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나 드럭스토어,카페가 나란한 이즈하라 중심 거리는 얼핏 보면 한국의 거리와 다를 것이 없다. 글자만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바뀐 느낌이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현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런 느낌 아는가? 다 똑 같은데 말이 안 통하는 것. 물건을 사고 싶은데 다른 언어로 마구 적혀있어서 어떤 내용물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답답함을. 그것은 흡사 뒤틀어진 시공간에 버려진 듯한 느낌인데 나는 그런 답답함을 드럭 스토어에서 느꼈다.
여행이 끝난 후 집에 와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요즘은 챗지피티만 있으면 얼마든지 상품에 적인 일본어를 해석해서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었지만 1박 쯤이야 어때서 하는 마음으로 미리 휴대폰을 로밍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장소를 옮길 때마다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와이파이는 숙소에서만 가능했다.
우리가 발을 들여 놓은 드럭스토어는 동네 마트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마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것 같았고 먼저 온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이미 쇼핑한 바구니들을 들고 줄을 선 사람들 앞 계산대에서는 점원들이 바쁘게 손을 놀린다. 우린 각자의 바구니를 들고 상품들이 빼곡히 진열된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선다. 약이며 화장품들이 즐비한데 어디에 쓰는 것들인지 모르겠다. 꼬부랑꼬부랑 일본어 천지. 뭘 사야 되나...
일본의 두통약. 위장약. 파스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비슷한 약들이 무수한데 영어문구나 한국어 설명은 전혀 없다.
다른 일행들을 따라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안약 코너에 갔더니 안약이 세분화 되어 있어서 내가 사고자 하는 알러지 안약이 뭔지 모르겠는거다.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만 것이 속상하다. 읽을 줄은 알겠는데 아직 단어를 안 외워서 해석이 쉽지 않다. 일본어 '파.라.누' 가 거의 비슷해서 읽는 것조차 헤맨다. 젠장.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갑갑하다. 와우와우...나는 이때 평생 한글을 몰라 한스러워하던 돌아가신 엄마의 답답함을 고스란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한자가 있는 부분은 해석이 되었다는 점이다. 몇몇 한자를 통해 읽으니 내가 고른 안약은 눈이 충혈할 때 넣는 안약과 각막이상에 넣는 안약이다.
우리나라에는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되는 안약들을 증상에 따라 구분해서 파니까 이런건 좋네.
안약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은옥과 수진은 이미 바구니에 물건들로 채워지는 중이다.
나는 일단 안약코너를 떠나 일본에 자주 왔던 수진을 따라 간다. 그녀는 평소에도 " 일본엔 ~가 좋다" 이런 식의 말을 잘 하곤 했으니까. 역시나 여러 종류의 라면이 놓인 곳으로 가더니 초록과 빨간색 줄이 선명한 라면 두 묶음을 집어든다. 신랑이 좋아하는 라면이라나.
"이 라면 맛있어요..아니고 라멘..."
라면이면 어떻고 라멘이면 어떤가.
나도 따라 집어 든다. 모를 땐 따라 하는 것이 덜 손해다.
"일본 여행할 때 식당에서 라멘을 많이 먹었거든. 이 라멘이 그때 먹은 바로 그 라멘 맛이 나더라고."
그렇다면 맛있겠군. 언젠가 우리 동네 일본식 식당에서 돈코츠라멘을 사 먹은 적이 있었는데 짭기만 하고 내 입에 별로였었다.
수진의 바구니를 힐끗보니 약통들이 보인다. 일본에 가면 약을 사겠다더니 맨 처음 약부터 샀나보다. 진통제와 소화제들이다. 나도 약이 있는 곳으로 가서 진통제를 한 개 집었다. 진통제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거니까. 곧이어 은옥이 어딘가에서 나타나 과자 코너에서 젤리를 뒤적인다. 맛있는 젤리라면서..한 봉지를 들어올리는데 포도와 사과그림이 그려져 있다. 맛있어 보인다. 나도 한 봉지. (이 젤리는 집에 와서 이틀 만에 다 먹어버렸다.)
딸만 셋인 은옥의 바구니엔 전부 과자 아니면 젤리다. 그리고 딸아이들을 위한 화장품들도. 내 딸은 화장을 하지 않으니 화장품을 살 일은 없다, 여행 전
" 뭐 사다줄까?"
했을때
"아무것도 사오지마. 여기서 다 팔아" 그랬던 것이다.
한편 정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나는 진통제. 라멘. 젤리가 든 바구니를 들고 어정쩡하니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수진과 은옥은 저쪽으로 가더니 화장품을 추가로 사들고 온다. 오렌지색 병에 담긴 로션과 크림인데 가격이 일만원대다.
