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생

by 미셸 오
허리를 삐끗해서

병원 물리치료실로 갔는데 진단서를 받아 드는 젊은 물리치료사가 나를 보고는 씩 웃는다. 갑자기 아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기억의 저 편에서 그때의 기억들과 함께 뭉쳐져 나오는 아이들이 얼굴 속에 가무잡잡한 아이가 또렷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름이... 아는 척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놀라서 바라보기만 하는 나에게

"선생님~어디가 아프세요?"

그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래.. 갑자기 마주치니.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저 **입니다."

"아.. 맞다. 이름을 기억 못해 미안하다. "

거언 15년 만에 보는 거였다. 199*년 끝자락에서 유독 친했던 그 아이들. 그 무리들 중의 한 명을 오늘 만난 것이다.

"괜찮아요." 그 아이는 아니 그는 내가 미안하지 않도록 시원하게 대답해준다.

"물리치료사가 되었구나. 그쪽 계통으로 진학을 하였던가 보네?"

내가 놀라운 표정을 짓자 그가 멋쩍게 웃었다. 갸름한 얼굴하고 선한 인상은 고등학교 때 그대로다.

어느덧 장성해서 하얀 가운을 입고 내 아픈 곳을 꾹꾹 눌러가면 능숙하게 치료기를 꽂아주다니.

바지의 허리춤을 내리고 엉덩이께를 보여주기가 민망하였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치료기를 봐주고는 다른 환자에게로 간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는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더 해주시라고 해서.."

다른 치료기까지 더 가지고 와서 시원하게 돌려준다.

치료기의 따끔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결리던 허리를 풀어준다.


새 천년을 앞둔 199*년도 끝자락에서 입시학원을 접었다.

국가적인 경제난이 겹치면서 학원의 수익도 점차 떨어졌지만 중학교 때부터 다니던 17명의 고등학교 아이들. 그 아이들의 우직함과 의리는 이미 닫았어야 할 학원을 질질 끌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바다에서 수입을 얻던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배를 타고 떠나야만 학원비를 줄 수 있었던 한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아이들의 회비가 자꾸 밀렸었다. 아이들 절반은 전화를 돌려야 겨우 회비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그냥저냥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회비를 받아내는 것이 더 힘들던 시기였다.

그나마 부모님이 일을 해서 회비 걱정 없던 집의 아이들은 게임하느라고 학원을 종종 빼먹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부모들은

" 너희들에게 모자라게 해 준 것이 있더냐?"

고 재차 아이들을 닦달하였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의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시끌벅적. 요란하던 그 틈바구니 속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에서 모자란 점수를 올리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저 학원에 가야만 뒤처지지 않는 시대의 조류에 밀려다니던 애들.

그런 시대에 다행히 먹고살 길을 얻은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진정성 있는 아이들의 좋은 선생이 되고자 하였었는데.

학원의 뒷정리를 마치고 거리에 나섰을 때는 겨울의 초저녁.

서운함보다는 속이 개운하였다. 처음에는 정말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한 학원이었는데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내게 맞는 직업이 어디있나 싶을 만큼 재미가 있고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나 모자라는 과목을 보충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았던 곳. 그러나 그런 진지한 학습 분위기의 학원은 그저 꿈에 불과했다고나 할까.

아직 철거되지 않은 학원 간판을 등지고 텅 빈 겨울의 거리를 나올 때까지도 다시 학원을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많은 어떤 사람들이 밀레니엄. 새천년을 맞이한다고 들썩거릴 때 어떤 많은 누구들은 사업을 접었다.


"선생님 다른 아이들은 한 번 보셨어요?"


어느 새 내 옆에 서서 나를 보고 있는 물리치료사 선생님.

그해. 199*년. 학원 문을 닫은 지 이 년 후 나는 다시 새로 증축한 곳에 단과학원을 열었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았던 학생들 대여섯이 소문을 들었던지 나의 학원에 들렀었다.

"몇몇이 다녀갔어. 어찌 알았는지.."

"네~"

"사귀는 여자는?"

"아직요."

그는 다시 다른 환자에게로 갔고 나는 눈을 감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웃는 얼굴이 잘 생긴. 만화책만 본다고 늘 면박을 주었는데 좁은 학원 안에서 어찌 한 아이의 미래를 다 짐작할 수 있으리.

그 당시 우리 학원에는 남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원 옆에 남중과 남고가 가까이 있었는데다가 중심가와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방과 후면 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 우리 학원에 다녔다.

여학생들은 여고가 멀리 있어서 옆 동네에 사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방학이면 한 강의실에 30명씩 들어차서 시끌벅적 수업하는 것이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는데 늘 용각산을 달고 살았다.

