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들이란 제목의 소설을 난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소설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고, 내용도 분명히 부분부분이나마 생각 나는데 말이다. 휘발성 기억력의 소유자라 특히 소설이나 영화는 몇 번을 다시 봐도 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하는데, 이 소설은 유독 기억에 남아있으니 더 미칠 노릇이다. 제목이 좀 다를런지는 모른다. 머리가 아닌 심장에 가시가 박혔나? 머리에 가시가 아닌 돌이 박혔나?
아무튼 그 소설을 쓴 사람은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알아본다 했다. 나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 역시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이었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은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그런 둘이 만나면, 가시가 엉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머리에 가시는 괜히 박히는 게 아니다. 아주 고약한 병이고, 불치병이다.
머리에 가시가 박히면, 가시를 빼려는 노력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발바닥에 조그만 가시만 박혀도 그건 금방 알 수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욕망 정도만 겨우겨우 해결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외의 모든 에너지는 가시에 쏠려 있다. 그 가시는 억지로 빼려 하면 오히려 더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손 놓고 있기에 너무 괴롭긴 하지만,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들은 주로 책을 읽는다. 가끔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읽는 거나 쓰는 거나 큰 차이는 없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채로 현실에 적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현실 부적응자로, 꿈 속에 산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빼낼 수 없는 가시를 잊기 위해 그들은 꿈에 몰입한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는데, 실은 그게 가시를 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알아도 알지 못해도,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진 않는다. 안다고 다 되면, 머리에 가시가 박힌 채로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고약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몰입 덕분에, 간혹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어느 한 가지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채로 현실의 편에서 성공을 이룬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꿈을 꾸다 꿈이 녹아 현실로 들어온 경우라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소설가가 된다거나, 음악을 통해 음악가가 된다거나, 영화나 연극을 통해 연출자가 되는 경우가 이런 창조적 변형이다.
문제는 이런 소수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은 그냥 책이 된다거나 음악이 된다거나 영화나 연극이 되고 만다. 현실이 녹아 꿈으로 통합된 경우다. 머리에 가시가 박히면 정신이 분열되거나 함몰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보균자인 셈인데, 더 불행한 건 균으로 인한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다른 요인이 발생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이다. 생활 능력도 떨어지고, 관계 맺는 능력도 떨어져서, 아주 많은 다른 가능성들을 안고 산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들은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들을 알아본다. 그들은 그들에게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머리에 가시가 박혔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머리에 가시가 박혀서 아직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려 노력한다. 그 짜릿한 소통들이 종종 불꽃을 일으킨다. 우리는 서로의 머리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줄 수 없다. 치유하고 구원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발견하면 한번씩 웃어주자. 가볍게 안아주는 것도 좋겠다. 아니, 그냥 고개만 끄덕여도 좋겠다. 그 가벼운 인사들로 또 우리는 살아간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