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상

by 미셸 오
6월 초

엄마가 입원한 병실은 우리 시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의 3층 이었는데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정면에 마주하여 보이는 곳이 307호실이었다.

7명의 환자들 만으로도 가득한 병실 안에는 보호자들이 들어서면 앉을 자리도 없이 꽉 찼다. 다행히도 이 병실에는 창문이 두 개 있어서 간혹 그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후텁지근한 병실을 식혀주었다.

그러나 병실은 턱없이 좁았다.

환자가 누운 침대 사이는 겨우 간호사 한 사람만이 들어설 자리만 있을 뿐이어서 보호자용 침상은 침대 아래서 나와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입원실의 환자들은 대부분 허리가 아프거나 장이 탈 나서 또는 다리가 부러진 상태의 가벼운 증세여서 보호자들은 낮에 한번씩 다녀갈 뿐 하루 종일 환자의 곁을 지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므로 특히 밤이면 보호자가 지키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다만 다리를 다쳐서 걸음을 떼지 못하는 한 사람은 간병인이 종일 돌보았다.

장기간 입원하는 환자 몇몇을 빼고는 사흘이나 일주일 사이로 새로운 환자들이 속속 들어오고 나갔다.

병실에서 얼굴이 익고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 보면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 사람이거나 또는 같은 지역의 동창 등 이리저리 아는 인척들이나 이웃들로 엮어져 환자들은 저들끼리 더 빨리 친해졌다.

병실 안 낯선 사람들이 일으키는 천태만상이 병원 밖에서 벌어지는 세상 속 삶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들 아픈 사람들이라 상대방의 아픔에는 공감했으나 한편으로는 다들 예민한 구석들이 있어 다툼도 비일비재하였다.


우선 6층 건물의 3층 307호실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 침대의 번호를 붙여보겠다,

병실 복도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문 입구에서부터 창문까지 차례로 1번 . 2번 . 3번. 4번 침대가 있고

또 왼쪽 편 문 입구서부터 창문까지 화장실. 5번. 6번. 7번 침대가 놓여있다.

특히 1번 침대 곁은 유난히 넓어서 보호자용 침대를 꺼내 놓을 수 있었기에 주로 병실에 가장 오래 머문 자의 차지가 되는 것을 일주일만 지나면 다 알 수 있다.

길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부러뜨린 60대 아줌마는 엄마가 입원할 초기에는 5번 침대에 있었으나 한 달 후 1번 침대로 옮겼고 6번 침대였던 엄마는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하면서 2번 침대로 옮겼다.

무슨 정인지는 몰라도 엄마가 307호실에서 퇴원 후 삼일 만에 입원한다는 소문을 들은 307호실 환자들이 간호사들에게 부탁해서 엄마를 다시 그 병실로 끌어들인 것이다.

우리가 307호실에 들어섰을 때 마치 친정집에나 온 듯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반겼다.

그 날

엄마가 누웠던 6번 침대에 맹장염 수술을 한 할머니가 입원을 하였다.

지난밤에 갑작스럽게 119에 실려 응급실에 왔고 오전에 수술을 마치고 급히 들것에 실려 침대로 옮겨졌다. 그런데 마취를 다 깨지 않은 이 할머니는 의사와 간호사가 서 있는 앞에서

"영감이 없다~ 우리 영감이 없다~"

하면서 내내 훌쩍거렸는데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다들 빵 터졌다.

"저 나이에 영감은 무슨~"

3번 침대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3번 할머니는 70세로 무척 건장했으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냈다고 쉴 새 없이 말하던 사람이다.

맹장염 수술 환자인 6번 침대 할머니는 하루 종일 영감을 찾으며 울다가 자다가 하였다.

저녁에야 정신이 온전해진 할머니는 1년 전에 할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었다며 생전의 남편이 너무 자상해서 죽고 나니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바짝 마른 모습에 검게 주름진 얼굴하며 머리는 새카맣게 뽀글뽀글 볶은 할머니의 순수한 사랑이 눈물겹기보다는 웃음 짓게 한 이유는 뭘까.

