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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호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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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28. 2017

#낙심될 때

역전의 하나님


시편 55편 16절-23절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셀라)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2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17절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근심하여 탄식한다고 한다. 왜 아침 정오 저녁이 아니고. 저녁이 먼저일까?

아마도 저녁부터 시작된 근심이 밤새도록 지속되었지 않았을까.

즉 걱정과 근심으로 잠도 못 잘 정도다. 그래서 탄식만 한다. 그런데 그 탄식을 여호와께서 들으신다고 한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근심에 쌓여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든 인생의 여정에서 이런 일 저런 일로 고민하고 절망하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망 중 기도도 못하고 탄식을 때 그것을 들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대적자들 때문이다. (18절)

그 대적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변함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

2.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친다.

3. 언약도 배반한다.

4.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럽지만 전쟁이다.

5. 그의 말은 부드럽지만 실상은 뽑힌 칼이다.

                                     ( 이상 18-21절)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이런 인간들이 있나 싶을 정도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그들의 인격이 변할 리 없고. 죄의식이 없으니 자기와 친했던 자도 뒤통수를 친다.

약속도 쉽게 어긴다. 말로는 꿀을 바른 듯 하지만 속에는 칼을 품는다.

보통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악한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 하늘이 두렵지도 않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도 하늘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있음을 알고 내뱉는 말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이익 앞에서 친구도 배신하고 거짓을 일삼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그렇듯이 죄를 짓고 살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오늘을 시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 말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임을 알겠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절망 중에서 부르짖을 때 돌아보시고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었다면


나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나에게 있어 하나님 앞에 또 다른 수식어를 붙인다면 역전의 하나님이다.

일이 뜻대로 안 되고 자꾸 구석으로 몰리는 절망의 순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막혔던 일이 뜻하지 않게 해결되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일이 해결될 때는 너무 짧은 순간에.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단순하게 해결되는 것이라서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인해 성공을 하기도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하기에 좋은 인맥을 쌓는데 돈과 시간을 들인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겪을 때.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의 절망으로 몸과 마음을 다치기 쉽다.

그때 사람들은 나를 도와줄 어떤 사람을 떠올리거나 찾게 마련이다. 하긴 능력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어 손해 보진 않더라. 그러나 사람이 해결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17절의 말씀처럼  내게도 아침 점심 저녁 가릴 것이 없이 근심이 가득해서 탄식만 나올 때가 있었다.

기도해도 하나님의 답은 느리다. 이제 정말 내 힘으로는 여기까지야. 더 이상 안돼.라고 손을 다 놓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청조가 날아들 듯이 절망이 기쁨으로 바뀐다.


나는 예전에 딸아이의 안과 검진을 K대학 유명한 안과 의사에게 받기 위해 4년을 기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4년을 기다리기에는 딸아이의 갑갑함이 컸다. 우리 아이는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는 사시기가 있었는데. 찾아다닌 의사들은 딸애가 너무 예민해서 복시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정상이라는 진단을 내렸으나. 막상 본인은 너무 불편해하였으므로 딸애 같은 증상을 해결해 줄 의사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S대학의 안과전문의를 찾아냈다. 며칠 전 예약한 날 새벽에 출발.  버스를  5시간 타고 지하철을 1시간 타고 마을 버스를 20분 탄 후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그러나 오후 진료 시작 후 얼마나 많은 검사를 하는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환자들의 피로함. 초조함과는 관계없이 막상 얼굴을 대면한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라식수술을 하고 다시 오면 수술을 해 주겠다. 그러나 다시 재발할 수 있다. 그 두 마디로 끝이었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딱 5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질문할 여력도 없었다. 이 두 마디 말을 들으려고 여기까지 와서 종일 이 고생을 했더라 말인가.

비싼 진료비를 지불하고 병원을 나오면서 씁쓸한 기분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사실 우리는 고치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보다는 그의 무성의한 태도. 경쾌한 목소리에 기분이 더 나빴다. 병원비와 우리가 들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이젠 안과에 가지 않겠어."

딸아이는 마음이 상해서 말했다.


그후 시간이 4년이 흐른 줄 몰랐다. 하얗게 잊고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K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때서야 잊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망설였다. 4년 전 S대학병원에서의 실망감을 또 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일단 가보기로 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겨울에. 우리는 하얀 입김을 날리며 또 새벽 고속버스를 탔다.

도착한 병원은 바닥에 눈이 얼어 걷기도 불편했고 병원 대기실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두어 시간을 기초 검진을 받고 바라던 의사를 대면했다. 여의사는 60대 초반의 중후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딸애를 가까이 앉히고는 상담을 하면서 렌즈를 이것저것 끼워보고 빼보고 하면서 신중하게 진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사와의 진단 시간이 40분가량이 지났다.


"도수를 맞추었으니 안경만 사서 끼우면 됩니다."

"네?"


우리는 놀라서 많은 환자를 보아 피곤함이 역력한 여의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라식 수술을 하고 또 수술해야 된다. 그리고 재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을 내렸던 옛날의 그 의사와는 전혀 딴판의 진단 결과가 아닌가?


"보통의 아이라면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의 사시인데 딸애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예요. 안경을 맞춰줄 거니까. 그거 끼시면 잘 보입니다."


나는 의사의 그 말을 듣고 감격해서 말했다.


"우리는 4년을 기다려서 오늘 선생님을 만났답니다."

"네.... 4년이나 기다렸어요? 빽이 없었나 보군요."


여의사는 조금 놀라워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가 인맥이 없음을 비웃는 것이 아닌 사람을 통해 편익을 본 다른 환자들을 비웃는 웃음같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즉시 대학 근처의 안경점을 찾았고. 의사가 처방해 준대로 안경을 맞춰서 꼈다. 그때부터 딸애는 세상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 할지라도 오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실력 있는 의사가 있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 못 만날 수도 있다.

고칠 수 없다고 우리 딸에게 부정적인 선고를 내린 의사가  두 명이고. 환자의 입장이 아닌 저들의 연구 수치만을 믿고 정상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의사가 한 명이다. 차라리 정상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의사들이 그나마 나았다. 잘못된 의사의 진단을 믿고 또 나의 판단으로 성급하게 딸애의 눈에 칼을 댔다면 지금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때 기다렸던 시간들은 절망적이었으나 결과는 좋았다.

인내하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지 않은 덕분이다. 물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4년이라는 긴시간. 그 끝에서 역전의 하나님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돈도 노력도 많이 필요없는 완벽한 치유. 무엇보다 아이의 눈을 지켰다.

그러므로. 절망의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지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짐을 풀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짐을 지고 우리를 더 쉽고 편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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