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 앞에서 멈춰서 기다리다 다른 사람이 버튼 눌러줌

by 유로운자

경쾌했던 키보드 소리가 점점 나른해지는 오후 세 시.

창 밖의 햇살은 여전히 쨍하지만, 사무실 공기는 긴장감을 잃고 가라앉았다.

당분이 필요함을 느낀 이벤트의 대모, 조 대리님이 ‘사다리 타기’ 게임을 만들어 팀원들을 불렀다. 오늘은 새로 생긴 카페의 달콤한 케이크가 당긴다며, 두 블록 건너에 오픈 행사 중인 카페의 정보를 공유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예측 불가능한 현실. 월급날이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주일은 더 버텨야 하는 주머니 사정에 어깨가 움츠려든다. 오늘은 좀 건너뛰면 안 되나?

와, 하고 환호를 부르며 원탁으로 모이는 여사원들은 이 시간만을 기다려 온 콘서트 입장객들 같다. 마치 사다리 끝에 행복이 달린 것처럼 의욕에 불탄다. 나만 이 시간이 부담인 건가.


"자, 허 주임님. 얼른 타세요. 누가 봐도 오늘은 허 주임님의 날일 것 같은데요? 하하하"

동료들이 나를 놀리듯 재촉했다. 다들 이 긴장감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고심했다. 가장 평범하고 안전해 보이는 번호. 왼쪽에서 세 번째 사다리를 골랐다. 완벽한 확률게임인 사다리 타기지만 거듭해 보며 어느 정도 전문가 수준이라고 자부해 온 나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골라도 꼭 '꽝'을 고르는 똥손 같으니라고. 꽝이 걸리면 만원을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노동의 굴레까지 포함된다. "아이고, 아쉬워라! 오늘은 안 걸릴 줄 알았는데." 3,000원, 5,000원 소소하게 걸린 직원들은 툴툴거리면서도 기꺼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현금을 꺼낼 필요도 없이 무언의 규칙처럼 자연스럽게 내 토스계좌로 입금을 했다.

'그래, 내 꽝이 너희들의 행복 일지어다.'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지도를 켜 검색을 했다. 새로 생겼다는 그 힙한 카페까지는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나온다. 오픈한 지 며칠 안 됐을 텐데, 벌써 온라인 세상에 흔적을 남긴 카페 사장님의 부지런함에 잠시 감탄했다. '일 잘하시네.'


막상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려고 하니 중력이 평소보다 열 배는 강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돈도 많이 내고 간식을 사러 가야 하는 처지가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5분 남짓, 채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길은 마치 마라톤 풀코스처럼 느껴졌다. 다들 나를 바라보며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외쳤다.

“아, 다음부터는 사러 가는 사람은 돈 안내는 걸로 바꾸시죠!”

애써 유쾌한 척했지만 목소리에는 미묘한 억울함이 묻어났다.

동료들은 까르르 웃으며 “네네, 그렇게 해요. 오늘까지만 희생해 주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같이 가실 분?”하고 나지막이 물었지만, 어느샌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척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젠장.

공기 중에 흩어져버린 내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오니 곧 생각이 바뀌었다. 귀찮음이 순식간에 산책 모드로 바뀌어 해방감이 들었다.

‘어차피 걸린 거, 즐겁게 다녀오자. 이 시간은 나 혼자 쉴 수 있는 자유시간인거지 뭐!’라고 생각했다.

손에 들린 핸드폰을 켜 릴스의 화려한 세계로 입장한다. 발은 현실세계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내 영혼은 SNS라는 가상세계에서 리듬에 맞춰 흔들렸다.


두 블록 거리, 가까운 위치지만 큰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하니 7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깔끔한 외관과 인테리어의 신상 카페에서는 인디음악이 흘러나왔다. 멀리서도 오픈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단밤오후'라.. 카페 이름만으로도 혀끝에 달콤함이 감도는 듯했다.


영혼 없는 발걸음으로 카페 입구에 다다랐다. 머릿속에서는 동료들의 주문이 반복 재생되었다. ‘아아 6잔, 뜨아 2잔, 딸기 마들렌 한 박스와 말차 케이크 2조각, 잘 들고 갈 수 있게 포장을 단단히 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생각하며 카페 입구에서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시간을 주고.

시선은 여전히 스마트폰 액정에 고정한 채,

자동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1초, 2초, 3초…


침묵 속 고요.

'어? 왜 안 열리지? 인식이 안 됐나?'

그제야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유리문 위에 붙은 센서를 째려봤다. 마치 그 동그랗고 붉은빛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일었던 짜증과 귀찮음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진짜 뭐야. 매장 오픈하면서 이런 것도 신경 안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왼손은 계속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이 아스팔트에 닿는 리드미컬 한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내 뒤에서 멈췄다.

“저기요…!”

나는 움직이지 않은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만 슬쩍 돌렸다.

‘하 젠장.’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손가락으로 push 버튼을 가리키며 내 뒤에 서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아, 이 카페는 버튼을 눌러야 유리문이 열리는 시스템이구나.' 그제야 깨달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나를 힐끗 보더니 미동도 없는 나를 지나쳐 버튼에 손가락을 댔다. "딸깍" 소리와 함께 나를 거부하던 유리문이 우리를 함께 활짝 맞이했다.


입은 벌리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뚱이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열린 문 사이로 걸어 들어갔고 유리문은 내 앞에서 다시 슈욱- 소리를 내며 닫혔다.


민망함에 다시 버튼을 누르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뒤에서 "허 주임님!"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어, 엄 사원! 지금 부장님께 온 급한 메시지를 확인 중이었어요.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

나는 그제야 허둥지둥 변명하며 버튼을 누르고 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멈춰 서있던 게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근데 주임님, push 버튼을 못 보신 것 같더라고요. 뒤에 오신 분이 눌러주시던데."


'아, 봐버린 거구나. 내 찌질한 모습을 엄 사원은 이미 목격했구나.'

그는 내가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엄 사원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흠흠. 얼른 커피랑 케이크 주문하시죠."

나는 쿨내 진동하는 사람인 양 주문대 쪽으로 걸어갔다.


커피와 케이크를 포장해 나오는데, 아까 push 버튼을 눌러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일행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인 것 같았다. 그녀의 멈춘 시선에, 함께 있던 일행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분명 그들의 대화 속 내가 등장했으리라.

'아, 제발...'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가 아닌 척 계속 걸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케이크가 망가질까 봐 뛰지도 못했다.

'아까 감사했다고 인사라도 했어야 하나? 아니면 당당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안면몰수?' 내 뇌가 수만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동안 정작 내 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그 자리를 피했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도. 오늘 겪은 굴욕이 계속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녀의 입가에 머물던 아주 미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낯선 사람 앞에서 느낀 그 굴욕의 순간은 쉽게 잊기 어려웠다.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리는 자동문이 꿈속까지 따라와 밤새 나를 괴롭혔다. 문은 계속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고 나는 그 앞에 마치 길가의 조각상처럼 서있었다.

잠깐의 자유시간을 얻은 대가는 너무 컸다. 나른한 오후의 달콤함 대신 민망함의 쓰디쓴 맛만 입안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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