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좋은 음악들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길고 길었던 2010년대가 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과 소회에 잠긴 채, 지난 10년간 새롭게 등장하고 앞으로 나아갔던 음악예술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있다. 나는 “음악은 죽었다”는 옛 세대의 볼멘소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전히 좋은, 더 나은 음악예술들이 생산되고 있고,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도 시장화된 음악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는 치열한 고민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오늘날 음악예술의 진보에 대한 의문은 그것이 철저히 ‘레트로-아방가르드’라는 방법론 위에서 진전되고 있음으로부터 제기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예술의 장에서 전위의 동력은 옛 유산을 파괴하고 폐허로부터 새로운 것을 이룩하는 데가 아닌, 옛 유산에 지금의 감각을 덧칠하고 벌어진 틈을 기워내는 데에서 온다는 것이다. 가령 50년 가까이 대중음악산업을 장악했던 록 씬의 헤게모니에 대한 회의로부터 얼터너티브와 포스트 록이라는 대안적 실천론이 제시된 것은 2-30년 전의 일이지만, 이후의 전위는 이것의 실험을 반복하는 사이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새롭게 등장하고 파문을 일으키는 뮤지션들은, 수십 년 전의 전위적 방법론이었던 사이키델릭 따위를 다시 들고 와 재구성하는 것으로 대중음악산업의 진보를 상징하는 기표가 되었다. 미래적 음악의 상은 무엇이 될 것인가, 과거의 무한한 재발견에 그칠 것인가 같은 생각들이 든다.
여하튼, 지난 10년 간 우리에게 놀라운 체험을 선사했던 쉰 장의 명반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지난 10년을 다시 보며, 앞으로의 음악예술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50. Sufjan Stevens, 'Carrie & Lowell' (2015, Asthmatic Kitty)
수프얀 스티븐스는 놀라운 역량을 가진 뮤지션이다. 90년대 말부터 인디 포크 씬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증명해 왔던 그는,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현재성을 잃지 않으며 '좋은 음악'을 부단하고 꾸준히 만들어 왔다.
수프얀 스티븐스가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발매한 앨범 <Carrie & Lowell> 역시도 그렇다. 엘리엇 스미스를 연상케 하는 무덤덤하고 멜랑콜리한 인디 포크 사운드 위에서, 스티븐스는 리버브 사운드를 덧입혀가며 포스트 록과 슈게이징의 그것을 닮은 몽환적 공간을 연출한다.
49. Destroyer, Kaputt (2011, Merge)
밴쿠버 출신의 인디 밴드 디스트로이어의 9집 앨범. 80년대에 유행하던 소피스티-팝의 정취를 지시하며, 스무스 재즈의 편안하고 사색적인 바이브 위에 테임 임팔라 풍 신스 팝의 색채를 살짝살짝 덧입힌다. 달콤하고 나른한 오후의 차분함 속에서 일말의 몽환적 감각이 엿보인다.
48. Kanye West, 'Yeezus' (2013, Def Jam)
힙합의 제왕 카녜 웨스트의 근거 있는 자의식 과잉. 21세기의 '페퍼 상사'로 불리는 전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10)를 통해 힙합과 대중음악의 역사와 문법을 재정의하게 된 '힙합 예수' 카녜는, <Yeezus>에서 마침내 자신을 신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고전 R&B에서 전위적인 인더스트리얼의 소음에 이르기까지 난데없이 종횡하는 날 것의 샘플링 감각이 돋보인다.
47. Arctic Monkeys,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 (2018, Domino)
레트로와 댄디즘 페티쉬의 미학적 정점! 브리티시 인디 씬의 중심 악틱 몽키스가 자기들의 기타 팝 문법을 폐기하고 새롭게 선보인 6집 앨범. 미국과 유럽이 맞이했던 60년대 자본주의 황금 시대에 대한 선망을 건반 악기 중심의 라운지 팝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 라스트 쉐도우 퍼펫츠에서 이미 비슷한 콘셉트의 음악을 선보였던 알렉스 터너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를 위시한 SF적 인상들에 영향 받아 '달 위의 호텔(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이라는 가공의 세계를 그려 간다. 악틱 몽키스의 앨범이라기보다는 알렉스 터너의 솔로 프로젝트라는 인상이 짙지만, 그럼에도 빼어난 미감을 통해 악틱 몽키스와 인디 록 팬들을 설득하는 앨범.