보통 그 나이 정도의 시골 할머니들이란 영감이 죽고 없어 참 편하다고 말하기 마련인 것을 70중반의 나이에 죽은 영감을 찾으니 젊은 나이의 이별의 그리움 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맹장염 할머니가 많이 회복되던 날,

창가 4번 침대에 위경련을 일으켰다는 70대 초반 할머니가 들어왔는데 이 할머니는 침상의 여러 환자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이유는 1번 침대 다리 다친 아주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4번 침대 할머니와 1번 침대 아줌마는 자신들의 아파트 관리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그 사이에 있던 2 번 침대와 3번 침대의 환자들은 그들의 핑퐁식 토론을 서라운드로 들어야만 했다.

결론은 그거였다.

아파트 관리비를 밀린 자들은 명단을 작성해서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 관리비를 떼어먹는 자들은 국가의 세금을 떼먹는 것이나 같다.

그렇게 열을 낸 후 4번 침대 할머니는

파프리카 한 상자를 들고 다니며 환자들에게 한 개씩 나눠주고 자신도 지나칠 정도로 과식하였다.

매운맛이 도는 그 야채를 사과를 베어 먹듯이 계속 먹는 모양이 신기할 정도였는데

결국 밤에 일이 나고 말았다. 사람들의 말을 듣기로 (나는 밤에는 집에 와버려서 직접 보지는 못함)

밤에 병실의 불이 다 꺼지고 난 후

이 할머니가 배를 잡고 아프다고 간호사를 불렀는데

의사들이 퇴근하고 없는 시간에 남아 있던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혈압을 재고 진통제를 놔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할머니가 통증이 심해져서 땅에 뒹구는데도 그 어느 누구도 이 할머니의 아픈 것을 더 이상 손봐주지 못했다. 복도에서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던 할머니는 결국에

"이 xx것들아 내가 너무 아프다고오~~~"

하면서 복도에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물론 그 고함소리에 병실의 환자들은 다들 잠을 설쳐야만 했다.

결국 응급실로 처치를 받으러 가기는 하였다는데.

아침에 병실로 가 보니 이 할머니는 전날에 그렇게 파프리카를 맛나게 먹던 할머니가 아니라 거의 죽을 상을 하고 누워 있었다. 의사가 왔을 때 전날 밤에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한 간호사들과 응급실의 의사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 할머니의 담당의는 아기를 달래듯이

"제가 그 응급실 의사에게 가서 따끔하게 혼낼게요. 그러면 되죠 할머니"라고 달래주었다.

그제서야 할머니의 흥분했던 목소리가 수그러 들었다. 그러나 그날 하루 종일 파프리카 할머니는 식사도 하지 못하고 앓았다.

병실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서 그녀의 그런 증세가 사실은 진짜 몸의 병이 아니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 할머니의 병은 위궤양이었던 것.

그렇게 하루를 보낸 이후 그녀는 다시 깨어나 밥을 먹고 걸어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언제 아프기나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생생하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또다시 위경련을 일으키곤 하였다.

또한 기운이 소생하여 사람들과 농담까지 하던 엄마가 갑자기 호흡장애를 심하게 일으켜서 앓기 시작했다.


7번 침대의 아줌마 환자는 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름 동안 먹을 것을 잔뜩 사 와서 병실 사람들에게 입맛을 충족시킨 환자였다. 그녀의 남편이 항상 무언가를 사 가지고 와서 307호 환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먹이곤 하였는데 손이 큰 건지 능력이 되는 건지

하루는 찜을 시키고 하루는 회를 시켜 병실 안의 환자들에게는 물론 간호사실까지 나누었다.

그러면 1번 침대의 환자는 남편을 시켜 수박을 사다 날으고 갈치조림을 해서 나누고 1번 침대의 환자와 7번 침대의 환자는 서로 먹을 것을 내느라 경쟁하는 듯 보일 정도였다.

