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원래' 범위로 규정되는 가치

by 전병조
정확히 틀리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맞히는 게 낫습니다. (워런 버핏)


DCF를 소개하더니 본격적으로 내지른(?) 주장에 의아하거나 황당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주주의 가치가 성장하기 위한 조건이 두 가지나 있었는데요. 투자자의 FCF 전망이 그대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게 첫 번째였습니다. 시작부터 가시밭길입니다. 왜 그런지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일단 잉여현금흐름이 회계 상 순이익과 같지는 않습니다. 둘 다 ‘버는 돈’ 개념이긴 합니다만. 순이익에는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수입(매출채권은 받아야 할 외상이고, 재고자산은 팔릴 것으로 ‘기대’하는 예비 매출입니다.)과 낸 것으로 인식하는 비용(매입채무는 갚아야 할 외상이고, 감가상각비는 일시불로 집행된 투자를 할부로 둔갑시킨 비용입니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집행하는 데에 현금을 얼마나 쓸지(CapEx : Captial Expenditure, 자본적 지출) 추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그래서 경영진이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애널리스트들과 기자들이 CapEx 집행계획에 주목하고, 그 규모에 따라 주가가 크게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금융계에서는 대부분 순이익을 기준으로 소통합니다. 그래서 FCF를 유추하는 데에 필요한 자료를 얻으려면 현실적인 수고가 더 듭니다.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에서 들어와야 할 현금이 갑자기 콱 막히기도 하고요. 설비가 고장나거나 교체 시기가 되면 느닷없이 CapEx가 오르기도 하는 등, 현금흐름이 그 자체로 더 들쑥날쑥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1, 2년은 몰라도, 그보다 더 먼 미래를 추정하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걸 정확히 맞히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될 만큼 가능성이 낮은 도전이고요.

어쩌라는 거냐, 라고 따지시겠지요. 저는, 그냥 대충 합니다. 대신 충분히 보수적인 시나리오와 낙관적인 경로를 분리해서 각각에 대해 FCF를 연도별로 예상해 둡니다. 이 말인즉슨, 제가 추정하는 FCF에는 최소~최대 범위가 있다는 뜻입니다. 언론에서 흔히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고 할 때 등장하는 그 불확실성이 바로 이겁니다. 싫어도 어쩌겠습니까, 없어지질 않는 걸. 그러니 그냥 받아들이는 게 현명합니다. 그러면 투자자의 기대수익률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주식의 현재 가치는 다음과 같이 두 벌로 존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대문자는 소문자보다 값이 큽니다. 잉여현금흐름, 영구성장률, 현재 가치 모두 낙관/보수 시나리오에 따라 다릅니다. r(할인율)만 동일하고요.


