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사는 집

by 미셸 오
중학교 1학년이 되던 무렵에

우리 가족은 아주 큰 저택으로 이사를 했다.

콘크리트 2층 집이 즐비한 골목길을 돌아 큰길로 나가는 맨 끝집이었는데 방 여섯 칸 짜리 독채 치고는 턱없이 싼 가격의 집이었다.집 주인이 가구점을 하면서 창고 대신 사용하던 집이었는데 가구점을 줄이면서 그 집을 세놓게 된 것이다.

몇 년간 방치했던 집은 거미줄이 얽히고 넓은 정원은 질서 없이 자란 나뭇가지들과 덩굴로 덮여있었다.

그러나 집 바깥에서 보는 집은 정말 멋졌다.

멋들어지게 갈색 돌을 박아 지은 집은 초록색의 대문에 차고까지 갖추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문 왼편에는 이층 집 지붕만큼 키 큰 잣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이층 집 현관문이 있고 더 들어가면 이층 집과 이어진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일본식 집이 있었다.

적산 가옥은 이층 집보다는 작았으나 아담하고 또 넓은 마당을 정면으로 마주한 안채였다.

우리 가족이 그 집을 들러보러 갔을 때 앞마당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꽃가지들과 뒤섞여 무성했다. 그리고 먼지가 가득한 차고까지. 부모님은 우리가 이사 가기 전에 그 집에 들러 몇 날 며칠을 청소해야만 했다.

"아유 집이 사람이 살지 않아 그런가 엉망이야."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자녀들에게 각각의 방을 주려면 자신들이 가진 돈으로 그런 집은 그야말로 공짜나 다름없었다. 주인은 적산 가옥이든 이층 집이든 마음에 드는 집에 살라며 우리 가족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우리가 안 쓰는 나머지 집은 가구를 쌓아두는 창고로 쓰겠다는 것이다.

휘영청 지붕이 높았던 이층 집보다는 집의 안쪽에 있고 장독대도 있는 일층 일본식 적산가옥을 우리의 거주지로 삼았다.

한 달을 지난 후 우리가 든 집은 정말 깔끔하게 변했다. 깔끔하기로 이름 난 엄마는 매일 물청소를 하고 정원의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고 땅을 고르고 하였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덩굴과 가지들을 쳐낸 정원은

대추나무, 동백나무, 무궁화, 나팔꽃 등 잘 자란 나무들이 꽃대와 훤하게 드러났다.

묵은 집을 살려낸 고마움인가 주인은 우리 집에 자기네들이 기르던 개도 한 마리 주었다.

완벽하게 갖추어진 독채.

사실 네 명의 가족이 살기엔 집이 너무 컸다.

그러나 넓은 마당과 물이 잘 나오는 수도. 큰 장독대.

나만의 공부방까지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보상이 따르는 법인가.

밤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불 꺼진 이층 집이 무서웠다.

늦게 학교를 마치고 어두 컴컴한 이층 집 대문 앞을 지날 때는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워 우리 집 현관문 까지 뛰어가곤 하였다.

그러나 그런 무서움도 아침이 되면 사라져 버렸다. 아침이면 나팔꽃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간밤의 무서웠던 이층 집 창문도 햇빛에 비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끔 가구점 아저씨들이 그 집의 문을 따고 가구를 꺼내갈 때면 그렇지 저 집은 가구를 쌓아두는 곳이었지 하고는 안심하였다.

그러나

그 집에 이사 후 서서히 우리 집에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나는 부엌과 이어진 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밤 열두 시 전후반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추석에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서 내 방의 식탁에 다 올려놓고 밥상보를 덮어둔 상태였다.

사방은 조용했다. 내가 넘기는 책장 소리와 연필심 소리만이 사각사각 들리는.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여러 사람이 시끌벅적 밥 먹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 밤에 무슨 일일까 싶어 내가 일어서자 소리가 뚝 끊겼다. 부엌문을 열었다. 우리 집 부엌은 옆 집의 마당과 이어져 있어 그 집에서 나는 것인가 한 것이다. 그러나 옆집은 캄캄한 어둠에 젖었고 우리 부엌도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시 문을 닫고 책상에 앉았다.

잠시 후

또 달그락달그락 숟가락과 그릇들을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설거지를 할 때 많은 그릇들을 부시는 소리와도 너무 흡사한. 설마 하고 뒤돌아서 추석 음식들이인 식탁을 보았다. 밥상보가 덮인 그곳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그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 귀가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귀신들의 장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더러운 것들이 식탁에 모여 추석 날 아침에 지낼 차례 음식을 도둑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절때마다 차례를 지내던 엄마가 하루 종일 품을 팔아 만들어 놓은 귀한 음식을 미리 축내는 것들. 내 어린 마음에도 귀신들이 다 먹어버린 음식을 조상들이 먹고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왜 귀신들은 냄새로 음식을 먹는다지 않는가.

