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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an 15. 2018

#회막이 성막으로

어제,

 예전에 살던 곳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저런 힘든 일들이 겹쳐 기도도 안 되는 상태에서 예배에  서너 번 참석을 못하였는데

교회에서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목사님들의 전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성도가 힘든 상황에 있는 줄 알고 있을 목사님까지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고 한 번쯤은 전화를 걸어와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다니던 교회를 그만 다니고 다른 집 근처의 교회에 다니면서 예배만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목적에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성도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목사님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고 또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도 그렇고  따스한 위로의 말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심리라고 본다. 그러나 가끔 사람에게 상처를 입을지언정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침 오늘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예배의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 일깨워 주어서 같이 공유하고자 요약하여 실어본다.



>>출애굽기 40장 -레위기 1장 2절<<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위의 말씀에서 보면 구름이 덮인 곳은 회막인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자 성막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텐트가 성스러운 텐트로 변화하듯, 사람들만 모여서는 예배가 되지 못한다.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 종교적 행위에 압도되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없다면 성막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35절에, 그동안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모세였을 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크기에 압도되어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레위기 1장 1절에 "그가 부르실 때" 에만 그가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온 것이지 자신들의 뜻에 따라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며 그 자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재한 곳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는 예배당에 앉아 있을 수 없다. 예배의 자리는 가치 있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은 17장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누었던 말씀의 결론 부분인데 예배의 자리가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듯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도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또한 믿는 자들이 세상에 믿음을 나타내고 그들도 예수님의 영광에 들어가 같이 영광을 누리길 바라시는데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보이시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갔 듯이 제자들도 복음을 믿고 세상에 그 믿음을 보이면 그들도 또한 예수님의 영광의 자리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덕분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보고 듣고 믿는 자들이어야 창조 때에 주어진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고,

11절에서 보듯, 믿는 자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 (시선을 고정시키고 보는) 받는 은혜를 누린다.

창조의 영광의 복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있는 세대들에게 있을 영광인 것이다. 이런 보전의 은혜는 어떻게 주어지는가하면 성막에서 예배 가운데 주어진다. 즉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보호받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인 것이다.


믿는 자들이 성막에서 '그들로 내 기쁨을 충만하게 가지게 함' (15절)으로써 하나님의 교통을 통하여 생명의 기쁨을 누리고 동시에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고(16절)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자리(17절)가 바로 예배의 자리이다. 또한 18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처럼 예배의 자리에 서면 자신이 왜 이 땅에 남겨졌는지.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가 얼마나 복된 자리인가. 이런 일들은 모두 창조의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늘 예배를 기대하라.  예배의 가치가 큰 줄을 알면 기대와 설렘도 그만큼 커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어떻게 들어갈까?

구원은 그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은혜의 누림은 하나님에 대한 반응으로 주어진다.


출애굽기 36절에 보면,

12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동할 때는 언약궤가 늘 앞장을 섰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 중심의 삶을 잘 나타내 보여준다.

 그들은 또한 구름따라 움직이고 멈추고 하였다. 이처럼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예수님도 동일하게 하셨다. 순종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초청을 받는 길이다.


 -이상 최*근 목사님 설교 요약-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고 지금은 창세 전의 영광의 자리에 앉아 계시듯.

이 땅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예배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서로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 아래의 시편 100편의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4절-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

 5절-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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