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섬에서 만난 사람들

미지의 인도

by 비주류여행자

안다만에 도착한 뒤, 나는 며칠간 안다만의 본섬 격인 포트 블레어(Port Blair)에 머물렀다. 섬의 리듬에 몸을 맞추고, 바닷바람에 생각을 말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고 나서 하벨록 섬(Havelock Island)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안다만에서 섬과 섬을 잇는 보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빠르고 비싼 사설 익스프레스 보트, 다른 하나는 느리지만 저렴한 정부 공영 보트. 단기 관광객이 아니라 장기 여행자라면 대개 공영 보트를 택한다. 시간은 비교적 넉넉하고, 돈은 늘 부족한 게 장기 여행자의 공식이니까.


내가 탄 배는 닐 섬(Neil Island)에 잠시 정박한 뒤 하벨록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도가 높이 일었다. 흔들리는 선내에 오래 앉아 있기가 답답해 선미로 나와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러다 그곳에서 오스트리아 친구인 다니엘을 만났다. 길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다. 몇 마디 오갔을 뿐인데 이상하게 말이 통했다. 나처럼 인도를 두 차례 여행했고, 오랜만에 다시 인도를 찾았다는 점도 닮아 있었다. 다니엘은 10년 전에도 안다만을 여행한 적이 있고, 이번 목적지는 닐 섬이라고 했다.


그리고 배가 닐 섬에 닿았다. 다니엘이 내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나는 하벨록행 표를 끊어놓고도, 이상하게 그에게 끌려 그를 따라 닐 섬에서 함께 내렸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즉흥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계획이 아니라 ‘끌림’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 그 우연이 때로는 여행의 결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2015_0116_104343_008.JPG
2015_0116_104926_011.JPG
언제나 반가운 닐 섬의 기억들


닐 섬에 내린 우리는 숙소를 찾아 나섰다. 다니엘이 10년 전 묵었던 숙소는 이미 고급 리조트 단지로 변해 있었고, 대신 ‘브레이크 워터(Break Water)’라는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여러 채의 코티지가 모여 있는 형태였는데, 2014년 1월 당시만 해도 하루 500 루피면 방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공동 샤워실과 화장실을 쓰는 구조였지만, 섬에서는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숙소에는 개 두 마리가 있었다. 검은 개는 ‘오바마’, 흰 개는 ‘푸틴’. 주인에게 이유를 묻자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닐 섬의 평온함과 그 유머는 어딘가 묘하게 어울렸다.


2015_0118_111940_001.JPG 2014년 1월의 Break water 게스트하우스


닐 섬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조용했다.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가로 2km, 세로 1km도 채 안 되는 작은 섬. 나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작은 섬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빠져나갈 구실이 적어서, 오히려 마음이 더 깊이 머문다.


섬 한가운데에는 작은 시장이 하나 있었다. 작은 식당과 님 섬의 유일한 주류 판매점 있었기에 그곳에 가면 닐 섬에 있는 거의 모든 여행자를 한 번쯤 마주칠 수 있었다. 섬이 워낙 작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금세 친구가 되었다. 국적도 직업도 과거도 잠시 내려놓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같은 질문으로 가까워지는 곳. 닐은 그런 섬이었다.


다니엘은 낚시를 좋아했다. 10년 전 닐 섬에서 친해졌던 어부 친구에게 주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낚싯줄을 사 왔다고 했다. 그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 했고, 우리는 함께 섬을 돌아다녔다. 결국 어부를 찾았는데, 10년 전 작은 아기였던 아들은 어느덧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바꾸고, 기억의 무게를 바꾼다.


어부는 이제 예전처럼 고기를 잡지 못한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 중국의 대형 어선들이 안다만 근처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어족 자원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바다는 늘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도 변한다. 닐의 평온 뒤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조용히 숨어 있었다.


밤이 되면 우리는 숙소에 모여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꺼내놓고, 때로는 정치와 경제, 문화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을 벌였다. 별빛이 쏟아지던 그 밤들,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대화는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작은 불빛처럼 반짝인다. 여행의 핵심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나는 그런 밤마다 새삼 배웠다.


