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만구 신사는 이즈하라에 중심에 딱 버티고 있다. 이즈하라는 대마도의 중심지이고 이즈하라의 중심지에 하치만구 신사가 있는 셈이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신사로 가는 길은 높은 담에 쌓여 있다. 주차장 바로 옆이었다. 다시 무더워졌다. 신사 입구에는 커다란 도리이가 세워져 있다. 이 도리이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해 주는 것이라 한다. 흡사 조선시대의 마을 입구에 서 있던 열녀문 같은 느낌이지만 귀퉁이가 하늘로 날렵하게 빠진 점이 다르다.
도리이를 통해 이제 인간의 영역을 지나 신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신사 안에는 거대한 녹나무들이 신사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옹위하듯 웅장하게 버티고 섰다.
하치만은 전쟁과 무예를 관장하는 신이다. 조선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던 대마도는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을 지겨줄 신사가 필요했으리라.
가이드는 거대한 녹나무둥치 옆 계단 아래서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신사건물 보다는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서 있는 거대한 녹나무들에 눈길이 갔다. 이 울퉁불퉁한 몸뚱이를 가진 녹나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수호신의 나무로도 불려진다고 하는데 일본 신사 주변에는 이 녹나무가 많다고 한다. 수령이 천년이 넘은 녹나무도 있다는데 여기 보이는 나무도 족히 몇백년은 되어 보인다. 녹나무가 나란히 있는 경우는 부부 녹나무로 불린다고.
나는 이끼 가득한 돌에 앉았다가 바로 일어났다. 내 엉덩이에 눌린 이끼가 먼지가 되어 바람한점 없는데도 풀풀 날린다. 비석에도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옷깃만 스쳐도 가루가 떨어졌다.
너무 오래되어 돌이 삭은건지 이끼가 삭은건지 이끼와 돌이 한 몸이 되어버린 세월의 흔적들.
신사는 우리나라의 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치만구 본당에는 들어가지 않고 계단 아래서 모든 것이 끝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겐 본당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설령 신사 입장이 허락되었다고 해도 신사에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다만 땡볕에 지쳐 나무 그늘에 서서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만 몇 장 찍고.
수진과 정은은 가이드를 둘러싼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경청하는 반면에 은옥과 나는 내리쬐는 햇살에 서서 언제면 끝나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계속 서 있기가 힘들어서 어디든 앉을 곳을 찾았지만 없었다. 신사로 오르는 오른 쪽 계단에서는 다른 여행팀들이 나무그늘이 진 계단에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다음 코스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저 팀을 인솔하는 가이드는 사람들을 편히 그늘에 앉히고 설명을 해 주는 타입이었지만 우리 가이드는 늘 우리를 땡볕에 세워두고 설명을 했다. 말은 청산유수였지만 말이다.
우리 팀 가이드는 드디어 한바탕 설명을 끝내고 다음 코스로 자리를 바꾼다.
신사 마당에서 흰고양이와 갈색 고양이가 서로 장난을 치고 있다.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너무 예쁜 흰고양이다.
"고양이를 만지지 마세요" 라고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자 고양이들이 자리를 슬슬 떴다. 양지에서 배를 내놓고 장난치는 고양이들이라..평화롭다.
딸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고양이들의 행동이 느긋한 곳이 사람들이 고양이를 적대시 하지 않는 곳이라 한다.
그렇지 않은 곳은 고양이들이 사람들을 경계한다고. 고양이도 사람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이즈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