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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Aug 02. 2018

#오해

며칠 전부터

목이 잠겨서 생강을 사서 달여 먹을 생각이었다.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쨍쨍한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로 마트는 평소 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카트를 끌며 다니는데.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들 대 여섯 명이 한데 몰려다니면서 장을 보는데 좀 낯선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빵을 파는 곳에 기웃대는데 그중 뚱뚱하고 인상이 좋게 보이는 한 남자가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걸었다.


"여기 커피 물 끓이는 것 어디 있어요?"


"커피 물 끓이는 것?"


내 머릿속에 '커피 물 끓이는 것'에 대한 관념이 갑자기 뒤엉켰다.

그 아저씨가 원하는 물건이 확연히 뭔지 떠오르지 않아 머뭇대는 동안 그는 또 한 번 말을 건넨다.


"물 끓여가지고 커피 끓이는 것 있잖아요?"


그는 손으로 물 따르는 시늉을 해 보인다.


"커피 포트를 말하나 봐."


옆에 서 있던 딸이 말했다.

커피포트를 못 본 것 같았지만 우리는 주방기구들 파는 라인을 가르쳐 주었다.


"저기 그릇 코너에 가보세요."


아저씨가 걸어간 후 생각하니 마트 옆 입구 그릇 파는 매장에 가면 커피포트를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잠시 후.

카트를 밀며 다니다가 커피포트 찾는 아저씨와 또 마주쳤다. 이번에는 일행과 떨어져 있었다.

손에는 1회용 커피프림 한 박스가 들려있다.

우리는 다시 마트  중문 옆에 있는 그릇 파는 곳으로  그를 안내해 주었다.


계산대에서였다.

아까 그 아저씨는 보이지 않고. 아저씨 일행 중 3명이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계산을 서로 하겠다고 옥신각신 하더니.

한 아저씨가 문득 계산원 뒤편에 있는 담배 한 통을 주문했다. 담배를 새로 주문하여서 계산이 완료되기 전이라.

아저씨들이 서로 돈을 내겠다고 하는 동안에 잠시 지체되었다. 마침 계산원이 우리 물건이 몇 안 되는 것을 보고 우리 것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직 지갑의 돈도 꺼내지 않은 그들 중 한 명이.

자기들 먼저 계산을 안 해준다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를 무시하는 기야?"


"아니 지금 계산합니다."


"무시기. 우리가 먼저 했는데.. 왜 다른 사람 계산 먼저 하고 그래?"


아저씨는 자기들 것을 계산하다 우리 것을 계산하는 것에 기분에 상한 모양이었다. 우리 것을 바코드에 찍더라도 그들이 지갑에서 돈만 꺼내면 그들의 것을 계산하면 그만인데. 그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마트 직원은 화를 낼 일도 아닌데 기분 나빠하는 그들 때문에 당혹해하고.

계산기 옆에 서 있던 우리도 지나치게 화를 내는 그들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옆에 서 있는 다른 일행이


"아이 기분 나빠. 우리가 먼저 왔는데 계산을 먼저 해주야 되는 거이지. 원."


그때 계산원이 답답하다는 듯이.


"아니고요. 지금 계산해드린다고예."


계산원이 조금 짜증이 난 목소리가 되었다.

그러자 일행 셋이 한 팀이 되어 더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다들 술에 취해 얼굴들이 불그스름했다.

그때 한 사람이 봉지에 담았던 물건을 도로 계산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에잇.  우리 이거 계산하지 말자."


목소리는 더 커지고 한 아저씨는 직원을 향해 사진까지 찍어대고 있었다.
아저씨들은 그냥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우리는 흥분하는 아저씨들과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직원을 뒤로하고 나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말소리도 어눌하고 발음도 뚜렷하지 않았다.

화를 낼 일이 전혀 아닌 데 술김에 판단력이 흐려진 탓인지. 아니면 그들의 마음에 무슨 억울함이 배였는지. 오늘 재수 없게 걸린 그 마트 직원의 뜻밖의 고충까지 알게 되었다.


마트 입구에서 커피 포트를 들고 오는 좀 전의 그 뚱뚱한 아저씨를 보았다.

그는 우리들에게 자신이 산 커피 포트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그는 일행들이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사니 안 사니 실랑이가 벌어진 것도 모른 체. 은색 커피포트를 들고 친구들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하는 그들의 큰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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