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분이 병원에 입원해서
부산으로 병문안 가는 길. 예나 지금이나 부산은 차가 많이 막힌다. 차 안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니 옆 길에 지나치는
빨간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차체에 '만디 버스'라 적혔는데 부산 토박이인 내게 '만디'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부산을 떠나 살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부산을 오고 가는 데 빨간 버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부산의 이곳저곳을 도는 버스인가 보다 짐작은 되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만디'는 '산비탈이 있는 언덕' 이란 뜻이란다. 짐작대로 부산지역 순환버스인데 지난달 7월부터 운행이 시작된 듯하다.
매주 화요일 ---> 일요일까지.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하루 19회 운영된다니 만디 버스를 타고 부산의 골짜기 언덕을 오르내리고 싶어 진다.
운행코스를 보니 부산역∼영도대교∼흰여울 문화마을∼송도해수욕장∼송도 구름 산책로∼감천문화마을∼국제시장∼용두산공원∼보수동 책방골목∼임시수도 기념관∼금수현의 음악살롱∼민주공원∼장기려 기념관∼유치환 우체통∼부산역까지다.
'만디'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산의 골짜기 언덕 마을을 거쳐 순환하는 버스였다.
'만디 버스'를 보고 신기해하며 '만디'의 뜻을 몰라하는 데 옆에 동행한 친구는 '만디'의 뜻을 알고 있었다.
"언니는 부산 사람이 만디 뜻도 모르나?"
그녀는 타박을 준다.
"보리 문디는 알아도 만디는 처음 듣는다."
나는 그렇게 답하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경상도 말에는 단어 끝에 '~디' 가 많이 들어간다.
'궁~' '문~' '조~' 사실 다 비속어다.
그러나 친근한 사람들에게 주로 쓰는 단어다.
어쨌든 '만디 버스'를 보며 부산의 산골짜기 언덕에 삶의 터전을 이루었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집들이 줄지어 있던 그 골목 안에는 골목대장도 있었고 공동 우물. 공동 화장실은 기본이었는데.
우리 동네는 골짜기 언덕은 없는 바닷가였으나 동네마다 언덕 위로 집집이 동네를 이루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만디 버스의 운행 구간을 보니 다녔던 곳. 익숙한 곳들이 눈에 띈다.
부산역에서 영도대교를 지나 송도해수욕장 그리고 국제시장과 용두산 공원과 보수동 책방 골목이다.
부산역은
젊어서 우리들의 약속 장소였고 거기 분수대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노라면 대학교 선배들과 친구들과 자주 마주치기도 하였다. 역에서 만나 외지로 데이트를 떠나는 그들의 살짝궁 데이트도 목격하고 오징어도 사서 씹어먹던 곳이다.
한 번은 부산역 다방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엠티를 갔다 오던 날. 부산역에서 내려 다들 다방에 갔고 시골에서 누군가가 말린 호박씨를 가져와서는 우리들에게 몇 개씩 건네준 것이다. 우리는 호박씨 안에 뭐가 들었나 싶어 그것을 열심히 까고 있었는데
한 남학생의 말이 뒤통수를 쳤다.
"야 느그들 호박씨 잘 까네~"
갑자기 들고 있던 호박씨를 보면서 처참해진 기분으로 입맛을 다셨던 기억. 그래서인가 부산역만 가면 호박씨가 생각이 난다. 그 짓궂은 남학생도 함께. 그뿐만이 아니다.
호박씨를 들고 재밌다고 입을 벌리고 크게 웃는 여학생에게는
"속 보인다~ 속보여~"
그렇게 말을 하고.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동기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던 그 친구는 어찌 살고 있을지.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예전의 시청 앞으로 오면 영도다리가 보였다.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영도다리는 낡아서 그 옆에 새로 영도대교가 지어졌고 그 이후 영도로 가는 교통편이 훨씬 수월해졌던 것이다.
그때 부모들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거의 그런 말들을 했다.
"너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고
설마설마하면서도 옆에서 듣던 어른들이 같이 진지하게 거들면 정말 그런가 하고 의심도 해보지만 믿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가끔씩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때 '나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운 것이 맞을지도 몰라' 라며 서러움을 스스로 배가 시켰다.
고등학교는 용두산 공원 뒤에 있던 여고에 입학하였기에
용두산 공원에 청소를 하러 갔다.
