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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Oct 04. 2015

혼자 견뎌내야 할 시기

외로움으로 여행하기 #1

처음부터 외로운 여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여행-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매듭을 품은 채 떠난 시간-에는 되도록 혼자이기를 희망한다.


회사에서 차곡차곡 월급을 받던 시절, 반복되는 하루는 종종 끝없이 쫓기는 꿈처럼 느껴다. 그 톱니바퀴 속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일상은 하나의 계단에 올라서면 다른 발을 내밀어 서둘러 다음 층계를 밟아야 한다는 강박의 연속이었다. 효율적이었지만 정신적으로 몹시 빈곤한 삶 속에서 나의 호흡은 항상 짧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살았다. 잡초같이 무성해진 고민들은 씻지 않고 미뤄놓은 접시들처럼 마음 구석진 곳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여행이라는, 스스로에게 주는 거창한 보상이 주어져서야 나는 비로소 미뤄놓은 것들을 처리할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어 소위 철들어가는 동안 이상한 버릇이 생겨버렸다.


때때로 휴식을 목적으로 지인들과 함께 가까이 있는 작은 도시로 떠나곤 했다. 짧은 여행은 일상 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할  화려한 무대가 될 만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돌아오는 길에는  매번 명쾌한 해답 없는 빈손이었다. 함께하는 여행은 대체로 활기차고 즐거웠으나, 그것은 마치 주말 저녁을 장식하는 예능 프로그램과도 같았다. 다가오는 월요일에 대한 작은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 안에 묵혀둔 고민들은 부패하기 시작했고, 닦아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지저분한 얼룩이 되어 일상을 어지럽혔다.


봄이 무르익은 늦은 4월. 예정에 없었던 홍콩으로 떠났다.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여분의 휴가가 갑자기 주어졌기 때문인데, 엄밀히 말해 공짜는 아니었다. 하루의 16시간 이상을 급여로 바꾸고, 주말조차 주어지지 않는 타율적인 삶을 한동안 계속한 것에 대한 보상. 내 삶의 밸런스를 깨트린 대가로 얻은 4일간의 눈물 나는 휴식이었다.



누구에게나 '온전히 혼자서 견뎌 내야 할 시기'가 있다. 그 아슬아슬한 시기가 나에겐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내 영역을 침범할 누군가를 동반자로 삼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숙박을 구하고 항공편을 예약했다. 참았던 숨을 터트리듯, 그렇게 홍콩으로 날아갔다.




- 매거진 '외로움으로 여행하기'는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의 프리퀄(Preque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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