그때는 교회에 다니기도 전이고 미신을 믿던 엄마의 말을 따라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데 추석이 지나고 다음 날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 물론 나는 그 이상한 추석 전날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병원에 들른 아버지의 말로는 엄마가 위독해서 큰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갑자기 우울하게 변해버린 추석 연휴에 우리 오누이는 엄마가 만든 추석 음식을 먹으며 외롭게 보내야 했다. 물론 귀신들이 먹었던 음식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엄마를 살려 주세요."

나의 절박한 기도 덕분인지 엄마는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하루는 늦게 까지 공부를 하고 졸린 잠을 깨려고 부엌으로 통한 문을 열고 장독대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많이 올라와 있어서 장독대 옆 집은 지붕만 보였다. 푸르딩딩하게 펼쳐진 밤하늘에 희미한 달이 박혀 있었다. 좀 갑갑하고 어두운 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고개를 젖히는 순간

아랫집 슬레이트 지붕 위에 작게 찌그러진 구름장이 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구름이 왜 지붕 위에 있지? 하고 다시 자세히 보려던 순간이었다.

이 순간 사라져버렸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곧 잊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학교서 돌아와 보니 구름이 떠 있던 지붕 집의 아저씨가 새벽에 죽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그날 장독대 아랫집 아저씨가 죽었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설마하고 말았다.

믿든 안 믿든 각자의 자유지만 어른이 된 후 어딘가에서 읽은 글에서 사람은 숨을 거두기 전의 무게와 숨을 거두고 난 뒤의 무게가 다른데 그 무게가 영혼의 무게라고 하였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보았던 얇고 희미한 구름이 그 슬레이트 집 아저씨의 영혼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잠간 지체하던 그것은 불빛이 꺼지듯 그 자리에서 순간 사라졌던 것이다. 어쩌면 그 영혼은 죽음 이후의 세계로 급히 빨려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그 집에 살았던 이 년 동안 계속적으로 그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으나 살면서 부딪히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할 뿐 그 집에 뭔가 께름칙한 것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설령 이사를 가려고 작정했을지라도

그 해 겨울에 아버지마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이사는 어려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적산 가옥의 수도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이층 집 외딴 부엌 앞으로 간 아버지는 수도를 틀어 물을 받고 있었다.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들어 올리던 순간 허리가 삐끗했고 아버지는 수돗가에 거꾸러져 버렸다.

한참이나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가 이층 집 수돗가를 찾아 갔을 때 이미 아버지는 거의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조금만 더 늦게 갔더라면 얼어 죽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 해 겨울 내내 유명한 의원을 찾아다녔고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불길한 일들이 일어났다.

낮잠을 자던 엄마가 하루는 고함을 지르며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어떤 남자가 집 마루로 걸어 들어오더니 엄마의 목을 격하게 조르더라는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실제로 당한 것처럼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엄마의 공포에 잠긴 눈빛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할 정도다.

나 역시 큰 방에 누웠는데 시끄러운 라디오 전파소리에 눈을 떠보니 우리 집 안방의 라디오는 꺼져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시끄러운 라디오의 잡음을 내 귀에 갖다 대는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곤 했다. 눈을 뜨고 있으나 뭔가에 잡힌 듯 깨어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러나 이 일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자꾸 이런저런 일들로 수심이 깊어만 가는 부모님을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자꾸 헛소리를 해댔다. 방 천정을 초점없는 눈으로 응시하며 꿈을 꾸는 듯 이상한 말들을 뇌까렸다.

가령 " 바다에 고기를 잡으로 간다." " 고기가 많이 잡혔다." 와 같은 상황에 맞지 않는 말들이었다. 우리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말하기도 하였다. 그간 삶의 시련에 단련된 강인한 엄마조차도 아버지가 이런 소리를 할 때는 무척이나 수심에 찬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겨울방학을 맞은 우리 집은 지나치게 을씨년스러웠다.

겨울이 깊어지자 이층 집을 자주 오가던 가구 집 아저씨들이 가구를 들어 옮기는 일도 거의 없었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심하게 흔들던 날은 개가 여우처럼 밤새 울부짖고 다음 날 아침에 개가 화단의 땅을 여기저기 파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개가 땅을 파면 재수가 없는데.."

엄마는 불길한 표정으로 개가 파 놓은 땅을 다시 메꾸었다.

엄마는 화단 구석에 두었던 개 집을 시멘트가 있는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러나 밤마다 기분 나쁘게 우는 소리는 영 듣기가 언짢고 무서웠다.

"우리 개는 조상이 여우인가 봐? 오우~하고 우는 것이 꼭 여우 같아."

