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거울 속에 비친 이 완벽한 자태는 누구신가!"
샤워 후 방으로 돌아와 물기가 마르지 않은 채 거울 앞에 선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기 전 잠시 멈췄다.
"오똑한 콧날, 이마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살짝 처진 눈매,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출근 준비 전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 한 곳에 모아둔 듯 눈이 부신다.
"이런 얼굴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자신감에 넘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자 어제 헬스장에서 갈아 넣은 삼각근이 봉긋 솟아올랐다. 이번엔 팔이다. 가볍게 주먹을 쥐니 이두박근이 단단하게 차올라 윤곽을 만든다. 요즘 헬스장까지 참새 방앗간 가듯 하다 보니 내 몸에도 스스로 탄성이 나온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거울 속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 움직인다.
"그래, 허저. 이런 얼굴에 이제 몸까지 갖췄으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지 않겠니? 자신감이 곧 멘탈 갑옷이다. 나는 오늘도 긍정의 힘을 믿고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도 아자아자!"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긍정확언을 외쳤다.
나에게 아침마다 하는 자기 암시는 자신감을 향한 일종의 간절한 의식이자 필수 루틴이 되었다.
사실 이렇게 된 데는 몇 년 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전. 나는 부사장님과 주요 거래처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첫 대형 프레젠테이션을 맡았다. 원래는 팀장님이 진행하는 거였는데, 갑자기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PT를 함께 준비했던 내가 그 발표를 맡게 되었다.
겉으로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유쾌한 나였지만, 속으로는 심각한 무대공포증이 나를 짓눌렀다. 긴장감은 극에 달했고, 발표 도중 잔뜩 힘이 들어가 동선이 커지고 손에 땀이 차 마이크를 놓치고 말았다. 아뿔싸... 그 마이크가 샘플을 보여주려고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준비해 놨던 통에 빠지고 말았다. 마이크는 '지지직' 소리를 내고 샘플은 이곳저곳으로 튀어 회의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수치심에 며칠간 퇴사까지 고민했다.
그때 나를 안쓰럽게 여긴 이사님이 실수가 잦은 나에게 '게리 베이너척'의 책을 한 권 주며 말했다.
"허 주임의 실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감 부족이 만든 것 같아요.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스스로가 알게 해 주세요."
그 이후 나는 이사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 자신을 칭찬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1분의 순간. 이 시간은 완벽한 나의 방패막이요, 보호장벽이다.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전 나만의 자기 암시는 실수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루틴이 되었다.
흩어진 머리를 정돈하고 거울을 보며 나의 완벽한(이라고 믿고 싶은) 모습을 마주한다.
쭈뼛거리며 개미소리로 읊조렸던 첫날이 생생하다. 분명 거울 속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딱 벌어진 어깨, 반짝이는 눈, 윤기 나는 머리카락. 분명 긍정의 힘은 희망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때, 방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야, 오늘 나 이어폰 좀 빌려줘."
거울을 통해 우리 둘의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여동생은 문 앞에서 사각팬티만 입고 근육에 힘을 주며 거울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나를 정면으로 목격했다.
"저게! 오빠한테 야라니!"
"너 그리고 노크 안 할래? 그렇게 막 들어오면 나의 긍정 에너지가 다 흩어져버리잖아. 이 웬수야!"
나는 수건으로 가슴팍을 가리며 말했다.
"푸하하하하! 뭐야! 너 지금 그거 하는 거야? 나는 잘 생겼다. 그거? 진짜 미친놈 같아!"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수치심과 피로를 느꼈다. 내가 가장 은밀하게 지키고 싶었던 극복 의식이 가족이라는 존재에게 발각되는 순간이라니.
"나가! 안 나가?"
나는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저었지만 여동생은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우, 오빠님 미안. 그대의 완벽한 에너지가 너무 눈이 부셔서 내가 움직일 수가 없네."
여동생은 침대 옆에 놓여있던 나의 이어폰을 휙 집어 들더니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오늘따라 방문을 깜빡 잠그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자책해 봤자 때는 늦었고, 멘털 관리는 여동생의 웃음소리에 산산조각이 났다.
"에잇, 빨리 독립해야지."
아무리 긍정 확언 루틴이 좋다지만, 누군가에게 이 모습을 보인다는 건 끔찍하다. 퇴사보다 더.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섰다.
그리고 애써 오늘 하루 세상으로 나설 힘을 다시 끌어모으기 위해 방문을 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