학교의 많은 계단을 내려와 큰 찻길 하나만 건너면 미문화원 옆에 용두산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는 단체로 용두산 공원에 한 번씩 청소를 하러 몰려들 갔다. 지금으로 치자면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 용두산 공원으로 청소를 하러 가면 청소는 거의 하지 않고 친구들과 공원을 돌며 수다를 떨고 비둘기 떼들을 쫓다가 왔다. 물론 버려진 휴지도 줍기는 했지만 공원은 늘 깨끗했다. 비둘기들의 똥만 아니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모이를 지나치게 많이 먹은 비둘기들은 그때부터 이미 간이 배밖에 나와서 사람들의 손바닥에 겁도 없이 성큼 앉았다가 날아오르곤 하였고 봄이면 각양각색의 꽃으로 장식된 꽃시계가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용두산(龍頭山)이란 이름 그대로 용의 머리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그런 형상이라 부산 시내는 물론 저 멀리 바다까지 시원하게 눈이 뚫렸다.
대학에 가고 그 해 3월에 첫 데이트를 할 때 용두산 공원 벤치에 자기의 손수건을 깔아주던 그 남학생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안동에서 왔다던 그 남학생은 제복 입은 모습이 제법 어울렸는데 말이다. 젊은 날의 순수한 추억은 용두산 공원 산책길에 숨겨져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남학생과의 데이트가 제일 설렜던 것 같다. 억압된 미성년의 삶에서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누렸던 연애의 자유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빠로 중년을 보내고 있을 그 남학생은 아마도 큰 배의 선장이 되어 있을 것 같다.
보수동 책방은
방과 후면 가끔 거쳐가던 곳인데 그곳에서 헌 참고서와 시집 같은 것들을 뒤적였던 기억이 난다. 누렇게 변해버린 책장을 들추면 아주 오랜, 종이 삭은 냄새가 났다. 헌 책들이 빽빽하게 천장까지 들어찬 벽장과 바닥에 가득 쓰러질 듯 쌓아 올린 그 책방의 주인들 역시 오래 묵은 책처럼 낡아 보였고 또 그 골목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 헌 책방에 가득한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묵은 먼지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아서 괜히 심각해지곤 하였다.
나는 그 책방들에서 소설책이나 시집이나 사전을 사서 읽었다.
보수동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국제시장이 있고 곧 자갈치 시장도 이어진다. 국제시장은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오고 싸고 맛난 음식들. 길을 스쳐가며 보는 것들에 재미가 붙어서 사실 학교에 억지로 남아 밤 열 시까지 공부를 했던 것보다 등학교길에 보았던 많은 것들이 기억에 새롭다.
국제시장의 가방 가게들 앞에는 백화점이었다가 폐쇄된 오래된 3층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 3층에는 문구점이 있었다. 2층에는 꽃시장이어서 그곳으로 들어서면 온갖 꽃냄새가 여고생들을 자극했고 3층 문구점으로 들어가면서 꼭 꽃시장을 거쳐야 했는데 그 꽃시장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학교 축제 때 시화전을 한다고 그 건물 3층으로 갔을 때 생머리를 길게 기른 예쁜 여자가 그 건물 구석진 곳에서 벽에 그림을 잔뜩 걸어놓고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시가 적힌 도화지에 바탕 화면을 그려준 사람인데 나는 그녀가 먼저 그려준 배경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들고 갔던 것이다. 그 여자는 자신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였으나 결국에는 다시 그려주었다. 그러나 그 새로 그린 그림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하는 시의 내용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보수동 책방에서 책을 사고 남포동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또 비빔당면을 먹고는 문구점에서 문구들을 사는 그 시간들이 가슴이 졸아들 만큼 행복했는데 그때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모르겠다.
송도 해수욕장에
가서는 회를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소개팅을 한 날에 광복동 극장 앞에서 만난 그는 내가 회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회를 사준다고 곧장 택시를 타고 송도해수욕장에 데리고 갔던 것이다.
해녀들이 잡은 멍게와 해삼 등등이 있던 그 근방에서 회를 시켰고 그는 나에게만 회를 먹였다.
쌍둥이라던 그 남자는 늘 내게 주스와 우유와 회를 사주었는데
그것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가령 내가 커피를 시켜놓았어도 내 앞에 놓이는 것은 늘 주스였다.
어느샌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내가 주문한 커피를 주스로 우유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그 덕분에 한동안 커피를 잘 마시지 못했다.
부산에는 해수욕장이 많고 또 그 외 바닷가에 얽힌 추억들은 많을 것이나 아직은 기억이 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지나온 시간들 속에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새겨진 추억들이 어느 순간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니
벌써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내가 거쳐온 공간들도 사라지고 없거나 새로 탄생하고 있다.
오늘의 기억들처럼 어쩌면 저 만디 버스를 타고 그곳에 직접 가 닿으면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또 하나의 잊힌 기억들이 더 떠오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올여름. 휴가도 못 갔는데 부산의 '만디 버스'를 타고 옛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