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떨어진 음식 주워 먹기 3초 룰

by 유로운자

샤워를 마치고 축 늘어진 몸을 소파에 던진 나는 배달앱부터 켰다.

뭘 먹을까 고르는 것도 일처럼 느껴져 가장 먼저 눈에 띈 족발을 선택하고 주문버튼을 눌렀다.

족발이 오는 동안 테이블 위에 젓가락과 앞접시를 세팅해 두고 나의 최애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를 돌려봤다.


'띵동' 배달 완료 알림과 함께 도착한 족발.

TV에서 나오는 먹방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으로는 비닐을 뜯었다.

분명 일회용품을 안 받는다고 체크한 것 같은데 나무젓가락과 물티슈가 함께 들어있다. 이 작은 배신감에 입술이 삐죽여졌다.


전화해서 한마디 할까? 지구를 조금 더 아껴 쓰고자 이런 시스템도 생겼을 텐데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그러려면 누군가는 더 귀찮아져야 한다. 미약하나마 이런 거라도 탄소중립실천을 해보려고 했는데,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전투적으로 젓가락을 들 뿐이었다.


새우젓갈 서너 개를 섬세하게 집어 족발에 올린 후 입에 넣으려는 찰나, 그만 손에서 족발을 놓치고 말았다. 엉덩이 밑에 깔린 리모컨을 빼내려던 게 화근이었다. 탱글한 족발은 우하하게 바닥에 랜딩 했고, 나는 번개처럼 재빨리 손을 뻗었다. 1초, 2초, 3초... 평소대로 카운트다운을 빼먹지 않았다. 나는 족발을 집어 들었고,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었다. 족발은 역시 맛있었고, 내 3초 룰은 완벽했다.


한 번 주입된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실 이 룰은 예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어떤 연예인이 "괜찮아, 3초 안에 주워 먹으면 돼!"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찰떡같이 믿게 된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니 어제 먹은 족발 생각에 더 배가 고파진다. 오늘은 동기들과 근처 노포에 가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먹기로 했다. 50년 넘게 한자리에서 장사하셨다는 사장님의 손맛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음식을 생각나게 했다. 군내가 숨 쉬듯 스며드는 구수한 묵은지가 이 집의 킥이다.


손잡이가 다 타서 곧 떨어질 것 같은 냄비에 김치찌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빨래판 같은 접시 위에 두툼한 계란말이가 놓여있다. 층층이 노란색 결이 살아있는 계란말이 단면을 바라보자니 나이테처럼 보였다. 이 식당의 연륜이 느껴지며 비장함 마저 든다. 대체 계란을 몇 개나 넣으신 걸까? 동기들과 오늘의 점심 메뉴 레시피에 대해 논쟁을 펼치며 연신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포슬포슬한 식감과 함께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10조각으로 썰려있는 계란말이 중 최소 3조각은 내 차지라고 생각하며 잘 말린 가운데 조각을 집어 케첩에 찍는 순간. 동기인 주태가 젓가락을 툭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야 그나저나, 너 저번에 새로 오신 팀장님 앞에서 왜 그런 거냐?"

"내가 뭘 어쨌길래?"

주태의 말에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월요일 회의 시간에 팀장님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물었는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저는 밥을 먹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라고 외쳤었다.


"우리는 네가 엉뚱한 거 잘 알지만 팀장님은 얼마나 황당하셨겠냐!"

"나는 진심이었는데. 내 아이디어는 밥심에서 나온다고! 이 맛있는 걸 안 먹고 어떻게 일을 해?"

나는 맞받아쳤지만 사실 그날 밤 이불을 차며 후회했었다. 머릿속에선 수십 개의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저렇게 말했더라면...' 좀 더 멋있는 대답을 할 수는 없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젓가락에 아슬아슬하게 달려있던 계란말이가 미끄러져 공중부양을 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놀란 나는 얼른 다른 손으로 계란말이를 받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란색 단백질 덩어리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더니, 이내 차가운 마룻바닥 위로 무기력하게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3초 룰이라는 든든한 믿음이 있다. 세균이 계란말이에 옮겨 붙는 시간은 3초, 그전에 해치우면 된다.

나는 마치 특수요원이 된 것처럼 숨을 죽이고 얼른 계란말이를 주우려고 몸을 숙였다.

그때까지 김치찌개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던 앞자리 장준이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장준의 목소리는 파도 없는 바다 같았지만 그의 눈빛에서 나오는 레이저를 느꼈다.

나는 잽싸게 자세를 바꿔 앉으며 말했다.

"아니 허리가 아파서 말이지."


장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약간 싸해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모른 척하며 밥을 입속으로 구겨 넣었지만, 줍지 못한 계란말이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1초, 2초, 3.... 초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며 신속하게 손을 바닥으로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허 주임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팀장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팀장님. 여기 식사하러 오셨어요?"

나는 손에 들린 계란말이를 앞치마 밑으로 감추며 우물쭈물거렸다.

"손에 든 건 뭐죠?

"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한 겁니다. 떨어뜨렸는데 혹시 밟으면 엉망이 될 것 같아서요. 하하. 저도 3초 룰을 믿긴 하지만, 그건 집에서나 허용되는 거죠. 하하하"

내 말에 앞에 있던 동기들은 물론, 팀장님도 입을 딱 벌리고 다음 얘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내가 뱉은 거짓말이 너무 뻔뻔해서 나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팀장님은 이내 굳은 표정을 풀고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허 주임님! 정말 재밌는 분이세요. 역시 밥심으로 아이디어 내시는 분 답습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팀장님 얼굴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민망함 대신 따뜻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허 주임님, 다음에는 3초 룰 대신 다른 아이디어 기대할게요."

팀장님은 내 어깨를 툭, 하고 가볍게 치고는 유유히 식당을 나섰다.


나와 주태, 장준은 모두 얼이 빠진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약불 위에서 여전히 끓고 있는 김치찌개는 수분이 거의 날아가 말라붙어가고 있었다.

"야, 너 대체 팀장님이랑 무슨 얘기를 한 거야? 3초 룰은 또 뭐고."

주태의 말에 나는 허탈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회사에서 '3초 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팀장님은 회의시간마다 "허 주임님, 3초 안에 아이디어 하나 날려주세요!"라고 농담을 던지곤 했고, 신입사원들은 "허 주임님은 낭비를 절대 싫어하시는 분이야. 탕비실 비품 낭비하다 걸리면 큰일 나."라고 소곤거렸다. 처음엔 부담스럽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좌불안석이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 일로 새로 오신 팀장님이나 직원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회사에서 절대 3초 룰을 시행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긴 하지만 더 이상 망신당하고 싶진 않다. 나만의 3초 룰 카운트다운 실험은 최대한 집에서만 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비위생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3초 룰은 여전히 유쾌한 진리이자 삶에 대한 유연한 태도다.


"아, 3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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