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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노트

인생영화-바다 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

by 미셸 오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삶에 무척 지쳐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복잡한 심적 상태-그것은 추상적인 것이고 나만 아는 것-를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또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 해도 위로받기가 힘든 것이어서 그것들을 분출한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던 것 같다.

그때 내 딸애가 준 건넨 영화. 바로 <바다 마을 다이어리> 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적인 독립을 한 세 자매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새 여동생을 얻는다는 이야기이지만

보면 볼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영화였고 감독의 의도도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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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사치는 부모의 이혼으로 살림을 책임지고 두 동생을 길러냈다. 그래서 자기들이 사는 집은 물론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여기서 그들이 사는 큰 집은 정말 일본 스럽다. 난 이 집의 이층 창에서 보이는 매실나무 장면이 제일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와 기억이 별로 없는 그들에게 갑자기 날아든 아버지의 사망소식은

신문기사에 난 가십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감정이 없다.

그러나 운명적이게도 그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갔고 거기서 배다른 여동생 스즈를 만난다.

그런데 그 스즈의 어머니도 죽고 지금은 새엄마와 사는 스즈를 세 자매는 안타깝게 여기고 이 멋들어진 집이 있는 가마쿠라에 와서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이별하는 기차역에서 아슬아슬하게 머뭇거리다가 " 이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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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대답하는 스즈의 두 눈은 놀람과 감동으로 가득 찼겠지. 왜냐하면 아버지가 맞아들인 스즈의 새엄마는 스즈를 너무 어른스럽게 만들었을 뿐이었으니까.

빨간 기차-언니들이 타고 떠나는 기차를 뒤따르면 마구마구 손을 흔드는 스즈는 정말 친언니들을 세 명이나

얻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이 장면을 나는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친자매 언니들에게서 느끼는 따스함. 그리고 떠나는 기차와 그 주변 풍경. 그 어느 집에는 붉은 꽃이 만발했더랬다.

하얀 세일러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흩날리며 기차를 뒤따르던 스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우리 집은 낡았지만 매우 넓고 우리 셋이 다 직장을 다니니까 너 하나쯤은 먹여 살릴 수 있어."라고 사치가 말했을 때 스즈는 이미 엄마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새엄마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을 것이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가족을 버리고 옛날에 떠난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서 난 동생을 적대하지 않고 따스하게 감싸는 그들의 사랑.

스즈는 그렇게 세 언니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갔고 스즈는 어른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발랄한 중학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픈 아버지를 새엄마 대신 병수발하고 새엄마의 아이를 돌보며 어른스러워야만 살 수 있었던 스즈는 이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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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세 자매들에게는 부모에게 버려진 숨겨진 아픔이 있다. 스즈 역시 언니들의 가정을 깬 여자가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이 미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아픔을 털어놓고 공유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숨겨두었던 상처도 아문다.

간호사로서 유부남을 사랑했던 사치는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스즈를 통해

보게 되고, 결국 그 유부남과의 만남을 끝낸다. 요시노는 늘 퍼주기만 하던 불안정하던 남자와의 관계에서 벗어난 진실한 만남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막내 치카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었음에도

스즈의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했다"는 말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영화 속에서 치카는 늘 낚시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이기 때문에 치카는 아마도 자신이 낚시는 좋아한다는 점에서 기억에 없는 아버지와의 유사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스즈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치카에게 들려줌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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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마지막도 장례식 장면으로 끝이 난다.

바다 고양이 식당의 아주머니가 병으로 죽게 되는데 처음과 끝을 죽음으로 연관지은 감독의 의도를 읽게 된다.

마지막 장례식장에서 나온 후 자매들은 ,

그들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고 감정이 없던 그들은 한결 성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큰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고 말을 한다. 그것은 바로 스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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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원망과 적대감으로 가득했을 그들의 삶이 스즈에 대한 연민과 배려 그리고 사랑으로 아름답게 장식된다.

삶의 시작과 끝에는 죽음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아주 짧다. 마치 봄날에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벚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고 삶에 진지해라. 감사해라. 그렇게 감독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해 여름엔 이 영화 한 편을 돌려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이 힘들지라도 아름답게 살자고 생각하며

매 순간 원망하기보다는 배려하고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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