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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호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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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Nov 05. 2015

#하나님의 세상접속

사도행전 16장 25절-34절

사도행전은 누가 복음의 후편에 해당된다. 누가 복음이 예의 치유에 중점을 두었다면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치유의 은사가 중심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 그리고 편지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깊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한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죄수들이 들었다.

이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땅이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사람들의 차꼬에 매인 것이 다 풀렸다.

간수가 자다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결하려 하니 바울이 소리를 질러 말렸다.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구원을 받고 싶어 하니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자기 집에서 음식을 차리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였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옷도 찢기 우고 채찍으로 맞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한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귀신 들린 여인을 고쳐주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발에 쇠스랑이 채워진 상태로 어두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아프고 괴롭고 답답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다들 어찌할까? 하나님을 원망하리라.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감옥에 있음을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찬양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감옥에서 자유를 얻게 될 많은 죄인들을 생각하며. 아니면 감옥에 갇혔으니 힘든 상황 중에도 자신들의 믿음을 굳건히 해달라고 기도였을지도 모르겠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사라진다.  

지옥이든 감옥이든 둘 다 옥이다. 그 곳은 어둡고 희망이 없는 갇힌 곳이다.  자유가 없다. 그 곳에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보내시고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셨다.  고통 중에 절박한 기도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고 땅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렸다. 죄인들의 몸에 매인 것들이 저절로 끌러졌다.

자던 간수는 지진 때문에 놀라서 깨었으리라.  그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갔다 생각하고 자살하려 하였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몸을 상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그는 자신이 지키고 돌봐야 했던 죄인 바울에게 도리어 도움을 청하고 위로받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간수는 이전부터 바울이 행한 능력과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멀리 있는 소식에 불과하였을지도.  예상치 못한 급박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손을 내민 바울의 손을 잡은 것은 간수다.  그로인해 그는 육체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는다. 그리고 가족들까지.

사도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기도와 찬양을 통해 세상에 접속하신 하나님

그 속에 이뤄지는 구원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어찌 그리 비슷한지.

한 생명의 구원은 이렇듯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보다. 사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간수와 가족들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로마시민권자임을 미리 밝히지 않았던 바울은 이미 감옥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리라고 결단을 하였던 것 같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없었던 죄인들에 대한 바울의 연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기회라고 생각하였는지도. 그렇지 않다면 바울이 일부러 감옥행을 택하지는 않았으리라.

성경에는 감옥의 간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 감옥에는 절망에 빠진 다른 많은 죄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평과 악담과 고통의 신음소리만이 가득하였을 그 곳에서  뜬금없이 들리던 찬송 소리는 얼마나 신선하고 놀라웠을까.

지치고 힘들어 메말랐던  마음속에 한줄기 생수가 부어지듯 어둠 속 죄인들에게 영혼의 빛이 순간 번쩍이며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을지.
이 사건은
감옥에 갇힌 죄인들 뿐 아니라 그들을 지키는 간수까지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작은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자유를 잃고 어둠 속에 신음할 때

 세상 속 잘났다 하는 인간들 역시 영혼의 자유를 잃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간다. 이 세상도 어찌 보면 감옥인 것이다.

 지구가 작은 물방울처럼 우주에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물방울은 우주 전체로 시야가 넓혀져 갈수록 점점 더 작아져 우주먼지가 되어버렸다.

우주 속에 먼지 같은 그 곳에서 인간들은 아등바등 살아간다. 우주 속에 먼지. 그 먼지 안에 있는 인간.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먼지 같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원자를  점점 확대하였더니 마지막에는 우주의 형태를 보이고 우주를 점점 확대하였더니 원자구조가 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 모든 것의 법칙과 원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이 아닐까. 큰 것도 작은 것도 같은 하나.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의 법칙.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의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간과하고 살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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