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바늘을 찌르다

오르한 파묵<내 이름은 빨강>

by 미셸 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은 유럽과 아시아의 가운데에 위치한 터키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한 소설이며 예술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6세기 당시 술탄을 모시던 궁정화가들은 세밀 화가들로서 자신들의 눈이 멀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림은 그리던 방식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던 신의 관점이었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인 서양의 원근법이 들어오면서 궁정화가들 사이에 갈등과 불안을 가져오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1591년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외곽에 버려진 우물 속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로 시작되는 죽은 자 엘레강스가 화자가 되어 서술하는 이야기. 그래서 첫 장의 서술부터 낯설었던 소설이다.


살해당한 시체, 여 주인공 셰큐레, 남자 주인공 카라, 악마.. 그림 속 개, 나무, 동전, 색깔 빨강 등 사물과 개념까지 화자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이 조각난 이야기들은 장을 넘길수록 하나의 완벽한 서사구조를 띔과 동시에 사건을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살인을 한 범인은 술탄 왕궁의 화가들 중 한 명이었고 그는 서양식 그림이 이슬람 전통을 훼손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술탄이 명령한 비밀화첩 작업을 막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술탄(무라트 3세)은 베네치아 사절에게 보여줄 비밀화첩을 만들도록 명령하는데 이 화첩이 유럽의 원근법과 사실주의를 도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슬람 정통 미술은 개인의 개성과 표현을 경계하였기에 술탄의 일부 궁정화가들은 개인의 시선을 강조한 서양식 그림을 신성모독이라 여겼다. 12년간 떠돌다 이스탄불로 돌아온 주인공 카라는 사랑하는 여인 세큐레의 아버지 에니슈테 에펜디를 도와 비밀화첩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서양 화풍의 적극적 도입을 지지했던 에니슈테 에펜디도 살해된다.

이때 궁정화가들 중 나비. 올리브. 황새는 모두 자기만의 화풍을 가진 뛰어난 화가들이지만 살인 용의자로 떠오른다. 카라는 그림의 붓질과 스타일을 통해 범인인 올리브를 찾아내지만 올리브는 도망치다 죽는다.


이 소설의 예술과 신앙사이의 대립은 수백 년 간 이어온 이슬람 회화의 전통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설의 제목이 빨강일까?

빨강은 세밀화에 사용되는 물감 중 가장 튀는 색이며 심장의 색깔이다. 그 자체로 생명과 죽음을 상징한다. 이 책에서 빨강은 단순이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아래 책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여 본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면....... 빨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훌륭한 의견이요. 그렇지만 색이란 아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지"

"그렇다면 자네는 한 번도 빨간색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빨강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면 그 느낌이 철과 동의 중간쯤 되지.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뜨거울 테고. 손으로 쥐어보면 소금기가 아직 남아 있는 물고기처럼 느껴지겠지. 입안에 넣으면 입 안이 꽉 찰 테고. 냄새를 맡으면 말 냄새가 나겠지. 꽃의 향기로 치며 붉은 장미보다는 국화 향기와 비슷할 걸세."
(중략)

"그렇다면 빨강의 의미는 무엇인가?"

"색의 의미는 그것이 우리 앞에 있다는 뜻이며, 그것을 우리가 본다는 것을 뜻하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빨강을 설명할 수 없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이단자, 불신자들은 신을 부정하고자 할 때 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네"

"그러나 신은 보는 사람에게는 보이네"



이 책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일부 세밀 화가들이 자신들의 눈에 바늘을 찔러 눈을 멀게 하는 것이었다. 전통 세밀 화가들에게 그림이란 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찾아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데 일생을 바친 화가들에게 눈이 먼 것은 신이 주는 마지막 행복이었다.


참고로 당대 세밀화가 들은 쌀알에도 그림을 그려내었다고 하니 일부러 눈을 상하게 하지 않더라도 후일 눈이 멀게 되었으리라 추정하고도 남는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림을 사랑하고 색채와 시각이 어둠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식한 위대한 화가들은 색을 통해 신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결국 이 소설은 예술의 본질을 묻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림은 한 시대의 신앙과 권력과 욕망이 얽힌 인간의 역사임을 작가는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닌가.. 화가가 되려다가 작가의 길을 택했다는 오르한 파묵이 색채의 상징을 통한 예술의 아름다움과 인간 욕망의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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