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 달이 뜨지만

그리 아름답지 않은 인생

by 안남

그녀는 이곳을 특히 좋아했다. 말하자면 동네 뒷산 같은 곳인데도 올 때마다 신기해 했고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녔다. 하늘과 구름을 넋 넣고 바라보았고, 꼬리 물며 이어지는 자동차의 흐름도 정신없이 쳐다봤다. 저 빨간 곡선이 저렇게 예쁘게 흘러주려면 차가 좀 막혀줘야 돼. 길막히는 도로 위 운전자들의 터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삶을 미적감각으로 살았다. 그녀에게 세상은 그랬다. 미술적이거나, 음악적이거나, 문학적이거나, 영화같거나.


내가 그녀의 이상형이라 했지만, 난 그녀의 이상에서만 존재했다. 현실적 문제들은 그녀의 사고엔 결코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에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늘 그녀의 결론이었다. 매사에 그렇게 심각하고 신중해서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고. 나도 이상주의자인 건 맞지만, 나는 그녀와 같이 이상 속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겐 결코 떠나올 수 없는 현실도 있었고, 진저리 나게 반복되는 일상이 있었다. 그리고 내겐 현실보다 무거운 가족이 있었다.


우리 어차피 영원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잖아, 아저씨. 운명처럼 나타난 그녀는 그렇게 우연처럼 갔다. 그녀의 삶처럼, 도레미 도레미. 발걸음도 경쾌하게. 그녀가 내게 머문 만큼 난 그녀의 마음 속에 머무르지 못했다. 내가 안내한 경치들을 그녀는 나보다 더 좋아했고, 나와 함께 있는 순간들 역시 나보다 더 즐기는 듯했고,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나보다 더 재밌게 들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늘 좋아하고 즐기고 재밌어 했다. 그녀는 순간 속에 있었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소설처럼 영화처럼. 그리고 난 언제나처럼 현실 속에 남아 있다.


그건 참 멍한 일이었다.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들은 현실만큼 멍했고 자꾸 다시 떠오르는 만큼 현실을 멍하게 만들었다. 멍한 정신으로도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그래 그건 그저 멍한 일이었다. 내가 한 건 사랑도 아니었고 내가 받은 건 상처도 아니었다.


멍한 가슴으로 그녀가 사랑하던 장소에 다시 왔다. 그녀는 저 석양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별과 해와 달에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집착했다. 그녀는 내가 소중한 것들을 보고 느낄 줄 알아서 좋다 했지만, 고개 들어 하늘을 봐야 한다는 걸 난 그녀에게 배웠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 다양한 빛의 마법이 펼쳐지는 이곳을 사랑하게 된 것도 그녀 덕분이다. 올해 가장 크다는 보름달을 멍하니 바라보며, 난 아무런 소원도 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