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취미일까

차라리 병이다

by 안남

독서가 취미라는 사람들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서는 생활이고 습관이지 취미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신적 영양 공급인 독서는 식사나 호흡에 가까운 필수 행위라는 거다. 듣고 보니 맞는 얘기다. 그래서 난 취미란에 늘 독서라 쓰지 못하고 음악감상이라 적었다. 그런데 언젠가 생각해보니, 음악도 호흡 같은 거였다. 영화감상 정도면 생존에 필요한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한 것, 즉 취미가 될 수 있겠다. 순위로 치자면 3위쯤 해당하는 영화가 취미란에 자리잡은 건 그런 소심한 까닭이다.


가만 한 번 더 생각해봤다. 백 편 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본 해도 몇 번 있는 나는 당연히 영화감상을 취미라 말할 자격이 있다. 영화로 먹고 살 것도 아니었고 밥은 못 먹어도 영화는 봐야할 정도도 아니었으므로, 아주 당당히 취미라 말할 수 있는 취미다. 근데 영화 못 보면 죽을 것 같으면, 취미라 말하면 안되는 건가? 아, 또 헷갈려 진다. 한 달에 영화 한 편도 못 보고 살면, 떳떳하게 영화감상을 취미라 말해도 되는 건가? 취미란 게 참 어려운 거구나.


다행히 세상이 바뀐 덕에, 독서는 이제 취미가 되었다. 독서가 생활이고 습관인 사람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는 아마 유럽에서 한국 사람 만날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참, 여행은 취미라 해도 좋은 건가?


취미는 목숨 걸고 하는 게 맞을까, 그냥 썰렁썰렁 하는 게 맞을까? 게임은 그럼 취미일까?


취미든 아니든 책을 읽는 사람은 줄고 있고, 그나마도 이제 책이 아닌 다른 형태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CD가 MP3에 자리를 내주었듯이 종이책도 점점 맥을 못추고 있다. 뉴스위크가 종이 잡지를 포기한 것도 벌써 이삼년 전의 일이다. 책으로 책을 읽는다는 건 이제 취향의 문제다. 손끝으로 책을 고르고, 휘리릭 한번씩 뒤적여도 보고, 책장 넘어가는 펄럭거림과 그 냄새를 즐기는 것까지가 독서다. 종이책만 책이냐 묻는다면 또 할 말 없다. 끝없는 질문에는 언제나 답변이 궁색해진다. 세상엔 참 분명한 게 없다.


사랑은 뭐라 이름붙여도 사랑이다. 상황이 어떻건 누가 뭐라건, 달라질 게 없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언제나 책을 손에 든다. 애연가들이 담배가 떨어질까봐 예비로 한 갑씩 들고 다니듯이, 독서가들은 책 한 권쯤 가방에 더 들고 다닌다. 덜컹거리는 차에서 희미한 조명에도 책을 읽는다. 휴가도 명절도, 붐비라고 만든 날에도 어떻게든 덜 붐비는 구석을 찾아 책을 펼친다. 병적일 때 난, 내 독서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증오스럽기도 했다.


책에 빠져들수록 현실이 버겁다. 현실은 생활을 좀먹고 시간을 좀먹는다. 자유를 좀먹는다. 책과의 대화에 빠져들다 보면 인간과의 대화에 적응할 수 없다. 난 애완동물이나 아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기나 동물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아니, 골치 아플 것 없는 참 부담없는 상호작용만 한다.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유도할 수 있고, 내가 좋을 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호작용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인간의 상호작용은 언제든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 책을 읽는 건 위대한 일이 아니다. 책도 안 읽는다고 무시하거나 욕할 것도 없고, 책 좀 읽는다고 당당할 것도 뽐낼 것도 없다.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사람이 좋은 사람이 있고 책이 좋은 사람이 있고, 상상이 좋은 사람이 있고 현실이 더 좋은 사람도 있다. 책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책 때문에 사는 게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명절이 그냥 긴 연휴였으면, 휴가란 게 며칠 책 실컷 읽을 수 있는 거였으면, 하며 독서를 방해하는 모든 상황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내게, 독서는 취미인가. 생활인가 습관인가, 병인가. 책 속에는 길이 없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김훈 선생께서 말씀하셨다는데, 길 없어도 좋으니 그저 마음껏 책 좀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나는 참 속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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