46. Nine Inch Nails, 'Bad Witch' (2018, The Null Corporation)
파괴적 전자 음악 인더스트리얼을 메이저 씬에 소개했던 나인 인치 네일스의 9집 앨범. 나인 인치 네일스의 리더 트렌트 레즈너는 <Bad Witch>를 작업하며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본 작에서는 특히 나인 인치 네일스와 협업하며 전자 음악 실험을 하던 90년대 앨범들, 그리고 보위가 마지막 작품 <Blackstar> (2016)에서 선보였던 아방가르드 재즈와 앰비언트 문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학창시절 재즈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트렌트 레즈너는 색소폰 사운드를 앨범의 전면에 내세우는데, 이것이 지시하는 프리 재즈의 정취는 나인 인치 네일스 특유의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전자음들과 환상적인 부-조화를 이룬다.
45. Billie Eilish, 'When We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 Darkroom)
유투브와 소셜 미디어 등지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지도를 얻어 가던 빌리 아일리시는, 이 앨범 한 장으로 아방가르드 팝의 유망주에서 미디어와 시장의 주목을 독차지하는 스타의 지위에 올랐다. 우울을 로맨티시즘으로 재구축하는 80년대 고딕 문화가 가진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본 작에서, 빌리 아일리시는 신경증, 마약 중독, 자살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키치하게 풀어내며 밀레니얼들의 지지를 얻었다. 여전히 유망한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가, 앞으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어떻게 구축해 갈 지가 우려스러우면서도 기대된다.
44. Tame Impala, 'Lonerism' (2012, Modular)
황량한 사막 뿐인 서호주의 모래바람을 뚫고 등장한, 인디 뮤지션 케빈 파커의 야심찬 프로젝트 테임 임팔라의 2집 앨범. 데뷔 앨범 <Innerspeaker> (2010)에서 시도되었던 실험적인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 문법을 계승하고 완성해냈다. 6-70년대의 히피 록 밴드들이 선보이던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21세기에 성공적으로 소환해 낸 <Lonerism>은, 숱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43. Bon Iver, '22, A Million' (2016, Jagjaguar)
서정적이고도 급진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미국의 인디 포크 밴드 본 이베어의 커리어 속에서, 가장 일렉트로니카와 가까운 앨범. 전자 음악과 힙합의 방법론을 차용해 어쿠스틱 음악에 머무르던 기존 문법의 확장을 이뤄내면서도, 전작 <Bon Iver, Bon Iver>에서 선보였던 따뜻하고 고즈넉한 감성을 잃지 않았다.
42. Lorde, 'Melodrama' (2017, Universal)
뉴질랜드가 낳은 천재 싱어송라이터 로드를,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정점에 서게 한 작품. 오랜 연인이었던 제임스 로와의 실연 이후, 고독과 우울의 근원을 찾아 가는 사유 속에서 구상된 콘셉트 앨범이다. 일렉트로니카 리듬을 토대로 다채로운 악기들을 동원하여 공간을 맥시멀리즘적으로 채워 간 본 작에서는, 로드의 팝 적인 감각이 극한에 다다랐다. 앨범의 제목처럼, 한 편의 멜랑콜리한 멜로 드라마를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
41. Thom Yorke, 'Anima' (2019, XL)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얼터너티브 밴드인 라디오헤드의 중심, 톰 요크가 야심차게 내놓은 3집 앨범. 플라잉 로터스를 위시한 실험적 전자 음악에 매료된 톰 요크는, 본 작에서 자신의 아방가르드적 감각과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디스토피아적 근대 - 요컨대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가 추동하는 소외적 상황과 불안을, 어느 때보다도 직설적이고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작품. 이 앨범은 영화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과의 협업을 통해 넷플릭스 단편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40. Slowdive, 'Slowdive' (2017, Dead Oceans)
영국 인디 씬의 거장, 슈게이징 음악의 '개척자' 슬로우다이브가 오랜 공백을 깨고 내놓은 4집 앨범. 95년 해체 이후 2014년 19년만에 재결성한 슬로우다이브는, 오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혁신적이고 서정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다. 한층 더 아련하고 차분해진 이들의 사운드 메이킹은, 후배 인디 밴드들에게 귀감이 될 법 하다.
39. Arcade Fire, 'The Suburbs' (2010, Merge)
캐나다의 거물 인디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2010년대 대표작. 이들의 장기인 바로크 팝과 포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The Suburbs>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커리어 속에서 목가적 정취가 가장 두드러지는 앨범이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이 앨범을 작업하며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인상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앨범의 제목처럼 교외의 여유와 나른함을 지시하는 이미지들로 설득력 있게 구축되었다.