짓궂은 남동생이

"누나야. 개 눈에는 귀신이 보인대.그래서 우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게 겁을 잔뜩 주었다.

겨울바람이 씽씽 불 때면 이층 집 창으로 무언가가 비치기라도 할까봐 일부러 그 집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동생에게 그 이층 집에 귀신이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철없는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누나 그 집 안에 아무것도 없고 가구만 있어. 잠가 놓지도 않았다. 한 번 가봐."

동생은 가끔씩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그 집으로 들어가 놀기도 하였다. 그래서

하루의 낮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이층 집을 올라가 보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증거를 확보해야 무서움이 덜 할 듯 해서였다. 물론 동생과 함께.

내가 이층 집의 실내 계단을 오를 때는 휘어진 나무계단이 예뻐서 적산가옥 보다는 이층 집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이층 집의 계단을 다 오르자 우리집 적산가옥 옥상으로 나가는 현관문이 있었다. 동생은 그 곳으로 나가서 옆집에 사는 친구이름을 불렀다.

이층 에는 방이 두 개였다. 따스한 햇살이 비쳐 들었다. 문이 열린 한 방에 들어갔는데 먼지가 가득하고 거미줄이 쳐진 침대가 놓여있었다. 아무래도 계단이 있다 보니 이층에는 가구들이 없고 빈방이었다.

그렇게 이층 집을 다녀온 이후 낮에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밤은 역시 무서웠다. 이상하리만큼 밤에 보는 이층 집 창은 어둡고 섬뜩했던 것이다. 부모님들이 친척 집에 가서 늦게라도 오는 날이면 집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켜두고 텔레비전을 크게 틀었다.

그리고 동생과 나는 매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웠다.

어떤 날에 탁발하러 온 중이 우리 집에 들어와 집 전체를 휘 둘러보더니 부리나케 집을 나가버리기도 하였다.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으나 자세히 듣지를 못했다. 다만 그 집에 대한 안 좋은 기운에 대해 말한 거 같다.

나는 그 중이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도망치듯 우리 집 대문을 나갈 때 정말 이 집에 나쁜 귀신들이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나 긍정적으로 삶을 호탕하게 살아온

아버지는 집에 우환이 자꾸 생긴다면서 호랑이 그림을 사다가 집 안방 입구에 걸어두었다.

호랑이가 기가 세서 집의 안 좋은 기운들을 막아준다는 말을 듣고 사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림 쪼가리 한 장이 무슨 힘을 발휘하리오. 나는 오히려 그 조잡한 액자 안의 호랑이가 더 기분이 나빴다. 미신을 절대 믿지 않는 아버지는 귀신의 장난 따위도 역시 믿지 않았다. 그러나 자꾸 집에 환난이 생기자 기분 나쁘게 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했다.

봄이 되자 아버지는 털갈이를 심하게 해서 우리 집 정원을 하얗게 만들고 밥 상위에 흰 털이 올라간 것을 본 뒤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가 매일 밤늦도록 울부짖고 땅을 판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다 큰 개를 우리 집에 묶어 두었던 주인집에서도 우리에게 개를 처분하도록 부탁하였던 것이기도 하였고.

일 년이 넘도록 날 향해 짖어대던 괴롭던 그 개가 사라지고 난 후 텅 빈 개 집을 볼 때 무척 슬펐다고 기억한다.

두 번째로 아버지는 사촌형부가 사 온 박제된 꿩을 던져버렸다.

꿩의 눈이 무섭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는 날이 밝기까지 꿩눈이 보기싫다고 가지가 무성한 동백나무 속에 그것을 쑤셔 넣어버렸다.

이런저런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그만큼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다들 심약해져 갔고 나중에는 별 것 아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불안해 했다.

사람이 살면서 우환을 겪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듯이 숨 막히듯 몰아치는 시련은 꼼짝없이 한 가족을 두려움의 올가미에 묶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2년의 계약이 끝난 후 우리는 결국 이층 집을 떠났다.

이 후 우리 가족은 놀랄 만큼 평안한 삶을 누렸다.

알 수 없는 무서운 기운에 눌려 항상 불안하고 숨쉴틈 없이 가위 누르던 그 불길한 느낌을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가끔 무서운 꿈을 꿀 때면 그때 그 집에 있는 꿈을 자주 꾼다.

굳게 닫힌 이층 집의 짙은 회색빛 창문의 기운에 눌려 온 몸이 오그라붙게 무섭다.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내 몸을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알 수 없는 무서운 기운.

그때 그 집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세상에는 볼 수는 없지만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기운이 가득한 집은 지극히 조심하며 피하려 한다.

지금에서야 확연히 드러나는 것인데 사람이 오래도록 살지 않은 집에는 그 집의 기운이 음산하기 마련이고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들이 서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내는 것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활발한 기운을 얻어야 건강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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