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아루 리조트. 와타즈미신사

by 미셸 오

소아루 리조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이즈하라에서 버스로 20분쯤 걸린다.

그 길을 가는 동안 가이드는 자신처럼 가이드를 하던 한국인 여자가 이곳 대마도에 정착해서 사는데 마을 사람들이 매일 먹을 것을 갖다 줘서 반찬값이 안 든다고 한다.

'반찬값이 안 든다'는 말에 내 귀가 쫑긋거린다.

그렇지만 나라면 이 대마도에서 못 살 거 같다. 나는 나를 자신의 틀에 가두는 사람과 내가 어디든 쉽게 갈 수 없게 만드는 곳-특히 섬-에 사는 것을 싫어한다.

여행자들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가 자신을 묶어 놓는 도시를 발견하곤 한다는데. 나는 아직 여러 곳을 여행해 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평생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끄는 도시나 지역을 만난 적이 없다.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고 20대. 30대 여러 지방을 여행을 다니고 이사도 서너 번 했지만 나를 사로는 곳은 없었다.


중국 청두의 대나무 숲이 유명하다던데 사진으로 보는 그곳의 대나무 숲이 꼭 이와 비슷했다.


픽사베이

강처럼 길게 이어진 바다(진짜 강인가?)를 낀 좁은 도로를 지날 때는 한쪽 버스 바퀴가 물에 빠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리조트는 스가나무가 반쯤 잘려나간 산 아래 있었다. 나무가 잘린 산은 무척 허전하다.

배정된 방은 B동 204호였는데 다다미 방안에 이불 네 개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게 펴져있었다. (2인용 방을 4인용으로 바꾼 듯)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얼굴을 대 본다. 다다미 표면이 매끈하고 부드럽다. 그런데 이 다다미가 여름에 습기를 잔뜩 머금었다가 겨울에 바싹 말라 부서지면서 먼지를 일으킨단다.

짐을 푼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갔다. 번호가 붙여진 테이블 위에는 삼겹살과 채소가 놓였고 무쇠불판 위에 포일이 덮여 있었다.

그 외엔 반찬이 없다! 김치를 두 접시 사비를 들여 사 왔다. 한 접시에 4천 원. 여기 와서 김치 장사만 해도 돈 벌겠네. 쌀과 국은 무한리필. 쌀밥은 쫄깃하고 윤기가 자르르 흘러서 반찬 없이도 맛있다.


픽사베이

예전에 태국에서 일본의 오니기리 비슷하기 둥글게 뭉쳐진 찰밥이 맛났던 기억이 났다.

태국에 새벽에 도착했는데 비닐봉지에 손주먹만 한 밥에 고기를 산적 비슷하게 꼬챙이에 끼운 것과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는데 밥을 먹는 내내 밥알이 한 개도 떨어지지 않는 것도 신기했고 고기도 얼마나 맛있던지 봉고차 안에서 간단하지만 최고의 별미였었다. 그때 그것은 찰밥이었고 이것은 멥쌀밥이다.

숯불에 구운 바비큐가 아니어서 서운하긴 했지만 돼지고기가 누린내 없이 싱싱하다. 남은 채소까지 다 구워 먹으니 배가 불러버렸다.

픽사베이
소아루 리조트 가는 길

식후 피곤했던 우리는 일찍 잠에 들었다가 빗소리에 잠을 깼다. 간밤에 천둥 번개가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해서 창을 여니 땅이 흠뻑 젖고 비가 내리고 있다.

이 섬에서 폭풍우가 치면 1박 2일이 4박 5일도 된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난다


아침은 전형적인 일본식 밥상이다.(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음) 쌀밥. 미역된장국. 고구마 줄기볶음. 한입크기의 두부 한 조각. 청어 한 조각에 야채 조금. 역시 한입 크기의 반달어묵 한 개다. 식사 후 반찬통이 텅텅 비었다.

강일까 바다일까?
버스에서 바라본 창밖

숙소에서 준비를 마치고 나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거세졌다.

가이드가 말하길. 기후가 예측불허여서 대마도에 들어왔다가 며칠간 배가 안 뜨는 경우를 대비해 카드를 반드시 준비해야만 하고.... 자연재해로 인해 배가 출항을 못할 경우 모든 경비는 개인별 부담이라는 등등의 말을 전한다.


첫 여정은 와타즈미신사였다. 이곳은 바다의 신을 모신 곳으로 풍어. 항해. 안전. 자손번영을 기원하는 중심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바다 가운데서부터 도리이 3개가 육지까지 적당한 간격으로 띄어져 있어 바다신이 육지로 올라오는 관문 아니면 용궁으로 드나드는 통로 같다. 육지와 맞닿는 곳에 세워진 첫째 도리이는 밀물때면 그것이 잠겨 신비롭게 보이고 썰물 때는 도리이 밑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첫째 도리이 바로 앞 땅에는 넓적한 바위가 놓였는데 그것이 바다신이 벗어 놓은 비늘이란다.

속도를 늦춘 버스 안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도리이를 보며 사물에 이야기를 붙이는 인간다움을 본다.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는 남듯이.. 소멸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저항일까.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불안하다. 그래서 저 돌기둥에. 바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연을 필연으로 가장하면 세상을 좀 더 이해가능한 구조로 바꿔주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저 사물들. 이야기를 만들어 이곳 사람들의 일부가 되어버린 저 도리이는 진정 그냥 물건이 아니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여태껏 뭘 소중히 여기면 살아왔는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알고 싶어서 내가 가진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나의 일부. 사물에 서사가 생기면 모든 것이 나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