38. Aphex Twin, 'Syro' (2014, Warp)
이제는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의 상징이 된, 리처드 D. 제임스의 원 맨 프로젝트 에이펙스 트윈의 6집 앨범. 전성기의 다프트 펑크를 연상시키는 톡톡 튀는 훵크 사운드를 전위적으로 재배치하며, 2010년대의 전자 음악 씬으로 연착륙하는 데에 성공했다. 일렉트로닉 디스코를 토대로, 90년대부터 이루어지던 전자음악의 실험들 - 브레이크비트, 테크노, 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 따위의 문법들을 종합해냈다.
37. LCD Soundsystem, 'This Is Happening' (2010, DFA)
21세기 초 인디 밴드 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던, LCD 사운드시스템의 3집이자 '최후의 명반'(?). 일렉트로니카 문법으로 재해석된 포스트 펑크 음악을 구사하는 LCD 사운드시스템은, 인디 록 문화와 클럽 문화를 넘나들며 양자의 완성도 높은 접합을 이루어냈다. 한 편으로 LCD 사운드시스템은 본 작을 끝으로 해체하며, 2000년대 인디 문화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후 2015년 재결합한다.)
36. Tyler, the Creator, 'Flower Boy' (2017, Columbia)
2010년대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Flower Boy>는 힙합 씬에서 사이키델릭 미학을 가장 완성도 높게 구축한 앨범이다. 프랭크 오션을 위시한 얼터너티브 R&B의 영향 하에서, 애시드 재즈를 차용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문법은 공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다채로운 음악을 그려 갔다. 불안과 소외를 중심으로 한 주제 의식을 빼어난 전달력으로 풀어내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스토리텔링도 본작의 흥미로운 지점.
35. Grimes, 'Visions' (2012, 4AD)
근 10년을 통틀어 보았을 때 가장 논쟁적인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일렉트로팝 싱어송라이터 그라임즈에게 유명세를 안긴 작품. 80년대 신스 팝으로의 회귀와 미래적 전자 음악으로의 전진을 동시에 지시하는 그라임즈의 키치한 감각이 돋보인다. 몽환적이면서도 댄서블한, 그리고 유령처럼 우리의 귓가를 맴도는 그라임즈의 사이키델릭 미학.
34. My Bloody Valentine, 'm b v' (2013, m b v)
완성도 높은 사운드에 대한 집착으로 유명한, 슈게이징 음악의 대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3집 앨범. 97년 해체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전설로만 회자되던 밴드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케빈 실즈의 환상적인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산란하는 공간성의 음악은, 데뷔 앨범 <Isn't Anything> (1988) 그리고 밴드의 최고 역작 <Loveless> (1991)에 이어 본작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33. Solange, 'A Seat at the Table' (2016, Saint)
정갈하고 빼어난 프로듀싱과, 일렉트로니카와 소울 음악 사이에서 선보이는 다채로운 문법이 매력적인 솔란지 놀스의 명반. 아이돌 그룹 데스티니 차일드의 백업 댄서로, 그리고 데스티니 차일드의 디바 비욘세의 동생으로만 알려져 있던 솔란지 놀스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을 만천하에 보여준 역작이다. 60년대 모타운의 정취와 바로크 팝의 편곡, 그리고 컨템포러리 힙합과 전자 음악의 감각까지, 다양하고도 놀라운 모티프들이 돋보인다.
32. Arctic Monkeys, 'AM' (2013, Domino)
프란츠 퍼디난드의 부진과 리버틴즈의 해체 속에서, 위기에 빠진 영국 인디 록 씬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악틱 몽키즈 커리어의 최고작. 스트록스를 연상시키는 초기의 단순하고 충동적인 개러지 록에서, 전작 <Suck It and See> (2011)를 통해 보여줬던 스미스 풍 사이키델릭의 과도기를 넘어, 프론트맨 알렉스 터너의 음악적 페르소나가 완벽히 정립된 작품이다. 왁스로 넘긴 머리와 가죽 재킷 차림으로 선글라스를 쓴 채 담배를 피우는 알렉스 터너는 더벅머리 소년 시절의 어리숙한 티를 완전히 털어내고, 이 시대 인디 씬 최고의 섹스 심벌로 거듭났다. 조쉬 하미와 같은 스토너 록 뮤지션과 협업하며 더욱 더 끈적하고도 묵직한 댄스 록 문법을 구사하게 된 악틱 몽키스의 진보도 눈 여겨보자.
