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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Jun 23. 2017

6월의 서귀포 그리고 드로잉 제주

Drawing Blue #25


6월 초에 다시 한번 제주에 내려갔었습니다. 6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렸던 저의 전시 때문이었어요. 직접 대관하는 개인전 이외에 초청전은 처음이었던지라, 떨리는 마음으로 김포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전시를 위한 모든 그림과 물품들은 이미 전달한 후였기에, 드로잉 도구와 생필품만 몇 가지 챙겨 가볍게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일이 아니라 마치 짧은 여행을 하러 가는 기분이었어요.



서귀포로 가는 방법 중 가장 간편한 방법은 제주 국제공항 앞 게이트에서 공항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전시가 열리는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중섭 거리에 있었기에,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한 번에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문섬이 보이는 풍경


여행자의 신분으로 이미  몇 번이나 찾아온 적이 있던 이중섭거리인데, 여행 드로잉 전시를 위해 이렇게 다시 찾아오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익숙한 거리가 이날따라 왠지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서귀포 관광극장


한눈에 보아도 사연 많아 보이게 생긴 이 건물이 전시가 열린 장소인 '서귀포 관광극장'입니다. 이곳은 1963년 10월에 개관한 지역 최초의 영화 전용관이었는데, 1999년에 발생한 화재로 한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2012년에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귀포 지역주민협의회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다양한 공연예술이 열리는 예술전용 공연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드로잉 제주> 展 역시 지역주민협의회 제안으로 진행된 초청 전시였습니다.


입구에 붙어있던 전시 포스터


거리 곳곳에 그리고 관광극장 앞에 가득 붙어있는 저의 전시 포스터를 발견했어요. 여행 오던 공간 속에 저의 흔적이 새겨져 있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서귀포 관광극장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매표를 하던 건물 로비 공간에는 제주 여행 중에 현장에서 기록한 작은 드로잉들이 마을 별로 정리되어 전시되었습니다.



화재 발생 후 지붕을 걷어내어 노출되어 있는 공연장에는 조금 큰 사이즈의 그림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전시 첫날 현장에 막 도착해보니 지역주민협의회 사무국장님께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액자를 고정하는 작업을 하고 계셨어요.



공간 속에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어 좋았어요.



이번에 출품한 드로잉에도 녹색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벽면 가득 자라난 푸르른 덩굴이 전시 공간을 함께 채워줘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관계자 이외에는 들어가 볼 수 없는 2층과 옥상도 둘러볼 수 있었어요. 2층에는 옛 영사실의 습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끝없는 휴식에 들어간 이 녀석들은 틀림없이 오래전 이곳 사람들에게 수많은 추억을 선사해 주었을 테지요.



옥상에 오르니 관광극장 바로 뒤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이 보입니다.


섶섬과 문섬 그리고 바다


빌딩에 살짝 가리긴 했지만, 섶섬과 문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화가 이중섭이 아이들과 함께 깅이(게)를 잡았다던 자구리 해안이 저 두 섬 사이에 있습니다.

전시 첫날과 둘째 날 모두 이틀 동안 자리를 지켰는데, 원래 저를 알고 계시던 분들과 최근 제주시 인스토어에서 열렸던 드로잉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분들께서 많이 방문을 해주셨어요. 고운 얼굴들을 서귀포에서 다시 뵈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친할머니가 제주 출신이셔서 서귀포시에도 친척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둘째 날에는 처음 뵙는 삼춘 한 분도 찾아오셨어요. 일이 있어 둘째 날까지만 자리를 지키고 서울로 올라와야 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삼춘께서 선물로 주신 묵직한 한라봉 상자와 함께였습니다.


이틀 만에 서귀포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어요. 화가 이중섭의 추억이 깃든 자구리 해안 근처를 괜히 서성였는데, 누군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시를 보러 오셨던 지인들을 그곳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이지요. 제주시로 돌아오는 길은 그분의 차로 편하게 왔습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네요.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다음날 새벽에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제주시에서 다시 1박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스케치 해온 서귀포 관광극장 그림을 저녁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채색해 보았어요.


서귀포 관광극장

첫 서귀포 출장인 셈이었는데,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그림으로 제주를 방문할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언제나 그리운 제주. 다음에는 이 섬의 아름다운 여름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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