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늦었다!"
평소보다 훨씬 부은 눈으로 시계를 확인한 순간, 나는 이불을 힘껏 걷어찼다.
7시 30분. 출근 시간은 8시. 머릿속은 이미 아비규환.
알람이 울리지 않은 건가? 애꿎은 시계만 두드려본다. 이럴 시간이 없다.
주말에 다리지 못한 셔츠는 구겨져 있고, 양말은 짝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 바로 샤워다.
'어제 했으니까 괜찮겠지. 어차피 지금은 가을이라 땀도 별로 안 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물티슈로 대충 몸을 닦았다.
5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한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신경은 곤두섰다. 사람들이 혹시 내게서 냄새를 맡을까 봐 괜히 구석에 서게 되고, 누군가 옆에 서면 숨을 참기까지 했다. 로비에서 7층까지,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을 출근시간이었겠지만 오늘 나에게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길고 끔찍한 순간이었다.
'나한테서 냄새나는 거 아니야? 설마, 괜찮을 거야. 어젯밤에 씻었잖아.'
내가 나를 설득하는 동안, 층마다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는 나부터 빨리 좀 내리라는 재촉 같았다. 우리 부서가 있는 7층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재빨리 사무실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허저 씨, 오늘따라 얼굴이 뽀얗네? 광이 나는구먼!"
같은 기수로 입사한 한수 씨가 나를 스쳐 지나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속으로 '뽀얗긴, 씻지도 않았는데!' 하고 절규하면서도 겉으로는
"아, 하하… 어제 좀 일찍 잤어요."라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한수 씨는 내 어색한 웃음을 보며 덧붙였다.
"근데 지금 온 거야?"
그 순간, 칭찬인 줄 알고 안도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두 뺨이 얼얼했다.
사무실에 들어오니 팀장님과 동료들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사우나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갑자기 탕비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팀원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며 나를 불렀다. 그들의 손에는 케이크, 풍선, 선물이 들려 있었다.
팀장님이 환한 미소로 외쳤다.
"오늘 우리 박 대리님 생일인데, 깜짝 파티해 줘야지! 다들 회의실로 모여봐!"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니, 하필 오늘... 생일 파티라니!'
나는 구석에 찌그러져 최대한 존재감 없이 있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숨 막히는 하루는 그렇게 순순히 끝나지 않았다.
"자, 허저 씨. 케이크 좀 들어줘! 내가 촛불 켜야 하니까."
팀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케이크... 내가? 아니, 내가 왜!' 온몸의 털구멍이 비상벨을 울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 내 손에 들린 케이크는 마치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보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자, 다 같이 노래 불러주세요!"
모두가 생일 축하곡을 불렀다. 좁은 회의실 안은 사람들의 숨결과 열기로 가득 찼다. 나는 케이크를 들고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노래를 불렀고, 나는 땀을 흘리며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 몸에서 냄새가 나면 어떡하지? 아니, 숨 냄새는?'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찼다.
마침내 노래가 끝났다. 박 대리님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촛불을 끄는 순간이 다가왔다.
"후 우우우우우우우우우~"
박 대리님이 촛불을 끄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 나는 몸을 움찔했다. 그의 입김이 내 얼굴에 살짝 닿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내뱉은 숨결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 허저 씨도 같이 불어줘!"
옆에 있던 부장님이 나를 밀며 말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내가 왜요?!'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입을 모았다. '그래, 최대한 약하게 불자. 내 숨결이 케이크에 닿지 않도록. 오직 바람만...'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아주 작은 바람을 '푸~' 하고 내뿜었다. 마치 촛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촛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처럼. 다행히 내 옆에 있던 다른 동료들이 큰 소리로 '후우~'하고 불어주어 나의 존재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남은 촛불들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생일 파티가 끝난 후, 나는 자리로 돌아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팀장님이 날 불렀다.
"허저 씨, 잠깐 이리 와봐."
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 망했다. 오늘 왜 이리 나를 많이 찾으시는 거지?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걸 돌려서 말하는 건가? 아니면 케이크 불 때 너무 약하게 불어서 핀잔주시려는 건가?'
팀장님은 서류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오후에 거래처랑 미팅이 있는데, 급하게 외근을 나가야 할 것 같아. 허저 씨가 대신 좀 다녀와 줄 수 있나?"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속으로는 '하필 오늘 외근이라니!' 하고 좌절했다. 회사 사무실에서 모두가 내 비밀을 눈치챌까 봐 조마조마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외근이라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과 가까이 앉아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내 심장은 불안으로 요동쳤다.
"안녕하세요, 조인이라고 합니다. 허저 씨시죠? 여기 앉으세요."
거래처 사무실에 도착하니 새로운 담당자가 내게 자리를 권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귀밑 3센티 똑 단발에 귀여운 인상을 주는 얼굴과 선한 목소리.
내 이상형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썼지만, 내 몸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은 곧바로 겨드랑이로 향했다. 식은땀이 아니라,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미팅 내내 내 신경은 땀 냄새와 축축해지는 셔츠에 쏠려 있었다.
'이 사람이 알아차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그녀가 내 앞에 놓인 서류를 보다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녀의 얼굴이 내 어깨 가까이로 다가왔고, 상큼한 샴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허저 씨, 이 부분 수치가 잘못된 것 같아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려 말하는 순간,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나는 눈을 감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 망했다... 냄새가...'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서 냄새를 맡고 불쾌해할까 봐, 내 사소한 비밀이 들통날까 봐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겨우겨우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꽉 조였던 마음의 끈이 풀리는 것 같아 어깨가 한결 가벼웠다.
문득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가 만져져 꺼내보니 좀 전에 거래처에서 받은 명함이었다. 깨끗하고 반듯한 명함 위에는 그녀의 이름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름을 쓸어보았다. '조 인' 단정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나를 가장 조마조마하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지는 해가 명함 위로 반사될 때마다, 나는 오늘의 짧은 만남을 곱씹었다.
물 흐르듯 이어진 대화, 그녀의 밝은 미소, 그리고 겨드랑이에서 폭포가 쏟아지던 순간들까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내가 아침에 샤워를 하고 상쾌한 상태로 그녀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씁쓸한 후회와 함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 정말 길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욕실로 달려갔다. 옷을 벗어던진 뒤, 따뜻한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하루 종일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평평하게 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샤워는 건너뛰면 안 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상쾌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뜨거운 물로 씻어내도, 오늘 하루의 찝찝함과 후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샤워를 건너뛴 그 찰나의 결정이 하루 종일 나를 짓눌렀고, 나는 결국 그 사소한 실수를 만회하지 못했다.
나는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샤워가 나의 하루를 이렇게 거대하게 지배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