"우리 물주가 퇴원하네. 이제 우짜노."

1번 환자는 그렇게 말하며 아쉬워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두 사람 외

늘 얻어는 먹는 환자들의 입장 또한 편한 것이 아니어서

다들 한 번씩은 빵이니 과일들을 사서 똑 같이 나누기도 하였으나 병원비가 걱정인 사람들에게 7인분의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7번 환자가 퇴원 후

그 자리에 92세 고령의 할머니 환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많았으나 말하는 것이 목소리도 크고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그런데 1번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이 싫은 티를 내었다.

이유인즉 이 간병인이 예전에 5층에 있었을 때 이 할머니도 그 병실에 같이 입원을 했더란다.

그런데 할머니가 밤중에 화장실에 가서는 변기에 일을 보지 않고 꼭 화장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바람에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할머니가 본 화장실 바닥 소변을 직접 치웠던 그녀는 이 할머니와 같은 병실에서 만난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고 또 약간의 치매기가 있어서

새벽 3시면 꼭 잠을 깨어 일어나 자신의 오줌 줄을 뽑아달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할머니 오줌 줄 빼면 안돼요."

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오줌 줄을 간호사가 빼고서야 잠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이면 또 오줌을 누러 가겠다며 사람을 부르고 시끄럽게 굴었다.

참을 만큼 참던 사람들은 계속 잠을 설치게 되자 결국에는 다들 할머니에게 화를 내었다.

치매 할머니의 딸이 왔을 때

" 할머니 곁에 보호자가 좀 지켜야겠어요. 할머니가 오줌을 아무 데나 싸고 해서. 사람들이 미끄러져 다치면 안 되잖아요."

라고 간병인이 말을 건네자 몸이 무척 마른 딸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할머니가 그럴 수도 있지 당신은 엄마도 없나?"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딸도 간병인도 자기들의 스트레스와 지친 마음을 할머니를 핑계로 서로에게 푸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의 딸은 '오줌을 싼다'는 그 말만 새겨들은 듯하였고 간병인은 할머니가 혼자 소변을 못보고 실수한다는 말을 하려던 자신의 '말귀를 못알아 듣고 화부터 내는 딸'의 모습에 화가났다.

사실 1번 간병인은 6번 맹장염 할머니가 퇴원 후 자신이 링거를 꽂고 입원해 있었던 터였다.

그러니까 7번 할머니의 옆 침대라 좀 쉴려던 간병인 곁에서 새벽마다 일어나서 고함을 지르는 할머니를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그래서 그 좁은 병실 안에서 할머니의 딸과 간병인의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환자들은 그들의 신랄한 싸움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 싸움 후 자식들이 다 가고 난 밤에 간병인은 치매 할머니가 잠을 깨서 말을 하기만 하면 노골적으로 할머니를 적대시하며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날,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혼자 있던 치매 할머니는

"이 병원은 죽을 달라 해도 안 주고 이렇게 말 안 듣는 병원은 처음이다." 라며 서러움을 하소연하였다.

할머니의 아들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내가 식당에 가서 쌀을 갈아서 엄마를 위해 죽을 따로 만들라고 말해 놔서 이제 죽이 나올끼다."

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을 하였다. 그런 그의 태도는 치매걸린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행동을 한 것처럼 보였으므로 병실 사람들은 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우리 옆 1번 침대의 환자는

"이 병원이 저 할머니 한 명을 위해 쌀죽을 만든다고? 그기 말이 되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엄마는 그런 시끄러운 병실에서 날로 호흡이 더 악화되었고 결국 대학병원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4번 침대 할머니도 우리가 퇴원하던 날 차도가 없자 역시 대학병원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큰 도시의 대학병원에 일주일 간 치료 후 완쾌되었으나 그 할머니는 대학병원서 잘 치료하고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에서 또 하나의 작은 세상

병실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환자들이 그 작은 세계 안에서 꿈을 꾸며 고통을 견디며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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