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다. 젊은 나이에. 저자는 26살 때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주한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세든 집에서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이다. 그녀의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
그런데 참 됴쿄살이에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이 재밌다.
그녀가 낯선 도시에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1년간 일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는 여윳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여기저기 영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독립심이 남다른 사람 같기도. 정작 본인은 허둥지둥 살았다고 표현했지만 그때그때 다가오는 문제들을 지혜롭게 잘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살 집의 예산을 미리 맞추고 맨션에 입성한 후 중고상에서 필요한 가전제품을
사고... 일부러 번화한 곳 -입지 좋은 곳에 집을 얻은 그녀는 밤마다 그 흥성스런 밤 분위기를 즐긴다. 부럽다 부럽다.라는 생각이 요동쳤다.
미리 돈을 좀 모아서 나도 저렇게 서울살이 좀 해볼걸 하는 생각 말이다. 저자처럼 28년 전이면 그때 그렇게 해봤음 추억이 소복하니 쌓였을 것이고 나도 뭔가 커리어를 좀 쌓았을까?
인간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쉽고 궁금해한다.
요즘 신문기사에서 길을 걷다가도 칼을 맞고 집 앞에서 쓰레기를 비우러 가다 폭력을
당하는 것을 보면 낯선 서울에 사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물론 일부이긴 할터이지만 말이다.
28년 전에는 저런 끔찍한 사고는 없었던 것 같은데...
하여튼 28년 전의 도쿄에 입성한 이후 그녀의 삶은 자유롭고 낭만적이다.
이웃 간의 층간 소음도 지혜롭게 해결하고... 일거리도 스스로 잘 얻어내고 친구도 잘 사귄다.
그래서 그녀는 도쿄에 서서히 정착해 가는 것이고 매일매일 자신이 사는 곳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도쿄에 정착하면서의 일상을 잘 기록해 놓아서 페이지마다 독자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든다.
그녀가 쓴 글 중에서 박장대소 한 글이 있었다.
평소에는 성마른( 도량이 없고 신경질적인) 아버지였다. 밥공기나 접시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걸 몇 번이나 봤다. 이른바 밥상 뒤엎기다.
아버지는 대체 왜 저래?
이해를 못 해서 어른이 된 후에도 몇 번인가 크게 싸웠다
언젠가 화가 난 아버지가 찻잔을 장롱에 던져서 깨트렸다. 쌓일 대로 쌓인 나도 똑같이 머그잔을 장롱에 던졌다.
아버지는 많이 놀랐을 것이다. 평소에도 자기 혼자 발끈했다가 끝나는 상황에 딸이 뛰어든 것이다.
이후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지만 둘 다 텔레비전을 향해서는 던지지 않았다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간만에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젊었을 때 욱하는 성격에 밥상 뒤엎기 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남자들의 밥상 뒤엎기는 일본이 남긴 잔재인가?
그때는 점심 밥상 앞에서였고 내가 10살 때였다. 밥상 앞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시비가 붙는가 싶더니 아버지가 동그란(3-4인용 철제밥상) 밥상을 갑자기 뒤엎었다. 그런데 밥그릇과 반찬통만 엎어지고 밥상은 그대로였다. 마침 동생들은 없었을 때다.
그때였다. 몇 번의 밥상 뒤엎기에서 가만히 있던 엄마가 이번엔 참기가 힘들었던지
" 에라이~!" 하면서
밥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매번 순종적이던 엄마의 맞대응에 놀랐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아버지가 밥상 뒤엎는 것을 본 적이 결코 없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도 엄마도 그땐 30대였으니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애들 셋 낳고 힘들었지 싶다.
자기가 살 곳을 마음에 드는 곳으로 선택하고 집도 뭔가 세련되고 좋은 집보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선택하는 저자의 태도가 좋았다. 도시의 시끌벅적함과 집 앞에 가게가 많아서 슬리퍼를 끌고 집에서 입는 티셔츠만 입고도 갈 수 있는 가게가 즐비한 곳,
나 역시도 그런 곳에 있는 집을 좋아한다.
예전에 내가 학원을 할 때 지냈던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고 나는 학원(2층) 앞 도로변에
밤이면 수많은 리어카들이 줄을 지어 있고 책방. 커피숍. 편의점. 술집. 옷가게. 과일가게 등등이 불을 밝히던 그 밤의 분위기가 좋아서 덩달아 수업도 활기차게 잘 되었던 것 같다.
특히 겨울에 창문을 통해 군고구마 장수가 보이면 재빨리 내려가서 고구마를 봉투에 담아 오던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 속의 하나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지금 사는 곳은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책 제목처럼 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상가 중심지는 아니지만 상가들이 있는 길 위에 있고 정문 앞에는
커피숍. 꽃가게. 떡집. 미용실. 편의점 등등 줄지어 있다. 다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그러지는 않아서 활기찬 맛이 떨어지는 것이 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그만 걸어내려가면 중심상가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가게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자주 주인이 바뀌거나 가게 간판이 바뀐다. 특히 우리 아파트 상가는 인터넷 주문을 받는 인테리어나 부동산. 그리고 생일파티 해 주는 그런 상점들이 입점해 있다. 다행인 것은 편의점이 하나 있다는 것.
길만 하나 건너면 오랫동안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아주 긴 하천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고 비가 오면 물이 넘칠 만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살이 거칠다.
아파트 뒤는 낮은 산이 둘러쳐져서 우리 아파트 조경은 그 산이 80프로를 책임진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뻐꾸기 소리를 듣는 곳도 여기 아파트다.
<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는 여행도 못 가고 일상이 갑갑할 때 커피 한 잔
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두껍지 않아서 쉬면서 읽어도 하루면 다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