31. Swans, 'To Be Kind' (2014, Young God)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노이즈 록의 선구자로서 등장했지만 오랜 무명생활 끝에 해체했던 밴드 스완스의 재발견. 이들은 전자 음악과 포스트 록, 혹은 조이 디비전을 연상시키는 포스트 펑크의 경계 위에서 짙은 잔향의 드론 사운드를 선보인다. 떠나지 않고 공간을 방황하는 잔향들은 곧 탄탄한 긴장감으로 재구축된다. 공허를 옅고도 짙은 회색으로 색칠해가는, 컬트적 우울의 마력을 가진 앨범.
30. Daft Punk, 'Random Access Memories' (2013, Daft Life)
"우리는 디스코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디스코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80년대에, 음악 좀 듣는다 하는 리스너들에게는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디스코 음악을 무시하는 고약한 심보가 있었다. 가령 인디 록의 개척자들과도 같은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시는, 디스코 음악을 끔찍이도 싫어하여 "DJ를 목 매달아 죽여버리자"는 가사를 쓰기도 했을 정도. 디스코 음악은 한 세대가 지나 대중적 파급력을 잃어버린 후에야, 남들은 모르는 음악을 사랑하는 힙스터들의 품 안에 안기게 되었다.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디스코를 오늘날의 음악 미학으로 훌륭히 재구축해낸 것이 바로 다프트 펑크다. 본래부터 훵크 장르의 역동적인 그루브를 탁월하게 이해하고 있던 다프트 펑크는, 과거 시크와 같은 디스코 밴드들이 가지고 있던 감성 위에 프렌치 하우스 특유의 세련된 감각을 입혔다. 한 때 유행하던 베이퍼웨이브나, 요즈음 각광을 받고 있는 시티 팝의 색깔도 군데군데에서 연상된다.
29. Behemoth, 'The Satanist' (2014, Nuclear Blast)
오페스의 <Blackwater Park>(2001) 이후로, 이렇게 정석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메탈 앨범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이제는 익스트림 씬의 제왕이 된 폴란드의 메탈 밴드 베헤모스는, 확실히 무명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보다는 덜 과격한(?) 음악을 한다. 그러나 베헤모스의 반기독교적, 그리고 이교 및 악마숭배적 컨셉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베헤모스의 고유한 문법으로 남아 있다. 이 앨범에서는 기승전결의 서사에 따라 무겁고 복잡다단한 기타 리프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곡들의 장대한 서사를 구축한다. 언뜻 보면 80년대 정통 스래쉬 메탈의 정취도 느껴지는데, 그 위에서 난무하는 보컬 네르갈의 처절하고도 사악한 스크리밍 보컬은 메탈 음악의 어떤 반미학적 정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28. Flying Lotus, 'Cosmogramma' (2010, Warp)
에이펙스 트윈을 비롯한 이전 세대 IDM 뮤지션들의 인기가 예전같지 못하게 된 때에, 혜성처럼 등장한 플라잉 로터스의 최고작. 실험적 전자 음악으로서 대중음악의 전위를 지키던 IDM도 결국에는 매너리즘을 피할 수 없었는데, 플라잉 로터스는 여기에 힙합의 요소들과 후기 마일스 데이비스를 연상시키는 재즈 퓨전의 요소들을 가져와 문법의 다변화를 시도했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를 비롯한, 2010년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에게는 일종의 이정표이자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앨범.
27. Beyoncé, 'Lemonade' (2016, Parkwood)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다. 사회가 이분법적으로 조망되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정체성과 사회적 수요가 존재하는 오늘날에는 사회적 권력을 둘러싼 갈등 역시도 이러한 정체성들을 매개로 파편화되어 전개된다. 그러므로 21세기의 저항음악은, 계급을 중심으로 구성된 협소하고 기계적인 문제의식을, 인종과 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는 형태로 확장되어야 한다.
비욘세는 위와 같은 요구로부터 출발하는 21세기적 저항 음악의 상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여성과 아프리카계라는 정체성이 교차하는 자신의 차별 경험을 토대로 당당한 증언을 펼쳐 나간다. 뮤직 비디오와 앨범을 하나의 총체적 구성물로 결합해가며, 음악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비주얼 앨범'으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이 앨범의 중요한 지점이다.
