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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Aug 12. 2024

하나님께 구하라

 이복우 목사 (합신대학원 교수)

  야고보서

<15-8>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513-18>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야고보서의 시작과 끝은 기도다.  그것은 우리의 부족. 고난. . 우리의 연약함(무능함)은 관련된다.  

   

1. 우리의 부족     


1장 5절의 ‘지혜가 부족~’에서 지혜란 세상(땅)이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성품이요 성령의 열매다.(약 13장 17절)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성품이. 인격이, 믿음의 행위가. 순종 등등이 부족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라고(기도)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건데 무시되는 경우는 심각한 것이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따라 “아버지여~”라고 부름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께 말씀을 읊듯이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묵상해야 한다.

결국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상대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상대로 보이려고 기도하였다. 혹자들의 기도처럼 하늘 보좌를 흔드는 기도.. 이런 표현은 든든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잘못된 표현이다.

또한 5절의 ‘후히 주시는 하나님’을 보라.

여기서 ‘후히’는 후히 주실 수 있는 관대하신 ‘한 마음’이다. 그리고 ‘주시는’이라는 동사는 야고보서에 자주 반복된다.

 이 하나님의 ‘한 마음’이야말로 8절의 ‘두 마음’과 대비된다. 인간은 두 마음을 가지고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한 마음’을 가져야만 아낌없이 관대할 수 있다.     

(5절)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신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한다. 기도자는 기도할 때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받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응답이며 기도자의 가장 큰 축복이기도 하다.

(6절)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5절의 모든 사람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주신다.

우리가 응답받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덕분이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서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성품에 의지하여 기도함으써 하늘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에도 제한은 있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시지만 믿음을 조건으로 보신다.

6절에 의심하는 자는 바다의 거친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요동치고 의심을 하고 불완전하다.

8절의 ‘두 마음’인 것이다. 줄 거다와 안 줄 거다 사이에서 무질서한 사람에게는 응답이 없다. 1장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즉 온전한 선물을 주시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것이 아닌 연단일 수도 있다.     


2. 고난


-5장 13절에 신자는 평안할 때도, 고난의 때에도,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신앙적 삶이 오르락내리락하면 안 된다.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원망을 돌리지 말고 기도하라. 고난 중에도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주변에서도 고난에 처한 자들을 비난하기보다 함께 격려하며 세워가야 한다.     

3.


-5장 14절의 ‘너희’는 신자들로서 그들도 육신을 가져서 아프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한다. 여기서 교회는 교회공동체로 교회에 속한 장로이며 목사도 포함된다. 목사들은 신자가 청하면 열일을 제치고 가야 한다. ‘기름’은 주의 이름으로, 즉 주님의 존재에 의존하여 기도한다. 병자의 치료는 주님에게 있다. 이어서 15절의 구원은 치료의 의미다. 치료 자체도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행위인 거이다. 그래서 병든 자를 일으키는 것은 기도자체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

4. 우리의 연약함 (무능함)

5장 17절에  엘리야도 사람으로서 연약하며 우리와 같은 성정 즉 감정과 욕망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늘의 비와 땅의 열매가 있었다.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기도로 극복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나의 무능함이 하나님의 전능함을 만나는 자리다.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엄청 크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많은 문제들을 직면한다. 그것들을 극복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은 ‘기도’라는 대책을 마련하셨다.

기도하면 비는 온다. 그 믿음으로 기도시간을 채워가라.     


------이상은 합신 대학원 교수이신 이복우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서 하신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제가 은혜를 많이 받아서 요약해서올려봅니다.-----------


나는 예전부터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였던 것이 ‘기도자의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소홀히 하면서 나는 기도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오래 앉아서 기도를 하고 금요기도회나 새벽기도회에 성도들이 다 가고 없는 빈 예배당에서 기도를 끝내고 보면 늘 나 혼자 남아 있었다.

 그래도 더 기도하고 싶은 것을 참고 예배당 밖으로 나온 적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30분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든다. 날이 무더운 탓도 있지만 말이다..

기도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이복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날로 진화하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성경책을 읽는 시간도. 기도하는 시간도 부족해진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그랬다. 내게 해로운 것은 나를 미친 듯이 빨아들이고 나는 서서히 그것들에 시간을 빼앗긴다.

그러나 좋은 것들은 내가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진정.. 기도의 시간과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실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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