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노트

#말끝이 당신이다

김진해 지음. 한계레 출판

by 미셸 오

한 달 전이었던가?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한 국문과 교수의 기발하고도 참신한 동영상을 접했다.

학생들과 반말이 아니고 평어를 말한다?

어찌 보면 학생들의 반말이 거슬리기도 할 법한데 그 교수는 존대를 사양하고 학생들과

평등하게 평어 쓰기를 실험하는 중이었다.

나는 당장 그 교수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였고 모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이며 그가 펴낸 책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내 손에 쥐어진 책.

바로 김진해 교수의 <말끝이 당신이다> 다.

여기 인상적이던 구절들을 모아 보았다. ('중략' 대신에 '.....'을 사용했습니다)


-당신이 어제 보낸 문자나 채팅 앱을 다시 열어 살펴보라. 용건은 빼고 말끝을 어떻게 맺고 있는지 보라. 친한 지 안 친한지 , 기쁜지 슬픈지. 자신감 넘치는지 머뭇거리는지,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 다 드러난다.

친할수록 어미를 일그려 뜨려 쓰거나 콧소리를 집어넣고 사투리를 얹어 놓는다.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진다..... 말하기는 권력이다.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권력가다....

그래서 어른은 질문을 자제할 책임이 있다. 질문하지 말고 감탄하라..... 질문은 젊은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질문을 하기보다 감탄하려고 애를 쓴다.

-당신에겐 어떤 문장이 있는가? 당신에게 쌓여있는 문장이 곧 당신이다. 당신을 사로잡던 말, 당신을 설레게 하고 가슴 뛰게 한 말, 내내 오래도록 가슴 저리게 남아 있는 말이 당신을 만들었다.



-우리는 말을 통한 협력을 좋아하기 때문에 험담을 즐긴다. 눈치 보지 않고 누군가를 통쾌하게 '씹을' 수 있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십중팔구 선행보다 악행을 씹게 되는 데 유익한 면이 없지 않다.



-'생각보다'라는 말은 나도 모르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상대에 대해 미리 어떤 기대나 예측,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무심코 이런 말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과를 하면 사람들은 그 말의 '진정성'을 따지지만 그걸 확인할 방법은 마땅찮다..... 차라리 사과의 적절성을 따지자.... 피해자의 체면을 세워주고,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려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기입해야 사과가 된다... 힘없는 사과가 새로운 관계 맺기의 출발점이 된다.


-<주접 댓글>-목소리가 진짜 좋으시네요. 제 귀지가 설탕이 된 느낌.

-언니, 경마장 출입금지라면서요? 언니를 보면 말이 안 나와요.

-계란 한 판을 사면 계란이 29개밖에 없다면서요? 당신한테 한계란 없어서.

-오빠는 사슴이에요. 내 마음은 녹용.


:이 교수님도 인터넷 댓글을 자주 읽으시나 보다. 나도 댓글 읽는 것이 본문보다 더 재미있을 때가 많고 지혜와 위트로 가득한 댓글들을 즐겨 읽는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 좋은 게 하나 있다. 뭔가를 '잘 못하는 능력'이다....... 가장 빠른 길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돌아 돌아 유유자적하는 능력... 너나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회는 야수 사회다.

-한국처럼 배려하기와 눈치보기가 뒤엉킨 사회에서 사람들은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 위력을 앞세운 막말은 난무하지만 힘의 차이를 뛰어넘는 '평등한 말하기'란 어렵다.


-종이 사전의 퇴보와 인터넷 사전의 등장은 새로운 사전 출판을 어렵게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출판사마다 사전편찬실을 해체했다. 한국적 비극은 국가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사전 시장을.. 다 먹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사전의 개성은 뜻풀이에 있다.

'연애'의 뜻풀이-->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표준국어대사전>>

-->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 <<고려대 한국어 사전>>

--> 둘 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그리운 상태 <<신메이카 국어사전>>,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전


: 일본 사전의 해석을 읽고 박장대소했다. 우리나라 사전에는 개성이 없는 거였음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말에 외국어가 뒤섞이는 현상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안에 들어온 외국어는 전염성이 있거나 민족정신을 빨아먹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말은 스스로 굴러가게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언어는 순화의 대상이 아니다. 자제의 대상일 뿐.

-성문화 된 맞춤법, 표준어 규정을 없애야 한다. 어문규범을 없앤다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말의 민주화와 사회적 역량 강화는 성문법의 폐지에서 시작된다.

-성문화 된 규범이 없어도 표기의 질서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성문법이 없는 절대다수의 언어가 이를 보여준다.

-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장은 결국 '표준어'를 없애자는 것이다. 표준어를 정하는 주체를 국가에서 시민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짜장면의 표준어 등극이 이루어졌다. 2011년의 일이다. 기껏해야 10년 동안 5회에 걸쳐 74개가 표준어로 바뀌었다. 말은 날아다니는데 국가는 느리다.


:맞춤법을 없애자는 작가의 주장에 공감이 많이 갔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상치'가 표준어였는데 얼마 후 '상추'가 표준어가 되었다. 자꾸 발음은 '짜장면'이라고 되는데 '자장면'이 표준어였을 때 표준어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맞춤법은 정말 어렵다.

특히 '사이시옷' 현상은 예외조항도 많아 상당히 고난도다. 나는 이 사이시옷 현상을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려고 스스로 몇 날을 매달려 통달하여야만 했다. 그런데 김진해 교수님은 이 책에서 '사이시옷 규정'을 없애자고 한다.

찐으로 찬성 대 찬성이다.


-사람들이 질병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알려면 말을 둘러보라..... 질병은 인격체가 아닌데도 마음대로 몸을 드나들며 괴롭히는 존재로 상상한다..... 니체는 "질병 자체보다 자신의 질병을 생각하느라 고통받지 않도록 병자들의 상상력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말은 현실을 왜곡하고 행동을 미화한다. 이른바 전문가들은 예측 못 할 일도 짐짓 예측한 듯이 태연하게 개념 안으로 그 사태를 욱여넣는다. 월성 원자력 발전소에서 예상치 않은 방사능 물질이 누출된 적이 있다. 이걸 전문가들은 '비계획적방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방출'에는 행위자의 의지가 담긴다. '누출'에는 의도성이 없다... 속지 말자. 제대로 된 이름은 '방사성 물질 누출사고'다.

: 문득 이 부분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생각났다. <리어왕> 은 세 딸들 중 두 딸들의 거짓말과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침묵한 막내딸로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말은 진실을 왜곡한다. 또한 말보다 침묵이 더 진실일 때가 있다.

늘 말을 달고 살면서 내가 하는 말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늘 말의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생각대로 말이 엇나가서 상대방의 오해를 사게 할 때도 많다.

말은 하되 정말 바다같이 넓고 넓은 언어의 바다에서 황금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언어를 잡는 어부가 되어야겠다.

김진해 교수의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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