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에보시다케 전망대의 108 계단

by 미셸 오

어느덧 비는 그쳤다.

버스는 구불구불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잘도 올라갔다. 이 길엔 차가 양방향에서 마주치면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위에서 차가 내려온다는 신호를 받으면 기다렸다가 올라가야 된단다. 산 위에서도 마찬가지.. 차가 올라오고 있다는 신호가 뜨면 내려가선 안된다. 그만큼 길의 폭이 좁았다.

landscape-800479_1280.jpg 픽사베이

차가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고 꼭대기 전망대까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미 버스로 거의 산정상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가이드가 계단 한 개만 올라가면 된다고 한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린 것이 실수였다.

막상 오르기 시작한 계단은 생각보다 많았고 거의 직선형의 가파른 계단이었던 것이다.

나는 중간중간 쉬었다가 오르기를 반복했다.


겨우 한 턱의 계단을 다 올라섰다 싶었는데 또 올라온 만큼의 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이 진퇴양난이다. 숨이 턱턱 막힌다. 결국 철구조물로 된 에보시다케 전망대를 눈앞에 두고서 -또 계단을 올라야 함-하산을 결정했다. 같은 버스를 탔던 할머니도 나처럼 올라가지 않고 전망대 계단에서 쉬고 계셨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오셨나 싶다. 내려가는 계단은 올라온 곳의 반대편에 있었는데 역시 가팔랐다.

올라갈 때보다 배로 힘들다. 앞으로 고꾸라질 것 만 같아 다리에 힘을 주었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전에 내린 비로 젖어있던 옆 난간은 미끄러워서 내 몸을 지탱해주지 못하였다.


그런데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온 뒤 주차장에서 본 전망도 멋지다. 멀리 리아스식 해안이 훤히 보였다. 어차피 주차장 있는 곳도 산 정상이었는데 말이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허벅지와 종아리에 온통 파스를 붙이고 있다. 너무 근육이 당긴다.)

주차장에서 본 조망... 아름답다... 육지와 산의 조화

주차장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니 다들 내려와 빨갛고 앙증맞은 푸드트럭 앞에 모여 크로켓을 먹고 있었다.


63년간 3대째 내려온 가족이 하는 집이란다. 지금은 두 자매가 운영한다고. 돼지고기 크로켓과 커피가 맛이 좋았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들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오른다.

크로켓을 천천히 씹고 커피를 홀짝이며 리아스식 해안을 천천히 음미하지 못하는 것이... 쉴만한 공간이 없는 것이. 다음 여정을 위해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만 하는 것이.. 자유여행과 다른 패키지의 단점이겠지.

그렇지만 패키지가 아니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을 눈에 담지는 못하리라.

stairs-1458533_1280.jpg 픽사베이

다음 여정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면서 여행지에서 발견한 또 하나.

이곳에서 마주한 높은 계단이 굳이 저기까지 가야 하나 하는 싶은 인생의 구간과 닮아 있었다는 점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끝이 보이지 않고 한 칸 한 칸이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 보았을 때 내가 꽤 많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멀리 있는 목표를 한 번에 오르려 하기보다는 발 앞의 한 계단에 집중하면 결국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누군가는 중간에 쉬고 누군가는 단숨에 오를지라도... 방식은 달라도 멈추지 않는 한 모두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설령 마지막 고지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했으면 된 것이고 한계를 인식하고 내려온들 누가 뭐라 할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편으로 인생의 힘든 시기란 지금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