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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May 26. 2022

우리 집에만 있는 특별한 날, 사돈데이

고단해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오월은 기념일도 참 많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그리고 부부의 날까지. 역시 가정의 달답다. 그만큼 가족행사도 많아 즐겁고 설렘 가득한 달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날이 하루 더 있다. 이름하여 사돈데이! 사돈의 날이다.

내가 사돈데이를 말하면 열에 아홉은 그게 가능하냐며 되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돈집과 뒷간은 멀 수록 좋다.’라든지 ‘만만찮기는 사돈 안방’과 같은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 사돈은 멀고도 어색한 관계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런 사돈을 부모님은 1년 중 야외 활동하기 가장 좋은 오월과 시월이 되면 시골집으로 초대하신다. 그것도 나와 동생네 시어머니를 동시에. 양쪽 모두 시아버님이 안 계신 관계로 어머니들만 모시는 그날을 우리는 사돈데이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사돈의 날, 사돈‘s day가 맞겠지만 그냥 입에 붙는 대로 ‘사돈데이’이다. 2년 전 동생이 결혼한 그해 가을부터 가볍게 시작한 모임이 해를 거듭하면서 연례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주말이 제3회 사돈데이였다.

전날부터 나와 동생은 장을 보며 사돈데이를 준비했다. 그리고 당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각자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양평에 위치한 시골집으로 출발했다. 서울 서쪽 우리 집을 출발해서 동탄에 사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양평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도 멀었다. 게다가 차는 또 어찌나 막히는지. 나들이하기 딱 좋은 계절에 코로나 방역수칙도 풀렸으니 각오한 일이었지만, 고된 여정이었다. 그나마 덜 막히는 길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이 길, 저 길을 조각조각 이어 달린 끝에 겨우 시골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떠난 지 4시간여 만의 일이었다.  

우리 네 식구에 어머님까지 다섯 명이 꼼짝없이 좁은 차에 갇혀 있다 풀려나는 순간,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뜻밖에도 라일락 꽃 향기였다. 음...! 오는 길의 고단함도 단박에 잊게 하는 자연의 보상이었다. 곧이어 동생네도 사돈어른을 모시고 도착했다.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작년 가을을 건너뛰는 바람에 1년 만에 맞이하는 사돈데이였다. 그럼에도 그간의 공백이 무색하리만큼 세 어머니들은 잠시의 어색함도 없이 금세 어울리셨다. 밀린 수다의 한이라도 풀 듯 하루 종일 웃고 떠들고 시골집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이야기 꽃을 피우셨다. 그 향기는 라일락보다 짙은 행복으로 전해졌다.

나란히 앉아 계신 세 분의 뒷모습은 마치 친자매처럼 닮아 있었다. 다른 성격, 다른 환경 속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었지만 한 시절을 살아낸 뒷모습은 똑같았다. 사돈과 사돈의 사돈이란 묘한 관계를 넘어 동지애 같은 친근함과 유대감이 있었다.

세 어머니들은 늘 그렇듯 동생네 시어머니의 주도하에 집 주변에 지천인 쑥이며 두릅, 참나물 등을 뜯으셨다. 철이 지나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너무 쇤 건 아닌지 알지 못해 방치해둔 무성해진 풀숲 속에서 사돈어른은 필요한 것들만 딱딱 찾아내셨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우리 엄마도, 바다생물만 잘 아시는 부산 출신 어머님도 얼떨결에 나물을 한 바구니 가득 채우셨다. 이런 게 재미 아니겠냐며 내친김에 정원 잡초도 뽑고, 꽃나무 잎도 솎으셨다. 부모님에겐 노동인 정원 일조차 어머니들에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봄의 정원은 꽃과 어머니들의 활기로 넘쳤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돈데이의 하이라이트인 바비큐 파티가 시작됐다. 어머니들이 뜯으신 참나물과 두릅을 데쳐 쌈 대신 내놓았다. 쑥으로는 부침개를 부쳤다. 쑥이라고 뜯었는데 쑥향이 나지 않아 내심 ‘이거 쑥 맞아?’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전으로 부치니 쑥 향이 싹 올라왔다. 이것 참 별미네! 사돈어른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봄의 맛이었다.

그렇게 제3회 사돈데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갔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고된 여정이 남아 있었지만, 모처럼 자연 속에서 마음껏 숨 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가을에 있을 제4회 사돈데이를 기약하며 자리를 정리하는데 즉흥적인 우리 엄마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하셨다. 담벼락을 따라 쭉 심어둔 장미 덩굴. 그 가지마다 꽃망울이 잔뜩 맺힌 걸 보고 장미꽃이 만개하는 6월에 장미축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또 놀러 오라는 우리 엄마. 나는 속으로 외쳤다.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줘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빨강, 노랑, 분홍 장미꽃들이 봄밤 실바람에 살랑거렸다. 담벼락에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싱그러운 6월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장미축제가 기다려지는 나는 또 뭘까? 아무튼 일 꾸미기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행사는 계속된다.


https://youtu.be/0-YJdReVb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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