그중에는 콜카타에서 사촌들과 함께 휴가를 왔다는 인도 친구 아미트도 있었다. 그는 은행원이라고 했다. 안다만 여행을 마치고 내가 콜카타로 향했을 때, 아미트는 공항까지 차를 몰고 마중 나와 주었다. 덕분에 나는 악명 높은 콜카타에서 무사히 서더 스트리트(Sudder Street)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 날 함께 식사를 하고, 그가 일하는 은행도 구경했다. 낯선 도시가 사람 하나로 갑자기 친근해지는 경험. 내 여행은 늘 그런 방식으로 지도를 채워왔다.


하루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닐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학교로 들어가 보았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 작은 섬의 일상은 어떤 얼굴일까’ 하는 궁금증이 내 발을 그쪽으로 이끌었다. 마침 수업이 끝난 오후였다. 아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였고, 운동장도 교실도 텅 비어 있었다. 바람만이 교정의 먼지를 가볍게 굴리고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학교는 이상하게도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책상과 칠판, 벽에 걸린 낡은 게시물들. 그 안에 아이들의 하루가, 섬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20150117_152502.jpg
20150117_153352.jpg
닐 섬의 공립학교


며칠 뒤, 닐 섬에 머무는 동안 작은 행사가 있어 다시 학교를 찾게 되었다. 그때 한 선생님이 내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비샤카파트남에서 안다만으로 올 때, 같은 배를 타고 오셨죠?”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다. 섬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한 번 스친 얼굴이 다시 나타나고, 그 우연이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진다. 나는 학생 수는 얼마나 되는지, 아이들은 졸업 후 어떤 길로 가는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등 궁금했던 것들을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의 사정과 섬의 현실,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지금은 솔직히 그 수치와 구체적인 내용이 또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꼭 ‘사라진’ 것은 아닌 듯하다. 숫자는 잊혔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남아 있다. 텅 빈 교정의 바람 소리, 그리고 낯선 여행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던 선생님의 표정. 닐 섬에서 내가 얻은 건 정보가 아니라 섬의 생활이 가진 결, 그 조용한 촉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닐 섬에서는 다니엘 커플과 영국에서 온 아저씨 폴과 특히 가까워졌다.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폴을 따라 하벨록으로 떠나기로 했다. 다니엘은 처음부터 닐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한 달을 지내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같은 섬에 있어도 각자의 여행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흘렀다.


하벨록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자세히 보니 닐에서 함께 묵었던 독일 커플이었다. 닐 섬에는 은행도 ATM도 없었다. 환전을 하거나 돈을 인출하려면 SBI(State Bank of India) 분점이 있는 하벨록까지 배를 타고 나와야 했다. 마침 배 시간이 남아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고, 닐에 남아 있는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답했다. 잠시의 만남이 지나고, 폴과 나는 그들을 오토바이 뒤에 태워 선착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안다만에서는 섬과 섬 사이만 오가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계속 이어졌다. 여행의 동선이 어느새 인연의 동선이 되곤 했다.


20150123_123358.jpg
20150123_124349.jpg
하벨록 섬에 있는 SBI은행 분점


브레이크 워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그때 만난 친구들 중 몇 명과는 아직도 페이스북으로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주소를 받아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적어두고 언젠가 다시 연결되길 바라던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를 한 번 맺으면, 그 사람의 여행 ‘이후’가 계속 삶 속에 남는다. 닐 섬의 습한 공기와 짭조름한 바람 속에서 나눴던 대화가, 몇 년이 지나도 타임라인 어딘가에서 다시 불쑥 살아난다. 기술 덕분에 여행은 분명 더 편해졌고, 반대로 예전처럼 길을 잃는 재미나 막막함에서 오는 서사는 조금 옅어졌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히 좋아졌다. 여행지에서 맺은 인연이 ‘그때의 기념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닐 섬의 해변가에 앉아 매일 웃고 떠들던 얼굴들이, 화면 너머로라도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시대 여행이 가진 새로운 온기처럼 느껴진다.

이전 09화안다만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