"이거 어디서 샀어?"
나도 사고 싶어졌다.
"살거야? "
은옥이 내게 묻는다. 나는 순간 망설인다. 가방이 무거워질 까봐. 아니 집에 이런 세럼.크림이 있잖아..그런데 이런건 사놔도 되지..등등.
"사?? 안사? 빨리.."
은옥이 내게 재차 물어서 사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재빠르게 코너로 가서 똑 같은 화장품을 가지고 왔다.
내가 은옥을 따라 산 것은 클렌징폼. 세럼. 크림. 젤리고 수진을 따라 산것은 진통제와 라멘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물건은 하나도 없다. 이거 쇼핑 잘하는 건가? 아리송하다.
여권을 내고 계산을 하는데 10만원 정도 나왔는데 10프로 감해준다.
9만원정도.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와? 잘못 계산한거 아냐?"
나는 과자와 라면 가격이 이만큼인가 싶어 깜짝 놀란다. 화장품도 만원대였기 때문에 잘못 계산된 줄 알았다.
은옥도 돈이 많이 나왔다면 영수증을 확인해 보라고 한다.
계산서를 보니 ..아...진통제 가격이 거의 3만원 선이다. 한국의 타이레놀도 좋은데 이렇게 비싼 진통제라니..잘 산건지 또 아리송송.
"비싼거 같지만 안에 약이 많이 들어 있어서 비싼게 아니야" 라고 수진이 옆에서 거든다.
그럼 그런가 보다..
내가 진정 사고 싶은 건 안약이었는데 안내를 해주는 직원도 없고 시원하게 일본어를 해석해주는 사람도 없고 로밍이 되었다면 쳇지피티에 물어보았음 해결되었을 것을 .당시엔 머리가 멍해서 머리 회전이 안된 탓도 있다.
오래 전, 알러지 눈병으로 고생할 때 안약을 두 번이나 바꿔도 낫지 않아 한달 간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 의사가 비보험 일본제 약이라도 하겠느냐고 해서 일본제 안약을 처방받았는데 어찌나 눈이 시원하던지 그렇게 가렵던 눈이 싹 나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일본 안약은 꼭 사야만 했었는데 말이지.
드럭스토어를 나와 마트로 가면서
"발바닥 안아파요?"
은옥이 내게 묻는다. 나의 발바닥은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어떤 힘으로 걷는지 나도 모르지만 이번에 마트로 가서 먹을 것을 사야했으니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걸었다.
가이드가 저녁 시간에 먹을 물과 간식을 사라고 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한국의 전형적인 마트 모습이다. 다만 일본어로 표기된 물건들 뿐이란 것.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일본의 모찌떡과 푸딩은 넘길 수 없지. 우린 물과 푸딩을 각자 하나씩 사고 떡코너로 갔다.
떡모양처럼 만든 갈색과 노란색의 찰밥이 맛있어 보여 집어드는 데 정은은 밥을 먹을 건데 왜 사냐고 해서 슬그머니 내려 놓았다. 식당에서의 밥이랑 이런 밥은 맛이 다른데 말이지. 정은의 눈에는 다같은 밥으로 보이는 거겠지. 난 밥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손에 넣어도 밥알이 떨어지지 않는 찰밥의 그 쫀득함을 사랑한다. 그러나 너무 과식하면 안되니깐 참은 거다. 모찌떡이냐 찰밥이냐. 모찌떡에 손을 들어 준거다.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수진과 은옥은 아직도 쇼핑 중이고 종이컵을 사러 다시 들어간 정은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리가 아픈데 앉을 자리도 없고. 화장실에 가려니 길이 엇갈릴까봐 못가겠고 화장실도 안보인다.
토이레와 도코데스까? 이정도는 아는데 말이지. 피곤하니까 말하기도 귀찮아졌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인지 일본인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 구분될 뿐. 한 할머니가 내 앞으로 오길래 일본인인 줄 알았는데 한국말을 해서 아...관광객이었구나 할 정도.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세 명이 계산대에 나타났다. 지폐를 넣으면 물건 값만 빠지고 동전이 좌르르 쏟아지는 것이 신기했다. 옛날 빠찡고 기계처럼.
우린 더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신사 옆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이제 발이 천근만근이다. 대기중이던 버스에 오르니
"이렇게 물건을 많이 산 사람들은 진짜 오랫만에 보네요"
가이드가 큰 소리로 말하며 웃는다.
"나중에 쇼핑백에서 하나씩 물건을 가져갈테니 그리아세요" 라고도 했다.
우리는 대꾸할 힘도 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버스는 우리가 착석을 하자마자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