 곳, 발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허락해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곳.


안다만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늘로 날아가거나, 바다를 건너거나. 해군 출신인 나는 주저 없이 바다를 선택했다. ‘섬에 간다’는 감각을 오랜만에 온몸으로 느껴 보고 싶었다. 어둑한 밤, 갑판에 등을 대고 누워 은하수를 올려다보던 그 시간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파도는 배를 흔들고,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하늘만은 끝없이 쏟아질 듯 빛났다. 배 위에서의 그날들은 지금도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 한쪽을 조용히 흔든다.


2015년 1월 어느 날, 월 2회 운항하던 안다만행 배편이 비샤카파트남(Visakhapatnam)에서 곧 출발한다고 했다. 나는 하이데라바드(Hyderabad)에서 비샤카파트남으로 이동했고, 망설임 없이 안다만행 표를 끊었다. 그 당시 2등석 티켓은 약 6,000루피. 그렇게 2박 3일, 총 56시간에 걸친 항해가 시작되었다.


비사캬파트남에서 포트 블레어까지 운행하던 NANCOWAY 여객선
포트 블레어로 가는 여객선의 승선표 - 탑승객의 사진과 입도 허가 도장을 받아야 승선할 수 있다.


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육지와는 다르게 흐른다. 느리게, 고요하게, 그러면서도 묘하게 충만하게. 새벽녘 갑판에 나가면 숨이 멎을 만큼 많은 별과 은하수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늘에 ‘보였다’기보다는 하늘을 ‘덮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풍경이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조심스레 마음속 깊은 곳에 접어 두고, 지금도 가끔 꺼내어 본다.


비샤카파트남은 첸나이(Chennai)나 콜카타(Kolkata)보다 안다만과 거리가 조금 가깝다고 하지만, 어차피 2박 3일을 배에서 보내야 하니 체감상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은 건 배표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맸던 과정이었다. 티켓 오피스는 ‘여기쯤’이라는 말로만 존재했고, 나는 오토릭샤를 타고 항구 주변을 몇 바퀴나 헤맸다. 결국 창구를 찾아 표를 손에 쥐었을 때, 고생한 릭샤 아저씨께 100루피를 팁으로 드렸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신기하게도 고생한 건 그분인데, 보답받은 느낌은 오히려 내가 더 크게 받았다. 인도에서는 가끔 그런 ‘역전의 온기’가 생긴다.


배에 오르기 전 안다만 입도 허가 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걸 놓치면 승선 자체가 불가능했다. 작은 도장 하나가 바다를 건널 자격이 되는 순간, 여행은 잠시 ‘입국’이 된다. 짐 검사도 꽤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배는 비행기보다 느긋해 보이지만, 느긋함의 뒤편에는 또렷한 통제가 있었다.


나는 2등석이었지만, 아래층 벙커 클래스를 이용한 프랑스 여행자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곳은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았다고 했다. 닭과 염소 등 온갖 동물들이 사람들과 뒤섞여 함께 바다를 건넜다고. 여행이란 참 묘하다. 누군가에겐 불편이고, 누군가에겐 평생 잊히지 않을 장면이 된다. 같은 풍경이 서로 다른 의미로 남는다는 사실이, 나는 좋다.


긴 항해를 마치고 그렇게 나는 안다만에 닿았다.
바다를 가로질러, 별을 벗 삼아, 세상의 끝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섬 하나를 찾아서. 조금 멀고,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은 여행이었다. 어떤 곳은 너무 쉽게 닿아버리면 금세 잊히지만, 어떤 곳은 시간을 들인 만큼 오래 머문다. 안다만은 내게 그런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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