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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un 12. 2016

#하나님과의 소통

주고 받는 관계


 처음 헌금은 교회의 재정을 위해 의무적으로 드리든가 아니면 마음 내키는 대로 드리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며 주변에서 해주는 이런저런 조언과 또 선배들이 권해주는 신앙서적을 보면서 헌금 외에 십일조에 대한 글을 많이 접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신앙 간증 책에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천국에 절대 갈 수 없고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일일이 계산하고 계신다는 구절을 읽고는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교회에 다닌 지 몇 개월이 안된 시점이었기에  감사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성경의 말라기 구절에서 십일조에 관한 말씀의 근거가  있어서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라고 확신하게 되었던 면도 있었고,

 또한 십일조를  하면서 사업이 더욱 잘되었기에 십일조를 하면 창고가 넘친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하고 더욱 헌금을 갖추어 드리게 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헌금과 내 사업과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말라기의 말씀이 맞다면 나의 사업은 더더욱 확장이 되어야 했을터. 그러나 나는 사업을 접었고 풍족했던 창고도 비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경적 지식이 쌓이면서 십일조가 의무라는 관점과 십일조를 하면 물질의 복을 누린다는 견해들이 옳지 않다는 생각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헌금을 하면서 누렸던 기쁨도 있었기에 여러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견해를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어떤 분은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니 하지 말라. 율법은 다 폐기되었다. 교회가 성도들의 헌금을 거두어 건축물 짓기에 바쁘고 그들 배만 채운다'

또 어떤 분은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다 꼭 해야 한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다.'

또 어떤 분은 '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하였던 구약의 시대처럼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않고는 교회 운영을 할 수 없다.' 등등

 다들  성경 말씀의 구절들을 근거로 삼았기에 그럴 듯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썩 공감이 되는 견해들이 없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십일조가 억지로 드리는 재정적 지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쩔 때는 저축한 돈을 헐어서 십일조를 하기도 하였는데 나의 이 억지 헌금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내가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받으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과의 소통과 친밀한 관계를 생각하며 드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교회 중고등부 담당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깨달은 것이 많았다.


<이하 우리교회 이승준 목사님 설교 요약>

여러분

저는 지난  한 주간 무척 슬프고 우울하였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저는 선생님들과 함께 여러분들을 위해 어떻게 예배시간을 잘 이끌지 늘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여러분들을 위해 예배 후 남은 한 시간 영화 <부활>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다수가 영화가 마치기도 전에 자리를 떴습니다.

우스운 것은, 영화는 보지 않으면서도 마지막에 준 간식 햄버거는 다들 들고 갔더군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리고 시험기간이라고 참고서 들고 오는 학생들 있는데 참고서 문제집 들고 오지 마십시오. 공부보다는 예배가 먼저입니다. 주일은 성일로 거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격을 가지셨습니다.

저는 지난주 헌금함을 보고도 슬펐습니다.

사람도 무엇을 받으면 기뻐서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마음. 생각. 물질이 인색하면 안 됩니다. 인색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장학 헌금 봉투를 주보에 끼워서 어른 예배 때 나눠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

사무실에 들렀더니 그 나누어 주었던 헌금 봉투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더군요. 그 봉투를 주어서 세어보았습니다.  15개의 봉투였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가 드리자.

그래서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현금 15만 원을 준비하라고 시켰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만원씩 넣어서 헌금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통장에 돈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화가 났습니다.

집으로 운전을 하고 가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헌금을 드리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그 기도가 마쳐진 후  누군가가 내 차의 뒷부분을 받았고 저는 보상을 받은 것으로 헌금도 하고 맛난 것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헌금할 돈이 없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헌금하고 싶다고 기도하십시오.

아무런 대가 지불 없이 입으로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으로 드렸지만 지금 시대에는 사랑과 기쁨과 자원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정성껏 드리고 힘닿는 대로 드리면 하나님도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과 주고받는 관계가 되십시오.주일에 억지로 와서 공감도 없고 감동도 없고 재정적 지출 같은 헌금을 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감동시켜 드릴까를 고민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과 소통이 일어납니다.


 시편 94편 9절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귀와 눈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마음과 행동을 다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예배와 헌금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고 또 하나님의 기쁨을 내가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주일 예배 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말씀의 교훈으로 아이들을 총 무장시켜 보내는 것은 목회자들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이런저런 흉흉한 소식들이 넘쳐나는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비록 믿음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관조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시험기간만 되면  예배시간에 좌석이 비는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는 교회에 열심히 다닌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대학에 가면 교회서 멀어지는 경우가 80% 이상이라고 하니

중고등학교 때 지혜의 말씀을 올바로 배우지 못한 탓이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어떻게든 주일 예배에는 참석시키고 또 바르게 인도해야 하는데 혹여나 그 학생들이 주일에 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버릇없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아이들에게 할 말을 못 하고 그저 무조건 달래고 기분을 맞춰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그럽고 지혜롭게 그러나 때로는 엄히 학생들을 교훈하여 그들이 크리스천으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만이 다음 세대를 책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설교말씀을 듣고

아이들을 책임진 교사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 내가 해야 할 일이 진정 무엇인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헌금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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