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우리는 전통적 투자자산 네 가지를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금과 부동산은 실물자산입니다. 실물 자체에 활용가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채권과 주식은 계약자산입니다. 그 종이만으로는 실질적 쓰임새가 없습니다. 대신 합의에 따라 이익을 얻을 권리가 담겨 있습니다. 권리 그 자체는 지불 능력이 아니지만, 나중에 현금을 얻게 해줍니다. 때문에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매개로 인정받습니다.
우리는 2부에서 주식의 가치를 정교하게 생각해볼 텐데요. DCF라는 어떤 공식이 다뤄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외울 필요도 없고, 거기에 어떤 숫자를 대입하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어볼 테니까요. 즉, 주식투자의 공식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주식의 가치, 권리, 그리고 이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이제부터 그 논의를 구체화시켜 나가봅시다. 기초공사를 먼저 하고 기둥과 지붕을 올리듯, 원주율을 구할 때 3부터 알아낸 뒤 0.1, 0.04, ... 를 차례로 보정하듯, 원시적이지만 단순한 뼈대부터 세운 다음 자그마한 오류들을 보정해 가면 됩니다. 먼저, 주식과 비슷한 점이 많은 채권의 도움을 빌려 오겠습니다.
〈1〉 23개월 전
아들 : 엄마, 나 돈 좀 빌려줘.
엄마 : 얘는. 맡겨둔 사람처럼 구네. 내가 돈이 어딨냐.
아들 : 그러지 말고 빌려줘. 비상금 같은 거 있을 거 아냐.
엄마 : 너 행세머리 봐서는 즈으으은혀 설득이 안되거든?
아들 : 아 빌려 줘 빌려 줘. 내가 할게 설득.
엄마 : 갑자기 돈이 왜 필요해? 얼마나 필요한데?
아들 : 100만 원만 빌려줘. 그래도 아들인데. 그 정도 신용은 있지?
엄마 : 없는 거 몰랐어? 그렇게 큰돈은 못 준다. 이자 줄 능력도 없는 게.
아들 : 헐.
엄마 : 나이 서른에. 돈 100은 없고. 에미한테 긁힐 자존심은 있냐. 그리고, 가족끼리라 현금 오고가면 그것도 다 증여고 세금이야.
아들 : 그럼 내가 증명서를 발행할게. 엄마가 100만 원에 사가면 되잖아. 응?
엄마 : 그딴 걸 사서 얻다 써먹으려구.
아들 : 가지고 있으면 빌려준 돈 100만 원이 들어오잖아. 증여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되고.
엄마 : 그래도 내가 등신으로 키우지는 않았네. 언제 갚을 거야?
아들 : 1년에 50만 원씩 갚을게. 콜?
엄마 : 서류 써 와. 안 갚으면 아들 소송하는 에미라고 뉴스에 나온다.
아들 : 아싸! 엄마 최고야. 엄마 사랑해!
〈2〉 현재
엄마 : 여보. 혹시 50만 원 있어?
아빠 : 왜, 당신 생활비 하나도 없어?
엄마 : 아니 다음 달에는 50만 원 생길 거야. 근데 다음 주면 설이잖아.
아빠 : 그래서, 빌려줘?
엄마 : 아니, 당신이, 이거 나한테서 사가면 되겠네. 내가 50만 원에 팔게.
아빠 : 뭔데 그게?
엄마 : 재작년에 큰애한테 100만 원 빌려주고 받은 영수증.
아빠 : 허 참. 아들한테 채권 받으셨어? 대단하다 대단해.
엄마 : 당신이 가지고 있다가 걔한테 받어, 50만 원.
아빠 : 이자는? 만기는 언젠데?
엄마 : 이자? 그런 거 읎어. 작년에 50만 원 갚고, 다음 달이면 끝이야.
아빠 : 무이자야? 모자 간에 똑똑한 척은 다 하드니.
엄마 : 쪼개든지 합치든지. 100만 원이 100만 원이지 뭐.
아빠 : 으이구, 별 짓을 다 해. 아, 이리 내. 어느 계좌로 보내면 돼?
약속은 미래에 관한 구속력 있는 전망입니다. 뭔가 당장 해치울 거라면 약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자산의 권리가 가리키는 이익 역시 미래의 것으로만 한정됩니다. 채권은 미래에 돌려받을 돈에 관한 장부입니다. 이미 받았거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받지 못할 수도 있는 돈은 가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증명된 권리는 주주로서 미래에 분배될 배당과 잔여재산을 상징합니다. 그 둘은 모두 앞으로 받을 돈,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따라서 증권의 가치는 이 규모 안에서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채권의 가치 ≅ 1년 뒤 돌려받을 돈 + 2년 뒤 돌려받을 돈 + ... + 만기에 돌려받을 돈
주식의 가치 ≅ 1년 뒤 배당받을 돈 + 2년 뒤 배당받을 돈 + ... + 언젠가 분배될 잔여재산
이렇게 나란히 보면 구조가 거의 똑같죠? 조금 더 살펴봅시다.
앞서 상황극에 등장한 채권 발행인은 ‘1년에 50만 원’을 못 박아 약속했습니다. 따라서 이 계약의 잠재적 당사자인 엄마는 미래에 받을 수 있는 돈을 꽤 정확한 규모로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투명함은 엄마가 ‘100만 원’이라고 동의한 가치에 핵심적인 영향을 줍니다.
반면 주식에 담긴 미래는 훨씬 흐리멍덩합니다. 기업은 주주에게 그렇게까지 정교한 약속을 내지르진 않습니다. 배당은 형편이 될 때, 우리가 알아서 준다, 적어도 당신만 빼놓지는 않겠다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다행히도 우리의 주된 관심은 각 시점마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돈에 대해 고려한다는 뼈대에만 합의하면 됩니다.
고려한다는 말이, 반드시 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저는 의도적으로 공식에 등호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슷하거나 대강의 관계가 있다는 의미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뒀는데요.
콩트에서 아들이 발행한 무이자 채권을 덥석 사주는 건, 그들이 엄마나 아빠인 덕분입니다. 내년이나 또 그 다음해에 받는 50만 원은, 글쎄요, 정확히는 50만 원이 아닙니다. 이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벌어집니다. 채권은 짧게는 3개월이나 2년 만기도 있지만, 긴 것은 20년이나 30년인 것도 있는데요. 주식회사의 사업 수명은, 잘 되면 수명이 100년을 넘길 수도 있습니다. 엄청나게 먼 미래에 받을 배당에서는 막대한 오차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이 점은 미래에 받을 돈의 가치를 더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바로 다음 연재에서 다뤄볼 주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