학교의 절제된 분위기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에게 학원은 안전한, 부모들이 인정하는 공부방이었으니 강의실은 공부보다 저들끼리의 놀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중에 알뜰히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그러니 선생님들은 늘 목청을 돋우고 강의를 하는 수밖에.

학원에 안보내면 불안하니까. 그저 남이 가니까. 아니면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몰려든 동네 친구. 학교 친구. 반 친구들이 여러 명씩 어울려 다니는 곳이 보통의 입시학원이었다.

학원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들과는 달리 저들이 마음 놓고 반항도 해보고 친근하게 굴 수도 있는 대상인지라 수업시간에 저들 맘대로 떠들어도 두려울 것이 없었고 갓 대학을 졸업한 선생님들의 애를 태우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 학원이기도 하다. 하긴 그 점이 아이들에게 더 할 수 없는 학원의 매력이지만.

늘 져주는 학원 선생님들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 설령 공부를 못해도 기죽을 필요가 없는 곳이 학원이었으니 아이들의 갖은 스트레스를 다 받아내는 곳이 바로 평범한 입시학원의 강사들이다.

그래서 다양한 학생들의 철없음도 또 짓궂음도 받아낼 만큼 아이들을 좋아해야만 학원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수업시간에 사춘기 아이들이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 속상해하면 아이들을 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학생들은 조금 덜하고 스스로 머리가 크다고 생각하는 중학교 남학생들은 특히나 더 그러하다.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더 시끄럽고 말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젊은 여선생님들은 남학생들의 농담을 받아치지 못해서 강의실에서 울면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경력도 있고 차갑게 생겨서인지 감히 놀리지는 못했으나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날도 중3 학생들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앞자리에서 세 번째 앉은 남학생 셋이 계속 수군수군 이야기를 끊지 않아 처음부터 내 심기를 어지럽혔다. 셋은 중1 때부터 우리 학원을 다니는 평소 단짝인 아이들이었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떠드는 것도 아니고 계속 구시렁구시렁하는 데에 몇 번의 주의를 주었는데도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 통에 결국 빡치고 말았다.

그 아이들 때문에 다른 애들의 수업에 방해가 되는 것도 문제였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조용히 해라" 고 반복적인 말을 하는 데 그만 질려 버린 것이다.

'그래 학원 그만두라고 해. 너 같은 놈은 안 가르칠 테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들고 있던 교재를 그 아이 책상 위로 집어던졌다. 저들끼리 고개를 숙이고 뭐라 속삭이는데 책을 던져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아니 솔직히 내 감정의 폭발이었다. 그러나 웬걸,

책 모서리가 마침 얼굴을 들던 그 아이의 입술에 정확이 맞고 떨어졌다.

아이가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 손을 갖다 대었다.

'앗' 하는 남학생의 소리가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회초리 한 번 들지 않던 선생님의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아이들이 얼어붙었다.

순간 무서운 정적이 실내를 휩쓸었다.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도 그렇고 입술을 막고 고개를 든 남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시간이 정지된 듯하였다.

입술을 맞았던 아이가 손을 떼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뭔가 큰 일이 났을 것만 같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 아이들이 날아간 책을 앞으로 넘겼고 탁자로 조심스럽게 돌아왔다.

아이가 다쳤을까 봐 놀란 가슴(그러나 표정은 화난 그대로 유지)과 아이들에 대한 분노로 할 말을 잃은 나는 강의실을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일 이후 아이들이 내 수업을 조용히 잘 들었다는 사실 같지 않은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3 아이들은 거의 다 옆 고등학교로 갔고 그들 중 17명은 내가 학원 문을 닫기까지 같이 하였던 친구들이다. 그래서 결코 잊지 못할 아이들인 것이다. 그 날 중3 교실에 같이 있었고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17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물리치료사다.


그 강의실 책 사건 후 몇 년이 지나고 우리 아이가 손목에 사마귀가 나서 병원에 들렀는데

누가 큰소리로 아는 척을 하길래 보았더니 그 책 맞은 남학생이었다.

야구모자를 쓰고 어깨도 벌어지고 훌쩍 키가 큰 모습으로

" 이제 휴학하고 군대 갑니다."라고 씩씩하게 말을 건넸다.

강의실에서 책을 날리던 선생님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성격이 좋은 아이였던 것을. 사춘기라는 과정이 아이들은 새롭게 연단하는, 주변인에게는 물론 본인들에게도 무척 힘든 시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그 아이가 이 글을 보면 그때 나도 무척 놀랐고 미안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미워했을 때보다, 그저 받아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했던 순간들이 훨씬 아름답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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