26. Lana Del Rey, 'Norman Fucking Rockwell!' (2019, Polydor)
지금까지는 왜인지 모르게 저평가받던, 싱어송라이터 라나 델 레이 커리어의 정점을 보여준 앨범. 라나 델 레이의 전작들에서 드러나던, 작위적이고 과장된 면모들을 잘 털어냈다. 60년대 바로크 팝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대하지만 단촐한 현악 편성을 토대로, 이전보다 쓸쓸하고 이전보다 담담하게 노래하는 라나 델 레이. '어려운 건 모르고 사랑 얘기만 하고 싶은데', 그게 왜 이리 슬픈 일인지.
25. PJ Harvey, 'Let England Shake' (2011, Island)
브리티시 포크의 아날로그 감성과 패티 스미스를 떠오르게 하는 전위적 펑크 음악의 애티튜드 사이의 어딘가를 표류하는 싱어송라이터 PJ 하비. 30년이 넘는 커리어 속에서 여러 명반을 남긴 그이지만, <Let England Shake>는 요즘 시대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의 감성까지도 담아내며 이전보다도 더욱 세련되어진 PJ 하비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가을 공원을 산책하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비행하는 들새들을 구경하는 듯, 풍경 속을 떠도는 PJ 하비의 음성.
24. Godspeed You! Black Emperor, ''Allelujar! Don't Bend, Ascend!' (2012, Constellation)
두말 할 것 없는 2010년대 포스트 록 씬의 최고작. 음악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공감각적 체험의 경지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음들을 차곡차곡 쌓다가 일순간 터트리는 포스트 록의 전형적인 문법과는 조금의 거리가 있지만, 한 번 스스로를 발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제 자리로 파도치듯 돌아오는 소리의 벽들은 분노와 불안을 내뱉으며 우리를 새로운 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드론 뮤직 특유의 끊이지 않는 전자음, 폭압적인 헤비니스와 서정을 동시에 내뿜는 기타 리프들이 쉴 새 없이 경합하는 앨범.
23. Mitski, 'Be the Cowboy' (2018, Dead Oceans)
피치포크 비평가들과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바로 그 싱어송라이터, 미츠키의 이름을 모두에게 알린 작품. 80년대 신스 팝의 댄서블함을 키치하게 재현하면서도, 이를 어디로 통통 튈지 모르게 비틀어버리는 매력적인 문법을 구사한다. 근저에 자리하는 잔잔하고 느긋한 픽시즈 풍 기타 사운드의 완급부터,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밴드 편성을 뚫고 나오는 미츠키의 힘 있으면서도 달곰씁쓸한 목소리까지, 무엇 하나도 버릴 점이 없는 앨범이다.
22. Run the Jewels, 'Run the Jewels 2' (2014, Mass Appeal)
"마, 이게 하드코어 힙합이다!" 근 10년 간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을 장식했던 결과물들 중, 가장 직설적이고, 담백하고, 과격하고, 정치적인 앨범. 20세기 올드스쿨부터 2000년대 초반 하드코어 힙합에 이르는 일련의 감성들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지만, 런 더 쥬얼스는 그것들을 뒤로 하고 분명히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비록 비스티 보이즈가 해체했어도, 비기가 죽고 나스가 이상해졌어도, 브루클린에는 아직 런 더 쥬얼스가 있다.
21. St. Vincent, 'Strange Mercy' (2011, 4AD)
"언니, 날 가져요!" 대중음악시장에서 소비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디바'의 상을 뒤엎고, 여성 정체성을 재전유하는 '주체' 싱어송라이터 세인트 빈센트. 그는 슈게이징의 파스텔 색감과 전자 음악의 센슈얼하고도 섹슈얼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분명한 힘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낸다. 본작에서는 세인트 빈센트의 이러한 면모들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20. Vampire Weekend, 'Modern Vampires of the City' (2013, XL)
2010년대의 록 음악 비평가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바로 그 밴드, 미국 인디 씬의 핵심 뱀파이어 위켄드의 대표작. 포크와 챔버 팝 그리고 컨트리의 리듬을 적절히 수용하면서도 진보적 감각과 대중성을 잃지 않은 작품이다. 아케이드 파이어가 처음 대중 앞에 등장했을 때 선사했던 충격과 유사한 음악적 경험을 선보이는 신기하고도 대단한 음반.
19. Death Grips, 'The Money Store' (2012, Epic)
기술과 예술은 다르다.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있을 수 있고 랩 스킬이 훌륭한 래퍼가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이 모두 아티스트가 되는 건 아니다. 테크니션과 아티스트를 구분 짓는 근본적인 경계는, 고유성에 기초한 감각 세계를 체험의 영역으로 구축해낼 수 있는지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다.
