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나는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사카모토? 마지막으로 전하는 이야기?
이 사람 죽음을 앞둔 사람인가?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암에 걸려 이 책을 쓴 것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그 순간에 그는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류. 이. 치. 사. 카. 모. 토 나는 작가의 이름을 천천히 씹어본다.
왜 난 이 사람의 이름을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일까.
그의 글을 읽어 가는 시간이 겹칠수록 이 예술가의 독백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책의 중간쯤에서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글을 읽을 불특정 다수에게 그는 경어체의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이듯이 들려준다.
책의 전반부는 자신이 암을 선고받은 후의 치료과정과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다.
“제 몸이 건강할 때는 시간의 영원함이나 일방향성을 전제로 하는 면이 어딘가에 있었는데 생의 유한함에 직면한 지금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뉴턴의 절대적 시간개념은 틀렸다고,
“시간은 말하자면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라고.
작가는 기존의 가치관을 깨는 음악을 만든다는 평을 들어왔다고 고백하는데 내가 처음 들은 그의 음악은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 대한 철학을 이해하면서 그의 다시 음악을 들었을 때는 그의 음악 속으로 한발 내딛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달에게도 음악과 같은 힘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음악에 귀 기울일 때 느끼는 편안한 감각과 닮은 느낌을 달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말하자면 달을 보는 것은 언어 이전의 향락이었다는 것.
그는 지구의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그린란드의 오로라를 목도한 그는
“이런 숭고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니 자연이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임이 실감되어 인간이 지구의 환경을 지키려 하다니 얼마나 주제넘는 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라고 고백한다. 그는 그린란드에서의 모든 경험들은 그의 음악 ‘Out of noise’에 담아냈다.
그는 사람들이 전위 예술가로 부르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연습. 훈련보다는 즉흥적인 아이디어나 감흥을 따라 음악을 연주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아래의 글을 보면서 내가 착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예전부터 피아노 연습을 싫어했습니다. 본 공연에서 관객들 앞에서 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연습이 아니라는 것이 제 지론이기 때문에 자랑은 아니지만 리허설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뮤지션들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줄어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잃어갑니다.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앞에 연기할 때 비로소 프로의 얼굴이 만들어져요. 집에서 아무리 연습해 본들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혼자서 하는 연습보다는 실전의 경험을 중요하게 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론보다는 실전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많은 것은 진리다.
그는 또 예술가로서 언어의 기능을 탐색한다.
나 또한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 그의 언어에 대한 기술은 꼼꼼하게 읽었다.
“언어란 것은 실제로 형태가 존재하지 않은 대상에게까지 틀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안개’라는 말을 들으면 안개라는 존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이란 말을 들으면 마치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구획된 영역이 있는 것처럼..” 그는 아이들이 꽃을 그릴 때 꽃잎. 암술. 수술. 을 그리는 선택이 다분히 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본래의 자연계는 이어져 있는데 언어에 의해 선이 그어지며 그것이 인간이 범하는 오류라는 것이다. 또 이어서 우리의 신체도 다분히 유동적인데 언어와 연결되는 순간 고정된다는.
그래서 그는 로고스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워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는 아마도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받아들여만 하는 그의 상황에서 나온 결론인 것 같았다.
그는 또 미리 만들어진 대본에 따르는 것을 싫어했다.
즉 미리 그려놓은 청사진을 가지고 음악회를 열어가는 것. 즉 음악회를 열 때 출연자들마저 제작진이 골라서 데려오고 하는 것들과 미리 만들어진 대본을 들이미는 것들을 싫어했다. 이유는
그는 음악회 녹화 중에 예상에서 빗나간 재미있는 소리를 발견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숨 막히는 시대란 그런 것이다. 자유가 없고 틀에 박힌 것들만 추구하는 시대.
그가 말하는 음악의 재미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뜻밖에 일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음악적 요소에는 뜻밖의 소리들로 구성되어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낯선 소리를 찾는 나를 발견한다.
일본의 뿌리는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는 일본인들이 ‘야마토 민족’이라는 단일민족에 뿌리는 둔 국가라는 신화에 대해 혐오한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볼 때 그는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떠나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을 품은 자로서의 세계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 역시 단군의 후손이라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귀에 닳도록 들어서 거의 세뇌가 되었지만 나 역시도 우리 조상이 단일 민족이라는 점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단군신화 속에서도 단군은 이미 혼혈족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말이지.
그는 또 삿포로 국제 예술제에 가서는 삿포로가 원래 아이누 민족이 살던 땅을 일본인이 폭력적으로 개척해 삿포로 같은 큰 도시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사카모토는 우리가 그런 신화를 쉽게 믿는 이유가 단순한 스토리를 선호하는 ‘언어 뇌의 나쁜 버릇’ 때문이라고 한다.
쓰나미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때 물에 휩쓸려 버려진 피아노를 가져다가 사용한다.
“망가진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며 귀를 기울여 보니 완전히 흐트러진 조율의 현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취 있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라면서.
그의 앨범 ‘async’에 쓰나미 피아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오선지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한 예술가의 예술을 향한 창작의 순례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그가 만난 수많은 예술가들을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났다.
무용가에서부터 화가에 이르기까지.
내가 모르는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는 당황함. 뭣보다 나는 이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스즈키 구오니의
일본의 천황제나 자위대 영토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 구절에 그가 감명을 받았는데 나 또한 그와 같이 감명을 받았다.
“먼저 개인이 있고 그다음에 국가가 있다. 국가에 몸 바쳐 죽기 위해 한 사람의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라는 것.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가를 위해 몸 바칠 것을 교육받았다. 그래서 국가에 대한 맹세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 후반부.
암 치료 중 요양을 위해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하와이완 뮤직에 대해 그것은 하와이에서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지배자들의 욕망을 투영한 형태의 문화라면서 비판한다. 실로 하와이 민족음악은 찬트와도 닮은 꽤 정취 있는 음악이라고 한다.
그 외 그는 ‘마지막 황제’ 같은 영화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존재로서의 음악을 추구했던 사카모토. 돌이나 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전시하는 행위 속에서 비로소 강력함이 깃든다는 모노. 한국의 이우환 선생에게 영감을 받았고 이후 모든 사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뇌의 습성조차 부정하고자 했던 사람.
로고스를 부정하고 피시스를. 자연 그 자체를 추구하고 했던 진정한 예술가.
인간이 어떻게 하면 로고스를 뛰어넘어 피시스에 근접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철학자.
책 속에는 문장마다 작가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들과. 같이 일했던 감독들과. 작가들의 이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진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인물들을 찾아보느라 책 읽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행복했다. 그가 만든 음악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고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 일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 많은 인물들과 음악들을 일일이 쓸 수 없다. 진정한 예술가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답을 준 인물이 바로 사카모치라는 것. 책을 읽던 중 내 맘에 들어오고 내 눈에 걸리는 내용들 위주로 적어보았다.
책의 마지막까지 그의 문체는 실제로 이 사람의 성품이 그랬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 전위음악가임을 부정하며 일본이 조상은 한 조상이 아니라고 하며 원자력 발전을 반대한 인물임을. 그리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의 음악가임을 알게 해 준 책이다.
내가 한 권을 책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의 한 생애를 통틀어 보았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