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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금석성 터와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by 미셸 오

볕이 뜨겁다.

길가에 처음으로 고등학생으로 뵈는 현지인 학생 세 명을 보았다. 은근히 반갑다.

그 뒤로 20대 청년이 캐리어를 끌고 간다. 자유여행을 온걸까? 외모로 봐서는 한국인인지 일본인지 구분을 못하겠다. 몇몇 가게들이 붙은 큰 도로를 지나 오른 쪽으로 몸을 트니 우리가 갈 드락스트어. 마트. 그리고 저 멀리 금석성 성문입구가 보인다.

가이드는 성터로 가기 전에 일본으로 왔던 통신사들에 대해 장구한 설명을 늘어 놓는다. 여전히 땡볕 아래다.

또 서서 가이드의 설명이 끝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옆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듣는둥 마는중 딴짓을 한다. 옆에 아이 엄마는 아이가 개미를 가지고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5살 정도의 여자 아이는 개미를 자신의 팔뚝에 올리고 개미가 팔을 오르내리는 것을 즐긴다. 가렵지도 않은지 한참 만에야 개미를 땅에 내려 놓는다.

개미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타고 몸으로 기어갈까봐 나는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지금 가이드는 일본으로 왔던 통신사들의 일행이 사백여명이 넘었다는 것과 조선에서 출발하여 다시 한양으로 가기까지의 기간이 거의 1년이 걸렸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와 몇몇 빼고는 가이드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열심히 듣는다. 나는 그늘에 좀 앉았다가 바로 옆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돌이 하나 세워져 있고 안내판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유심히 보았다.


글을 요약하자면 이 '시라이시'(흰돌)는 신공왕후가 임신 중 출산을 미루기 위해 배에 댔다는 출산의 돌이다.

그녀는 신라 정벌을 위해 바다를 건너기 전 이 돌을 사용했다고 하며 귀국 후 오진 천황을 낳았다. 이 돌은 일본에 가장 오래된 진락석(안산을 기원하는 돌)이라 적혀있다.'

덧붙이자면 신탁을 받아 신라정벌에 나서려 했던 신공왕후가 출산을 미루기 위해 복부에 하얀 돌인 진락석을 대어 태아를 진정시켰다는 이야기다.

모든 무의미한 사물에 이야기를 붙이면 유의미한 존재가 되는 법이다.

사실 금석성터나 통신사 이야기들은 대마도 여행자라면 귀에 닳도록 들었을 이야기 이지만 이 백석(흰돌)에 관한 스토리는 여기와서 처음 본다. 난 이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좋다. 기분이 좋다.


안내판을 읽고 돌을 유심히 보는데 가이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우리나라 통신사들이 배를 타고 가장 먼너 거쳐가는 것이 이 대마도인데 일본에 도착하면 일본인들이 모두 나와 구경을 하고 조선에서 같이 동행한 기생들이며 예능인들이 기예를 부리고 춤을 추는 등 거의 길거리 퍼레이드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길을 떠날 때 조선인 한 명당 일본인 시종 서너명이 따라 붙는다는.

관심 있는 분들은 신유한<해유록> ,김인겸 <일동장유가> 등을 읽어보시길 권유한다.

내가 고등학교 고전문학을 가르칠 때 다루던 작품인데 그 시대의 일본어 탐방기는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다. 이 두 작품에서 공통점은 일본의 도시는 번화하고 자연 경관이 매우 수려하며 토양이 매우 기름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쌀이 그렇게 맛있나?


<해유록>은 통신사 파견이 결정된 계기와 신유한이 제술관으로 동행하게 된 경과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718년 1월, 조선에는 에도 바쿠후(江戶 幕府) 8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의 습직(襲職)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조선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통신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4월에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는데, 이 일행에 신유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통신사 일행은 쓰시마(對馬島)를 거쳐 세토 나이카이(瀬戸内海)를 통해 오사카까지 해로로, 오사카(大阪)부터 에도까지 육로로 이동했다. 9월 27일, 에도에 도착한 일행은 쇼군을 비롯해 에도의 여러 관인들을 만났으며, 10월 15일에 에도를 출발해 이듬해 1월 24일, 조선 한양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당시 일본의 조선 사절 접대 절차부터 평민들의 생활상까지 그가 관찰한 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해유록(海遊錄)』은 18세기 초반 조선 통신사의 사행 및 조선 사람이 관찰한 일본의 사회·문물 등을 엿볼 수 있는 사료 중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신유한<해유록> 인터넷 참조-

멀리 보이는 건물이 금석성 외문이고 오른편 건물은 박물관이다

드디어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우린 금석성 터 문 입구로 나아간다. 대마도주들이 거처했던 곳이다.우리가 들어선 문은 성의 외문이자 망루역할을 한 문으로 성벽이 일자형이 아니라 사다리꼴로 지어졌다.

일본은 성 주변에 해자를 만들어 방비를 하는데 여기 금석성도 해자의 흔적으로 성 부근 옆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가이드로 부터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성 내부도 겹겹이 문을 만들어서 적이 쉽게 안으로 쳐들어 오지 못하게 했다고.


그리고 나중에 금석성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이 성에서는 조선 통신사들의 접대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가이드가 설명했지만 내가 못 들었을 수도)지금 봐도 웅장한데 이 성에서 조선인들을 접대했을 모습을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하지 않고 서로 교류하면서 각자의 독특한 문화를 주고 받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이후 금석성 터를 지나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세운 축비를 보았다. 비석 앞에는 꽃들이 있다. 덕혜 옹주는 여기 대마도주의 후예와 강제 결혼했다고 한다.

우리를 인솔한 가이드는 영화' 덕혜옹주' 속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며 믿어서는 안된다고 재차 강조하며 덕혜옹주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의 남자와 결혼한 한 여인의 일생이 이 곳 대마도에 잠들어 있다.

금석성 주변에 흐르는 물


벌써 오후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가이드는 우리에게 쇼핑 시간을 정해 준 뒤 먼저 가버렸다.

박물관 아래가 바로 한국의 올리브영 정도 되는,약과 생필품들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인구 2만 8천의 대마도에서 그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산다는 이즈하라의 첫 일정은 쇼핑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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