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가의 시간과 정성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5~6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점령한 동네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개인 빵집이 문을 열었다. 기존의 빵집에서 볼 수 없었던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빵들로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곳이었다. 빵순이를 자처하는 동생과 함께 그곳에 들렀다가 뚱뚱한 번데기 모양의 빵 위에 소금 알갱이가 쪼르록 줄지어 올려져 있는 소금빵을 처음 봤다. 당시 일본을 오가며 일하던 동생은 소금빵을 보자 반가움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에서 가장 핫한 빵인데 일본말로 소금이 시오(塩)라 시오팡(塩パン)이라고 한다고 했다. 소금은 맛으로 중독된다더니 과연 그랬다. 그날 이후 소금빵은 일단 보이면 쟁이듯 사는 빵이 됐다.
그 소금빵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빵이 되어 온 빵집을 점령했다. 그렇다면 트민녀(트렌드에 민감한 여성)인데다 홈베이킹이 취미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소금빵을 만들어 볼까 하고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봤다. 재료도 간단하고 모양을 잡는 성형도 단순한 것이 꽤 만만해 보였다. 그런데 영상을 다 보고 난 뒤 만들어 볼까 했던 마음을 싹 접었다. 앞으로도 소금빵은 사 먹기로 결심했다.
나의 결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과와 제빵의 차이점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흔히 제과와 제빵을 제과제빵처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혼용하는데 사실 이 둘은 장르부터가 다르다. 마카롱, 케이크, 카스텔라, 타르트 같은 제과는 디저트인 반면 바게트, 식빵, 베이글, 크루아상 같은 제빵은 식사에 가깝다.
그리고 제과와 제빵을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 그것은 팽창제에 따른 발효의 유무다. 주로 박력분을 사용하는 제과는 베이킹파우더나 베이킹소다 같은 화학적 팽창제를 쓰기 때문에 발효가 필요 없다. 내가 취미로 하는 홈베이킹이 바로 제과다. 하지만 주로 강력분을 사용하는 제빵은 미생물인 효모를 팽창제로 쓰기 때문에 까다로운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소금빵 만들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레시피는 다르겠지만, 내가 참고한 영상에 따르면 소금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1차 발효 90분, 모양을 만드는 성형 전에 휴지시간 20분, 마지막으로 2차 발효 60분, 총 17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발효는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틈틈이 발효상태를 확인하며 발효시간을 늘릴 것인지 줄일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결국 발효는 물리적 시간을 견뎌야 하는 기다림이자 정성이었다.
한동안 크로플(크루아상+와플)로 인기가 많았던 크루아상은 더 심했다. 밤새 냉장 발효를 해야 하는 등 훨씬 복잡하고 다난한 발효과정이 필요했다. 하루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취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영상을 보면서 지레 마음을 정리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발효과정을 나는 즐길 자신이 없었다.
“아, 못 해, 안 해! 나 그냥 사 먹을래!”
그 후로 결이 살아있는 크루아상을 볼 때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 소금빵을 볼 때마다 누군가가 들였을 시간과 정성에 리스펙트를 보내게 됐다. 나는 그들의 시간과 정성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베이킹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제과든 제빵이든 번거롭고 귀찮기는 마찬가진데 그냥 다 사 먹는 게 낫겠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제과는 가심비를 따지며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반면, 제빵은 가성비를 따지며 만들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어쩌면 시간은 핑계일 뿐 애당초 관심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방법은 다르지만 까다로운 과정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제과나 제빵이나 같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예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나의 관심은 제과에 집중돼 있다. 관심은 나를 행동으로 이끌고 과정을 즐기게 만든다. 나야말로 제과와 제빵을 혼용했던 것 같다. 나의 관심은 베이킹으로 뭉뚱그려졌지만, 사실은 제과에 국한돼 있음을 알았다.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Somone Weil)의 말이다. 관심은 마음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로 극도의 관심으로 확장돼 몰입, 삼매경, 무아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내가 그 지경에 이른 건 아니지만, 주말마다 홈베이킹을 하면서 일종의 명상이란 생각을 한다. 레시피를 따라하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도 단순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과정에 집중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일을 만들어 베이킹을 할 때도 있다.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 수 없다. -대학(大學)
나는 마음이 없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소금빵을 포함한 모든 빵은 무조건 사 먹는 걸로. 그러다 소금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썩인다면 그땐 냉동생지를 사다 간편하게 에어프라이어에 굽는 방법도 있다. 제아무리 유명 맛집의 빵이라도 갓 구운 빵을 이길 순 없다.
일본에서 온 소금빵은 우리나라화되면서 K디저트로 진화 중이다. 오징어 먹물을 넣은 까만 소금빵, 각종 크림을 채워 고소하고 짭조름한데 단맛까지 추가한 고짠단 소금빵, 반으로 갈라 얇게 저민 햄(잠봉)과 버터(뵈르)를 넣은 잠봉뵈르 샌드위치 등등 그야말로 다채롭다. 덕분에 나에게는 선택지가 많아졌다. 이중 뭘 골라 먹을까?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