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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Apr 01. 2021

오늘 살기_20210401

내년에 보자던 엄마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와서 나를 만났던 2018년.

여섯 딸 중 막내인 나와 바로 위 다섯째 언니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었고, 그런 우리를 보러 엄마는 다른 언니들과 함께 연중행사로 놀러 오곤 하셨다.


“엄마, 봄에 나물이나 토마토 같은 거 심고 하는 거 엄마한테 배웠으면 좋겠어. 내년에는 같이 해요 우리.”

내년 4월 내가 죽지 않으면 고사리 캐러 다시 내려올게...”

그렇게 약속했던 엄마에게 갑작스레 알츠하이머가 찾아왔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때, 아버지도 파킨슨병이 진행되어 우리 자매들은 모두 멘붕이 되었었다. 치매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누가 어떻게 모셔야 할 지에 대한 정리도 없었다. 미리 계획을 짜 놓았더라도 모두 난처함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두 분 다 비슷한 시기에 망상 증세를 보이셨고, 난폭해 지기까지 하셨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온화해지셨다.

엄마는 점점 기억력이 감퇴되어 이제는 딸들 얼굴도 낯설어하신다. 이따금씩 귀엽기까지 한 엄마...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셨단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리고 그전에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어 두 분이 떨어져 지낼 때, 나는 그때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여성과 한 남성의 사랑 말이다.

불운하게도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두 분의 인생은,. 6.25 전쟁 후 부부로 연을 맺어 지금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 그 진한 사랑의 모습이 나에게는 이제야 보였다.


엄마는 정말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도, 2019년에도, 2020년에도, 올 해도, 4월이 되면 막내딸이랑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서운해할 엄마.

아니면, 이젠 기억에서 딸들 모두 사라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


계절이 바뀔 때마다, 특히 봄이 되면 들로 산으로 나물 캐다가 먹기도 심기도 하고, 씨앗 사다 뿌려 여러 채소들을 길러 먹거리로 내주던 엄마.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 저 멀리서 커다란 나뭇잎 부채질하며 막내 언니와 나를 마중 나오던 엄마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조만간 엄마한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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