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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Apr 18. 2016

#여호와께

  

사무엘상 23장 1절-5절

1-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 이리 이까 한지라

4-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5-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다윗은 자신도 사울을 피해 다니는 위험한 처지였으나 그일라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때 다윗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기도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하나님께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하라고 하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윗은 주님의 응답을 받았으므로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하러가자."


그러나 사람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달랐다. 다윗의 추종자들은 


"지금 우리도 위험한 지경인데 누구를 돕겠다는 것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우리까지 블레셋에게 잡히든지 죽든지 할 겁니다."

"우리 처지를 잘 살펴보십시오. 이길 가능성이나 있습니까?"


시끌벅적 와글와글 다윗에게 따지며 항의했을 것이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화를 내거나 고집을 피우는 대신  다시 기도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쯤에서 좀 다윗이 멋지긴 하다. 신중하다고나 할까. 보통 이 정도 상황이 되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맞아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일에 신경 쓸 데가 어디 있겠어? 주제 파악을 해야지.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시 묻는다. 

이런 행위의 앞에는 물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간과하지 않는 그의 정의로움에 있을 테지. 그러나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의 말은 늘 그럴 듯 해서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단 귀로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 말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견보다는 하나님을 의견을 묻는 다윗에게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나를 더 해 주신다.

기도는 많이 할수록 하나님께 얻는 것이 많은 듯. 한꺼번에 다 던져주시진 않는 듯하고.


"승리할 것이다"


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하라"에서는 승리할지 말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치라고 하였기 때문에 믿음으로 승리하리라고 나아갈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미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그럴듯한 정황설명을 들었고 이미 갈등에 빠진 듯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물었을 테지.  아마 이렇게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제 처지를 보고 사람들이 그일라 사람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 하고 또 블레셋 군대에게  패배할 수도 있다는데 어떡하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걱정마. 이길테니까." 야호~

결국 용기백배한 다윗은 가축도 얻고 그일라 주민도 구하게 된다. 일거양득. 도랑 치고 가재잡기. 


걱정한답시고 조언하는 말들이 오히려 문제에 빠진 사람을 더 불편하게 하고 갈등에 빠뜨리는 일들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친할수록 거리를 둘 것들이 있는 법인데 사적인 영역까지 또는 불필요한 갖은 말로 염려의 말과 충고로 간섭을 한다. 사실 그런 조언은 마땅한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폐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다.  진정 염려가 된다면 다윗처럼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입을 다무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문제에 처한 당사자인 본인은 그일라 주민 같은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일라 주민들은 말로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보다는 다윗의 기도와 정의로움을 원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도 아닌 것이고.

문제에 처한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다윗처럼 나아가 도움을 구하거나 묻기보다는 사람들의 말에 더 의존하는 하는데 그런 경우 대부분 시행착오를 겪더라. 시도 때도 없이 조용히 주님께 어떻게 행할지를 묻는 다윗을 보니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도리인지 깨닫게 해준다. 

사람들은  말. 말. 말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용기를 얻기도 하고 그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말의 힘이란 강력한 것이어서 오래전 전부터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는 말도 있어왔고  '말에도 씨가 있다' 하였다.

성경에도 말과 혀에 관한 말씀이 많다.

    지난주,  금요철야 예배 때 목사님의 설교의 주제인 이 성경 말씀이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는 그 말. 말들이 믿는 자들 사이에서 하는 사람의 말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선배들이라는 사람들의 조언이나 충고들도 하나님께 묻는 것에 비할 바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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