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장 1절-6절
1절-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절-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니이까------(번민하고 근심에 쌓인 상황)
3절-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절-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두려운 심리상태)
5절-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절-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 심이로다 ---------------(믿음으로 나아감)
오늘은 다윗의 시를 묵상하노라니 위 노래가 크리스천들의 대중가요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식의 표현은 말씀을 묵상하는 기본적인 틀에는 위배될 터이지만.
솔직한 감정은 그렇다.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은 실연의 아픔이나 삶의 고통을 노래하고 시를 짓고 글로 써서 남기기도 한다.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이기에 삶의 위기나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성경 속 다윗은 많은 성경의 인물들 중에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전하지만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이상 그에 대해 전부를 알 수는 없고 시편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와 또 그가 얼마나 감성적이며 열정적인 사람인지를 짐작케 한다.
하나님께서 믿음에 관해서만은 특급 칭찬하신 다윗도 한 때는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져서 이런 기도를 한 것을 보면 나처럼 평범한 크리스천이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큰 위로이기도 하다.
시편 12편에서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보이지 않으시니 영혼이 번민하고 원수가 자신을 치며 자랑하니 마음이 근심으로 죽겠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렵다. 사망의 잠에 이를까 봐. 원수가 이겼다고 할까 봐. 자신이 흔들릴 때 원수들이 기뻐할까 봐.
그러나 다윗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믿음이 부럽기도 하다.
주님께 의지하겠으니 나를 사랑하사 눈을 밝혀달라고.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주께서 영혼을 구원하신 그것을 기뻐하겠노라고. 그것이 주의 은덕을 베푸 심이니 여호와를 찬송한다고.
삶이 힘들어 여호와께서 응답을 더디 하여 죽을 만큼 힘들어도 영혼의 구원을 기뻐하다는 그 고백!
게다가 자신의 눈을 밝혀달라는 기도!
이래서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다윗 다윗' 하는가 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하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한 것일까. 눈앞이 깜깜해지는 상황에 처했을 때 지난날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덕을 생각하며 또 내 영혼의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믿음의 여정에서 나와 매일매일 싸우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나은 믿음이 있기 위해 조금씩 강도를 더해가는 하나님의 끈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것도 같지만.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오래전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서도 응답을 더디 할 수도 있음을 다윗을 통해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면 이럴 때 믿는 자들은 고통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며 자신의 눈을 밝히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