이런 면에서, 데스 그립스는 테크니션이지만 그와 동시에 위대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인더스트리얼의 정동적이고 폭압적인 전자음을 토대로, 난데없이 날뛰는 샘플링과 날 것의 하드코어 랩이 뒤섞인 데스 그립스의 음악은, 우리의 상식 너머의 영역에서 예측할 수 없이 종횡무진한다. 데스 그립스의 파격적 데뷔작 <The Money Store>에서는, 힙합의 전위에 서서 실험적이고 미래적인 힙합의 상을 선보이는 데스 그립스의 천재적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다.
18. Tool, 'Fear Inoculum' (2019, Tool Dissectional)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무려 13년을 기다려야 했던 툴의 신보. (비슷한 시점, 더 후도 13년만에 새 앨범을 냈지만, 이미 은퇴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땅들이고 새 앨범도 특별할 게 없으니 신경쓰지 말자.) 새 앨범을 낸다느니 만다느니 하며 팬들을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벌이던 개새(?)들이지만, 신보는 충분히 13년을 기다릴 가치가 있었던 역작이니 용서해주기로 하자. 얼터너티브와 사이키델릭 그리고 프로그레시브를 횡단하며 '메탈 이후의 메탈' 음악의 상을 그려가는 툴은, <Fear Inoculum>에서도 특유의 스타일을 훌륭히 전개해 간다. 난무하는 변박과 그루브가 얽히고설킨 베이스와 드럼 라인을 토대로, 질주감을 가지면서도 묵직하며 복잡다단한 기타 리프,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사유에 기초한 메이너드 제임스 키넌의 정동적인 가사와 보컬이 펼쳐진다. 전작 <10,000 Days>(2006)와 유사하지만, 그 때보다도 호흡을 좀 더 길게 잡아가며 장대한 서사를 다져가는 느낌. 90년대의 툴보다는 2000년대 툴의 스타일을 계승하며 발전시켰다.
17. Arca, 'Arca' (2017, XL)
단언컨대, <Arca>는 전자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전위와 숭고미의 정점에 선 작품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아르카. 그는 혼란스럽게 떠돌고 방황하고 분절되는 디스포리아의 세계를, 끊이지 않는 불협화음의 충돌과, 음습하다 명멸하는 앰비언트 전자악기들의 공허로 그려 간다. 지옥과도 같은 실존 속에서, 우리는 이다지도 아름답게, 그리고 이다지도 고통스럽게 발작한다. 육체와의 불화는 곧 세계와의 불화이기에.
16. Beach House, 'Bloom' (2012, Sub Pop)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나 러쉬, 혹은 슬로우다이브와 같은 슈게이징의 주역들을 연상시키는, 21세기 드림 팝의 교과서와도 같은 앨범. 공간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미온의 기타 사운드와 보컬 빅토리아 르그랑의 담담한 목소리는, 마치 꿈 속의 우주를 유영하는 것과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차분하지만 우울과는 마주하지 않는, 건강한 슬로코어 음악을 지향해가는 작품이기도.
15. Grimes, 'Art Angels' (2015, 4AD)
전작 <Visions>와 함께, 대중을 그라임스의 알쏭달쏭한 매력에 빠져들게 한 명반. 동양적 팝과 서양적 팝의 감성, 그리고 싸구려 B급 키치와 혁신적 아방가르드의 문법 사이를 마음대로 횡단하는, 유쾌하고도 기괴한 싱어송라이터 그라임스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앨범이다. J-Pop 같기도 하고, 80년대 신스 팝 같기도 하고, 평범한 댄스 팝 같기도 한데, 결국은 그 무엇도 아닌 특이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14. Tame Impala, 'Currents' (2015, Modular)
21세기 사이키델릭 록의 구세주 테임 임팔라의 세 번째 앨범. 많은 이들은 테임 임팔라의 최고작으로 2집 <Lonerism>(2012)을 꼽지만, <Currents>는 <Lonerism>보다도 한층 더 진보된 음악을 선보인 작품이다.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비틀즈와 같은 선배 사이키델릭 밴드들이 가지던 몽환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는 데에 그치던 전작을 뛰어넘어, 프로그레시브 록과 리듬 앤 블루스의 다변화된 문법을 수용하며 '팝 적인 것'의 정점을 구현해낸다. 대중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다가가는, 가장 미래적인 사이키델릭 팝.
