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래에서 온 투자

by 전병조

부자가 되는 데에 필요한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두 개의 기둥으로 지탱됩니다. 낙관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기술적 근거로 ETF의 특징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간단하지만은 않은 문제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합니다.


뇌, 이놈의 진화


첫째는 방어적이기만 한 투자가 너무 지루하다는 겁니다. 배달음식, 카톡, 숏폼, SNS 세계의 ‘딸깍’에 물든 우리는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루함은 고통입니다. 고통은 원래 생존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방지해 주는 장치입니다. 굳이 감내할 이득이 없는 경우 동물은 당연히 고통을 완화하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지루함을 견디며 ETF를 가만히 잘 놔두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10년, 20년 후의 미래까지 복리로 성장한 큰 자산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건 누가 가지나요? 당연히 우리가 가져야죠! 그런데 이게 그렇게까지 간단하지 않습니다. fMRI로 관찰해 본 인간의 뇌는 ‘미래의 자아’를 생각할 때 마치 남을 대하는 것처럼 반응합니다. 다시 말해, 지루함의 고통은 내가 지불하고 그 이득은 남이 가져가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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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손닿는 거리에서 ETF의 가격은 꼬물거립니다. 충동적 본능이 꿈틀대는데, 가만히 두기만 하려니까 고통이 밀려옵니다. 이걸 참고 견디더라도 내겐 좋은 일이 없습니다. 기껏 인내하며 쌓아올린 부는 미래의 자신이 가져갈 테니까요. 그런데 뇌가 볼 때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복리가 힘을 발휘할 때까지 자산을 ‘가만히 놔두기만 하는’ 과제에는 치명적인 특성입니다. 플라스틱 미끼가 물결에 따라 꼬리를 흔들면 물고기는 덥석 물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금융과 미래를 대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두뇌는 생선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ETF를 건드리면 세금과 수수료만으로도 커다란 구멍이 뚫립니다.


한 층의 우연, 두 겹으로 된 필연


둘째 문제도 꽤 심각합니다. 어찌어찌 지루함을 극복하더라도 앞으로가 큰일입니다. 지수 ETF에 투자하면서 최대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게 꽤 괜찮은 수익률을 거뒀던 건 좋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옛날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근거는 제가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결과는 어떻게 발생했는지 여러분이 물어봐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ETF의 과거 성과가 그저 하나의 층으로 된 사건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어부E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다란 데이터에서 나온 경험이었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 투자는 우연에 의지한 기도메타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신 그런 결과를 만든 원동력이 있다면 다릅니다. 그 원동력이 구조적으로 유지된다면 결과는 반복 재생할 수 있는 필연에 보다 가까워집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여정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탄탄하고 엄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갑자기요. 보드게임 하나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아주 소소한 규모의 자산을 할애해서 어떤 주식회사의 주주가 되어보는 놀이입니다. 그것으로 위의 두 질문에 동시에 답해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규모 면에서 전혀 진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희에 불과하고, 게임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면 지루함을 조금은 달랠 수 있습니다. 둘째, 게임이 다룰 주식의 보편적 특성에 합의함으로써 ETF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ETF로 부를 쌓는 게 앞으로도 필연적인 구조라는 답변도 가능해집니다.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쌓아올려져 있습니다. 1부는 게임에 필수적인 개념들을 소개하는 빌드업 과정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2부에서는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에 합의해 나갑니다. 어부E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히 흥미로운 도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스포일을 살짝 해드리자면, DCF라는 골치아픈 수학 공식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은 제가 싫어합니다. 대신 우리는 DCF의 개인 서사(?)를 들여다보고, 이 문법의 의미도 발견해 볼 예정입니다.


우그웨이.jpg 쿵푸팬더에 명대사를 남긴 우그웨이 대사부. 천수를 누린(?) 거북이


영화 「쿵푸팬더」에서 주인공의 사부님이 영어로 남긴 대사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현재가 선물이라고 불리는 이유지. 읭? 멋진 말이긴 한데, 뭔 쌉소린가 싶습니다. 현재-/-선물, 우리말에서는 연결이 잘 안됩니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but today is a gift.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present”.


와, 그런데 영어로 보니까 다릅니다. 각운이 맛깔나게 떨어지면서, 단어 present가 현재와 선물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는 이중성을 기막히게 설명했습니다.


한 언어 안에서는 닿지 않는 이야기가 다른 말에서는 관계를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A에서 B로 직접 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A → a로 부호화(code)된 새로운 문법에서는 a → b 라는 가공을 할 수 있다고 칩시다. b는 다시 원래 언어에서는 B라고 재번역(decode) 됩니다. 우리가 진행할 게임에서 DCF는 a → b 와 같은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마치 우리말의 현재-/-선물 처럼, 서로 무관해 보였던 투자의 언어를 매개해 줄 통역사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결론은 3부에서 다루는 장기투자로 이어집니다. 장기투자는 대중적으로도,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잔소리입니다. 이어지지 않는 A와 B를 묶어주기 위해 많은 선지자들이 우화와 비유 그리고 권위에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뛰어오른 미끄럼틀처럼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투자공식을 복잡한 괴물로 대하지 않고 이해와 번역으로 길들이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코드와 디코드를 거쳐, 드디어 장기투자를 둘러싼 매듭과 오해들을 여기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더 깊이 즐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나름의 제안들도 4부와 에필로그에 담았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이 놀이, 주식투자를 저는 스톡데일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 위대한 수익률이나 성과를 얻게 해줄 열쇠는 없습니다. 그런 역할에 제가 적합하지도 않을 테고요.


Gemini_Generated_Image_gp8ej8gp8ej8gp8e.png 제미나이와 상상해 본 사진. 이렇게 진지하자는 건 아닌데.


다만 저는 미래를 보여주는 어떤 보드게임의 오래된 규칙을 소개할 뿐입니다. 그걸 위해 엄청난 약력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할 정도로 옳은 이야기를, 혹시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그저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인도의 워런 버핏’ 모니시 파브라이처럼 저도 최선을 다해 베끼고 짜깁기했습니다.


그렇대도 남은 원고는 어쨌든 방구석 투자자의 체계적 망상일 뿐입니다. 통찰이라고 부를 만한 뭔가가 있는지, 저의 긴 증명에 허점이나 비약은 없는지 여러분이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딘가 엉터리라면 이 프롤로그가 통째로 헛소리일지도 모르니까요. 제 동생이거나, 아내의 동생이거나, 아니면 그들을 아는 평범한 예비 부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스톡데일 게임에 오신 것을.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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