최대 시나리오 : PV0 = FCF1÷(1+r)¹+ FCF2÷(1+r)²+ {FCF2/(r-G)}÷(1+r)²

최소 시나리오 : pv0 = fcf1÷(1+r)¹+ fcf2÷(1+r)²+ {fcf2/(r-g)}÷(1+r)²


이렇게 전망한 투자자에게는 이 기업의 가치가 pv0~PV0의 범위로 표현됩니다. 사기 같나요? 아뇨, 이렇게 범위로 표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기업이 얻은 실제 잉여현금흐름이 fcf1~FCF1 사이에 들어온다고 칩시다. 투자자에게 남겨진 장래의 현금흐름 ‘범위’에 대한 전망도 유지된다고도 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PV1 = (1+r)×PV0 가 되고, pv1 = (1+r)×pv0 가 성립합니다. 결국 그의 현재가치 ‘범위’는 (1+r)배 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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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범위로 표현하는 건 불법이나 규칙 위반이 아닙니다. 고정관념에 묶여서 못 보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간단한 해법을 가리키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겁니다. 사실 이건 방구석 투자자의 궤변이 아니라 위대한 투자 스승들의 지혜입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증권분석》 1장에서 밝혀 뒀습니다. “증권분석에 적용되는 내재가치의 개념은 정확한 하나의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가치의 범위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증권분석은 어떤 특정 증권의 내재가치가 정확히 얼마인지를 결정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가치가 충분한지, 혹은 그 가치가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높거나 낮은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내재가치에 대한 부정확하고 대략적인 평가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어떤 여성이 투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정확한 나이를 몰라도 알 수 있고, 어떤 남성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정확한 체중을 몰라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의 내재가치가 30달러에 더 가까운지, 130달러에 더 가까운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식이 10달러처럼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면, 분석가는 그것이 시장가격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는 데에 의심의 여지없이 정당했을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정도는 매우 가정적인 “근사값의 범위(range of approximate value)”로 표현될 수 있으며,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격이 그 평가 범위의 상한이나 하한을 크게 벗어나 있다면, 내재가치에 대한 매우 불확정적인 개념만으로도 여전히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걸작, 워런 버핏의 의견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서한에 여러 차례 인용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정확히 틀리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맞히는 게 낫다.” 애널리스트들이 리포트를 내면 목표주가를 제시하는데요. 항상 하나의 값으로 툭, 던져져 있는데다 언제까지를 가리키는 건지도 설명이 없습니다. 이런 행태를 지적하며 버핏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 더 원류로는 카베스 리드의 글을 인용한 겁니다. 네, 저에게도 그게 더 위험해 보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가치를 범위로 추정해 두면 오히려 확신이 들고 마음도 평온합니다.


문제는, 기업에 대해 잘 모르는 약점을 광범위한 실적 추정으로 때우는 경우입니다. 이러면 추정하는 가치의 밴드가 너무 넓어져서 어떤 주가도 정당화하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넓다란 가치 범위는 기대수익률 만큼 성장하지요. 다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시장에 참가한 다른 투자자들은 그렇게 순진하고 비합리적인 가치 평가에 관심이 없습니다. 투자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주가와 비즈니스를 구경할 뿐, 회사의 주인과 같은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레이엄과 버핏이 주가 얘기를 하시는 바람에 잠깐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요. 지금은 주가가 어떻게 변할지 맞히려는 게 아닙니다. 이제까지의 내용에만 비춰보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복리를 실현하는 건 기업입니다. 주주는 매매 차익을 얻지 않더라도 성장하는 가치를 받으니까요. 가치가 공부에 비유된다면 주가는 시험 성적입니다. 시험은 아주 가끔씩 실력을 가늠해보는 수단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선 점수가 중요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목적은 아니죠. 가치와 주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의 가치를 범위로라도 굳이굳이 추정하는 건 왜일까요. 기껏 외운 공식을 어떻게든 써먹어 보려는 게 아닙니다. 가치가 원래 범위로 존재하니까 당연히 그러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어린이의 위치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위치가 아니라, 어린이가 발견될 영역에 관해서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주주가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에 투입되는 자본이 복리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동행을 그만두거나 계속할지 판단하기 위해 주주는 자신의 기대와 기업의 현실을 비교해야 합니다. 기대와 현실은 확률분포를 내포하며, 둘 모두 범위로 평가되거나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기업의 미래를 드넓은 범위로 잡는 건 어떤 이유로든 문제입니다. 그런 주장은 절대로 틀릴 수가 없는데요.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그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의견을 나누는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것과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대결에서 혼자 ‘이기는’ 건 완전히 서로 다른 게임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걸 놓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가지수 ETF로 어차피 부자가 되는 미래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와 이해를 기대하며 개별 기업을 보유하는 게임을 배워보는 중입니다. DCF의 결과를 극단적인 범위로 적용하는 건 놀이라는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재미있지도 않고요. 경영과 투자에 관해 맞히거나 틀려보기도 하면서, 뭐라도 배우며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스톡데일’ 게임의 목적이 승리가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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