13. Kendrick Lamar, 'Good Kid, M.A.A.D. City' (2012, Top Dawg)
힙합이 가질 수 있는 서사의 힘. 앨범 커버에 적힌 것처럼 "켄드릭 라마의 단편 영화"나 마찬가지인 이 컨셉 앨범은, 폭력, 마약, 그리고 가난에 찌든 컴튼을 무대로 '도시적 삶'이 모두에게 평등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그려 간다. 웨스트 갱스터 랩의 성지인 컴튼에서 나고 자라기도 한 켄드릭 라마에게, 이 앨범은 일종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켄드릭 라마에게 '사회파' 래퍼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시작한, 호소력을 가진 역작.
12. FKA Twigs, 'Magdalene' (2019, Young Turks)
소울 음악의 문법, 그리고 트립 합과 전자 음악의 요소들을 토대로, 전위적 대중음악의 상을 오롯이 보여준 FKA 트윅스의 역작. 예수의 제자였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중심적 기독교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서사를, 오늘날 여성 억압에 대한 알레고리로 활용하며 넌지시 말을 건네는 앨범이다. 순응하는 여성성을 강요받으며 갈등해 온 유년 시절부터, 그루밍과 가스라이팅에 시달려온 여러 연애의 경험을 거치며, 폭력의 역사로서 여성의 삶을 경험해 온 FKA 트윅스. 자신의 서사를 처철하고 처연하게 증언하는 <Magdalena>는, 감정과 섹슈얼리티의 매개인 관계와 언어를 어떻게 여성의 관점으로 재구축해 갈 것인지에 관한, '재전유'를 위한 노래다. 우리의 고독과 우울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11. Radiohead, 'A Moon Shaped Pool' (2016, XL)
2010년대에 등장한 라디오헤드 디스코그라피 속의 새로운 명반. <In Rainbows>(2007)의 위대한 성취 이후 <The King of Limbs>(2011)에서는 우주로 여행을 떠났던 이들이, 일렉트로니카와 록 음악 사이를 헤매며 이룬 실험을 다시금 하나의 총체로 집대성해낸 앨범이다. 한 때에는 근대적 소외의 상황을 역설하던 라디오헤드는, 이제는 도시인들의 삶 근처를 표류하며 그들을 관망하는 것으로 주장의 문법을 바꾸었다.
10. Nick Cave & the Bad Seeds, 'Ghosteen' (2019, Ghosteen Ltd.)
<Ghosteen>을 10위라는 높은 순위에 랭크시킨 데에는 닉 케이브에 대한 내 팬심(?)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이 앨범은 닉 케이브의 커리어와 21세기 전위 음악 씬 모두에서 빛나는 성과라 할 만 하다. 정동과 죄의식, 우울과 강박의 폭력을 날 것의 형태로 노래하던 젊고 무례한 싱어송라이터 닉 케이브는, 아들을 잃는 개인적 경험에 시달리고 환갑을 넘기며 초연한 시선을 가진 노인이 되었다. 현악과 앰비언트의 서정을 배경으로, 잔뜩 주었던 힘을 이제는 완전히 빼고 노래하는 닉 케이브. 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표류하는 영혼들의 이름을 담담히 호명하는 닉 케이브의 목소리는 이다지도 먹먹하다.
9. Deafheaven, 'Sunbather' (2013, Deathwish)
이전까지 대중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메탈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충격적인 작품. 블랙 메탈의 광기와 사악한 절규를, 슈게이징의 파스텔 톤 색깔과 부유하는 공간감으로 다시 그려가는 '블랙 게이즈' 장르의 효시라 할 만 하다. 질주하는 블래스트비트의 드럼 위에서 기타는 함께 질주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몽환을 이야기할 수 있다. 광기는 이다지도 서정적일 수 있다.
8. Deerhunter, 'Halcyon Digest' (2010, 4AD)
인디 록의 이념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디어헌터의 5집 앨범. 다채로이 겹쳐진 소음이 만들어낸 특유의 질감과, 따뜻하게 다가오는 로-파이 감성, 그리고 잿빛으로 부유하는 공간감은 무채색의 우울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7. Björk, 'Vulnicura' (2015, One Little Indian)
어쩌면 우리 시대의 마지막 천재 예술가,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뷰욕의 201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 앰비언트 전자 악기를 활용하는 뷰욕 특유의 실험법을 이어가면서도, 과거보다 현악의 비중을 확장해가며 세련된 꿈의 세계를 완숙하게 펼쳐 가는 경향이 돋보인다. 뷰욕의 목소리는, 여전히 지상 너머의 것과 같은 아우라를 풍기며 고유의 세련미와 숭고미로 우리를 설득한다. 우리 세대에도 뷰욕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6. Bon Iver, 'Bon Iver, Bon Iver' (2011, Jagjaguwar)
미국의 인디 포크 싱어송라이터 저스틴 버논이, 몸 담던 밴드의 해체, 연인과의 결별과 같은 개인적 아픔을 반추하는 과정 속에서 결성한 밴드 본 이베어의 2집 앨범. 내면의 우울을 극복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을, 드넓은 로키 산맥을 그린 풍경화처럼 짙고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해냈다. 그 모든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서 앞으로 걸어가야 하기에, 본 이베어가 건네는 가슴 시린 위로는 우리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다.
