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만제키바시 다리에서 바람을 맞다

by 미셸 오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를 잇는 붉은 다리 만제키바시.

그곳까지 가는 동안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대마도의 풍광은 실로 놀라웠다. 하늘로 길고 곧게 뻗은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이드는 그 나무들이 스가(삼나무)와 히노키(편백나무)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쭉쭉 뻗은 나무들

히노키는 그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제주도에 사실 때 히노키나무 욕조가 있었는데 그 히노키 욕조 안에서 아기인 나를 목욕시켰었다 한다. 그 히노키를 직접 눈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나무들의 향이 강해서 그 숲에는 새가 날지 않는다고 한다.

새가 날아들지 않는 숲. 뭔가 숲이 텅 빈 느낌이다.

요즘은 일본에서 나무로 집을 짓지 않아 일본 정부에서도 저 나무를 조금씩 베어내는 중이라 하는데 그 나무로 인해 일본 아이들의 알레르기가 무척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드디어 붉은 다리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흐렸던 하늘에 태양이 솟아나 따가운 햇살이 예리한 화살촉으로 마구 얼굴이며 팔을 뜨겁게 쏘아댄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양산을 펴 들었다.

여기는 왠지 노란색이 감돈다 싶었는데

버스가 주차한 곳 주변에는 노란색의 양억귀(미국 골든로드)가 무수히 피어났다. 그 노란색 꽃이 생태계 교란종이라는데 눈으로 보기엔 그저 예쁘기만 한 걸. 노란색을 좋아하는 나에게 골든로드는 낭만 그 이상이다. 이후 어디를 가든 쓰시마에는 스가. 시노키의 늘씬한 모습과 하얀 메밀밭과 저 노란 양억귀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얀 메밀과 양억귀는 쓰시마의 가을색이라고 한다니 정말 맞는 말 같다.

붉은 다리를 건너면서 본 오른편 풍광-북? 남?

드디어 붉은 다리 위를 건넜다. 이 다리는 처음엔 목조다리였으나 1930년에 철근으로 교체하고 이후 현재 콘크리트 아치형으로 1996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두 협곡사이에 놓인 다리여서 그런지 아주 높다. 우린 지금 대마도의 허리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엔 그렇게 덥고 바람 한점 없더니 다리 위 가운데쯤에 왔을 땐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다리를 건너면서 북(아소만)과 남(미우라만)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장관이었다. 다리 아래로는 지그재그로 그려진 육지와 바다가 서로 오락가락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뻥 뚫린 시야다. 머리칼이 바람에 신나게 나부낀다. 즐겁다. 바람에 머리를 빠는 것처럼.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바람맞은(?) 여자들이 이렇게 즐겁다니. 하하하.

폭풍의 언덕같은 다리는 금방 건넜다.

다리위에서 본 왼쪽 바다 풍광-북인지 남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차장엔 버스가 미리 와 대기 중이었다. 나무로 아담하게 지어진 화장실에 들렀다. 이것도 편백나무? 스가일까? 색이 하얀걸 보니 편백나무일 것이다.

섬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로 지어진 화장실이 쓰레기 한 점 없이 깔끔하다. 넉넉하게 준비된 화장지, 물이 잘 내려가는 수세식 화장실 잘 씻긴 세면대며.. 난 어디로 가든지 화장실이 깨끗하고 잠자리가 편하면 즐겁다.

식당에서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대마도의 인상은 깔끔함이다. 우리나라 화장실도 외국인들이 오면 깨끗해서 감탄한다고들 하지만 나 역시 이 대마도의 화장실을 칭찬해주고 싶다. 정말 관리를 잘한다고.


화장실 옆에는 다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표지판이 놓여있었다.

다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

이 쓰시마 섬의 이름은 '항구의 섬' 혹은 '나루터가 있는 섬'이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고 한자로 '대마도'는 한국과 마주한 섬이란 뜻이라 한다.

붉은 다리에서 바라본 대마도는 나루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해안선들이 즐비하고 일본과 한국의 중간에 위치해서 인지 이곳의 풍광은 저 일본식 집들만 아니면 한국의 여느 해안선이라고 해도 쉽게 믿을 것 같다.


붉은 다리를 떠날 때는 이제 대마도가 내 안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낯선 곳이었는데 이제 반나절이 되기도 전에 쓰시마는 그 고유의 색을 띠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어느덧 마음 구석 어딘가에 텅 비었던 자리에 히노키의 시원하게 뻗은 몸매와 자잘한 메밀밭의 하얀 꽃과. 골든로드의 노란빛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붉은 다리 위에서는 그동안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그래서 행복해지기위해 준비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에 대해. 자꾸 탄력을 잃어가는 내 목소리에 대해, 아무 연유없이 기분이 좋았던 시절이 사라진 것들에 대해 무심했던 것에 미안해했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