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팬티를 장문으로 찬양해 보겠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중에 [란마1/2]라는 제목의 만화가 있었다. [메종일각], 그리고 [이누야샤]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인 다카하시 루미코(高橋留美子)가 그린 코믹액션물이다.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과연 이 만화가 어린이가 볼만한 만화인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그것은 미뤄 놓겠다. 어쨌든 그 만화의 주인공인 란마는 원래 남자 고등학생인데 수행차 갔던 중국의 이상한 샘에 빠져 찬물에 닿으면 그만 여자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여자로 변해도 결코 여자 속옷을 입지 않는다.(사실 딱 한번 입기는 한다) 왜냐하면 원래 자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란마의 남자 속옷은 자신이 남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란마는 트렁크를 입는다.
어렸을 때 이 만화를 보면서 '여자로 변하면 저 속옷은 불편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어리석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제로 한번 입어보았다면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럼 나의 인생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실은 오버다. 속옷으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변화의 경험이 뭔가를 바꾸었을 가능성은 있다)
나는 정해져 있는 것을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바꾸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아시다시피 생각을 하는 데는 에너지가 꽤 많이 필요하다. 다른 생각할 거리도 많은데 정해져 있는 것을 바꾸려고 굳이 에너지를 쓸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내내 여자 속옷을 아무 생각 없이 입었다. 실은 정해져 있는 것을 바꾸려고 에너지를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여기서 증명된 셈이다.
여기에 대해 재고하게 된 것은 얼마 전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나면 저녁때쯤 다리가 붓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변변한 스트레칭도, 운동도 하지 않고 좋지 않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면 개선을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피하고 싶었다. 혹시 어딘가 나빠진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검색을 했다. 그때 '고관절 부근에 림프절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곳이 계속 눌리면 부을 수 있다'라는 식의 글을 보았다. 그리고 여성 속옷이 바로 그 부분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글도.
아니 내가 맹신해온 속옷이 이렇게 불건강한 옷이었다니. 이런 배신감. 게다가 이거라면 운동하지 않고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바꿔 보자. 즉시 여성 트렁크를 검색해보니 남성 트렁크와 가격 차이가 꽤 심하다. 남성 트렁크는 한 장에 천 원 대도 있는데 여성 트렁크는 오천 원 이하의 것을 찾기가 힘들다.
할 수 없다. 플랜 B로 갈 수밖에. 최근에 이만 얼마를 주고 열 장 세트로 구매했던 남편의 새 트렁크 하나를 꺼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편할 수가! 앉아 있을 때는 사실 체감되는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일어서면 이야기가 다르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이 낯설고 시원한 느낌. 물론 남성과 여성의 사타구니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보통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 사이즈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겁니다. 이걸 보시는 여성분들,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다면 남성 트렁크를 오버사이즈로 고려해보세요.
게다가 이걸 입으면 그 위에 다른 옷을 덧입을 필요가 없다.(물론 집 안에서의 이야기다. 그대로 나가지는 맙시다) 작디작은 여성 삼각에 비해 많은 체적(?)을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왜 남자들이 수많은 가족들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팬티 차림을 고수하는지 깊이 공감하고 말았다. 반대로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다. 세상의 남성들이여, 이 좋은 걸 왜 이제까지 아무도 권해주지 않은 겁니까. 자기들만 독점하려 들다니.
하지만 우매한 나와는 달리 스스로 이 이치를 깨달은 현자도 있었다. 몇 년전 타계한 일본의 기키키린(樹木希林)이라는 배우가 있는데, 이분 역시 그 현자 중 한분이셨다.
근 몇 년간 물건을 사지 않았어요. 산 건 양말 뿐이에요. 친구의 남편이 돌아가신 해에 있었던 일인데, "남편이 쓰던 낙타 무늬 잠방이랑, 파일 짜임(수건과 같은 짜임)으로 된 트렁크랑 안 쓰는 게 있는데."라고 하길래 "나 줘"라고 했죠. 속옷은 헐렁한 게 좋거든요. 그래서 내 속옷은 전부 앞이 열리는 거예요.(웃음)(어디선가 넘어져서 벗겨지면?) 신경쓴 적 없어요. 부끄러워할 나이도 아니고요. 자기 좋은대로 사는 게 제일 아닐까요?
[모든 것은 흘러가는 대로(一切なりゆき), 기키키린(樹木希林), 문예춘추(文藝春秋)]
이 글을 읽었던 게 무려 몇 년 전인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를 매우 친다... 어쨌든 그렇게 트렁크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편안함 외에 또 한 가지의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원피스를 입었을 때 Y존이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속치마처럼 매끈한 맵시가 아니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그러던 중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맵시보다 편한 것만 생각하게 된 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까?' 위에 언급한 기키키린 씨 역시 저 인터뷰를 했을 때 꽤 연세가 있었고 말이다. 그때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넌 옛날부터 맵시따윈 1도 신경 안썼거든.'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난 편한 게 좋아 최고야 항상 짜릿해. 하지만 그후 허리가 망가지면서 결국 운동은 피해 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