5.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 (2015, Top Dawg)
특유의 백인 중심적, 보수적 사고 방식 때문에 <To Pimp a Butterfly>에 '올해의 앨범 상'을 주기를 주저한 그래미 심사위원들은 모두 나가 죽어버려야 한다. <Paul's Boutique>를 연상시키지만 시대에 걸맞게 한층 진보된 방식으로 재즈와 훵크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소리, 그리고 반인종주의라는 시대정신을 직시하는 켄드릭 라마의 시선. 나비를 꿈꾸는 애벌레로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결국 미국 사회 내에서 어떻게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가? 이를 지극히 예술적인 문법으로 훌륭히 폭로해내는 켄드릭 라마는, 이미 랩 씬의 켄 로치 같은 존재가 되었다.
4. Frank Ocean, 'Blonde' (2016, Boys Don't Cry)
피치포크 미디어에서 선정한 "지난 10년 간 최고의 앨범들" 리스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R&B 싱어송라이터 프랭크 오션의 정규 2집. <Blonde>의 1위는 피치포크 힙스터들의 호들갑과 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이 얼터너티브와 결합한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의 미래적 상을 제시하는 역작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데뷔 앨범 <Channel Orange>에서 보여주었던 프로그레시브, 얼터너티브 록의 면모들을 계승하면서도, 프랭크 오션이 가진 도시적 몽환의 감각세계를 빼어나게 직조해냈다.
3. David Bowie, 'Blackstar' (2016, ISO)
예술적 혁신과 진보의 영원한 상징, 데이빗 보위의 유작. 말년에 암과 투쟁하던 보위가, 임박한 죽음을 연극과 예술의 소재로 사용해 그것을 뛰어 넘으려던 욕망이 드러나는 앨범이다. 죽음으로부터 소생한 베다니의 나사로처럼,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영원한 아이콘이자 시대정신으로 기억되고자 한 '블랙 스타' 데이빗 보위. 야심이 넘치는 아방가르드 재즈 사운드와 금관악기들의 불협화음에서는, 죽는 날까지 치열하게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했던 보위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인생을 돌아보며 삶 너머로 묵묵히 나아가는 장대한 서사시를 통해, 대중에게 작별을 고하는 우리의 '영웅'.
2. Frank Ocean, 'Channel ORANGE' (2012, Def Jam)
틀에 박힌 리듬 앤 블루스 장르에 프로그레시브와 얼터너티브의 실험법을 뒤섞어, '흑인음악'과 대중음악의 문법을 해체한 뒤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 간 프랭크 오션의 위대한 데뷔작. 계급과 젠더에 대한 진보된 시선을 바탕으로, 빛나는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헤집고 들어가는 싱어송라이터 프랭크 오션의 빼어난 스토리텔링 능력 역시도 압권. 콜드플레이나 뮤즈 등이 라디오헤드의 아류에 불과했듯, 위켄드를 비롯한 여러 얼터너티브 알앤비 뮤지션들은 프랭크 오션의 그늘을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1. Kanye West,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10, Def Jam)
아... 물론 나도 트럼프 모자를 쓰고 뺀질거리는 '또라이' 카녜 웨스트가 꼴 보기 싫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카녜는 그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해, 그리고 특히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를 통해, 21세기 힙합의 미학을 완성했다. 에이펙스 트윈에서 킹 크림슨(!)에 이르기까지, 종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창의적인 샘플링을 보라! 장대한 서사를 탄탄히 끌어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진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조를 보라! 아카펠라와 전자 악기, 밴드 편성과 현악을 아우르며 직조된, 수려하고 빼어난 멜로디 라인들을 보라! 이러한 요소들은 21세기 미국의 도시적 삶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직면한 사회상을 다루는 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간다. 20세기에 비틀즈의 페퍼 상사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카녜의 <MBDTF>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