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주가는 가치를 모르지만 안다

by 전병조
주식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미인 대회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중계입니다.
(벤저민 그레이엄)


장래에 얻게 될 현금흐름을 시나리오에 따라 추정하고 현재 가치를 범위로 추정한다 칩시다. 전망이 실현되면서 그 현재 가치의 범위가 상승했다고도 가정합니다. 원래는 그 성장률을 먼저 다뤄야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선 책을 구성하는 필요에 따라 순서를 한번 섞어볼게요.


저는 ‘팔지 않아도’ 주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만 일관되게 말해 왔습니다. 그 가치가 충분하다면 좋겠는데, 성장도 한다는 건 더 바랄 게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걸로 모험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이 궁금한 이야기도 나눠봐야죠. 가치가 커진다고 주가도 오를까요? 만약 그렇다면 왜, 언제 오르는데요?


관심의 대상이 되는 모든 변화는 신호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날씨를 예로 들어보죠.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이 이동하면 평균 기온은 느리지만 큰 변화의 흐름을 만듭니다. 하지만 매일의 최저기온 추이는 들쑥날쑥한 초미세 변동을 보입니다. 크리스마스 쯤이면 강원도의 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건 예상하기 쉽습니다. 그때 필요한 옷을 8월에 입는 건 고문에 가까우리라는 점도요. 하지만 지금 예상을 유지한 채로 일주일 뒤 최저 기온을 맞히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까이 보면 매일의 기온 차이도 선명하지만, 여름에서 겨울이 되는 거대한 변화에 비하면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주가는 해당 주식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일치된 합의로 가장 최근에 거래된 가격입니다. 그들 모두는 우리처럼 DCF를 이해하고 적용할 줄 압니다. 다만 서로 생각과 능력과 사정이 다릅니다. 따라서 각자 적당하다고 믿는 현재 가치의 범위도 다릅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가치 범위가 겹치는 가격과 순간에 거래는 성사됩니다. 거래는 매순간, 매일, 매월, 매년 성립하고 있습니다. 주가도 계속 변하고요.


주가를 날씨처럼 생각해 보면 됩니다. 매일의 가격 변화는 변덕스러운 노이즈입니다. 정확히 맞힐 수가 없습니다. 언제든 거래를 일으키는 그 많은 투자자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S&P500이나 코스피200 같은 종합주가지수를 연구한 통계를 보면, 어떤 시점으로부터 보더라도 시간 간격이 짧으면 주가가 상승하거나 하락해 있을 확률이 거의 반반이 됩니다. 게다가 주식 투자자들의 거래는 주사위 던지기처럼 서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스타그램 좋아요나 유튜브 인기 동영상과 비슷합니다. 앞서 성립한 거래의 주가를 참고해서 새로운 거래의 기준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적 쏠림이 발생하면 비싼 주가가 더더더 오르기도 합니다. 반대로 내려가던 주가가 더 내려가는 데에 애꿎은 이유조차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가까이에서만 관찰하면 우리가 DCF로 추정하는 현재 가치의 범위는 주가의 변동과 무관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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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절이 바뀌듯 느리지만, 꾸준하고 폭이 뚜렷한 변화도 주가에 나타납니다. 거의 누구도 맞힐 수 없는 작은 변화들이 누적되다가 어느 틈엔가 주가는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가 변화를 설명하는 어떤 이론을 믿더라도, 장기적인 렌즈에서 주가는 기업의 현재 가치 근처에서 형성됩니다. 따라서 현재 가치의 성장이 충분히 크다면 주가의 노이즈를 작아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비싼 가격에 사서 시간이 흐른 뒤에, 높아진 가치에 비해 꽤 싸게 판다고 해도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주 자본의 복리를 구현하는 극소수의 기업이 엄청난 가치 성장을 견인하고 상위 수백 개 기업에 분산된 지수 ETF를 장기간 보유하면 거의 손해를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이론’에는, 효율적 시장 가설과 투자 스승들의 비유들이 대표적입니다.


먼저, 효율적 시장 가설은 주가에 관한 통계 연구에서 주로 채택되는 이론입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를 가정합니다. 주식 시장의 참여자들은 모든 정보를 매순간 얻고 있으며, 이를 모든 거래 가격에 합리적으로 반영한다고 봅니다. 결론은? 주가란 언제나 기업의 내재가치를 반영한 숫자이어야만 합니다. 즉, 가치보다 싸게 사거나 팔 수 없고, 비싸게 거래하지도 못한다는 거죠. ‘효율적 시장’에서는 가격이 곧 가치 자체입니다. 그 누구도 차익거래나 초과수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와는 달리, 가치와 가격의 불일치를 인정하는 비유도 두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님은 주식 시장을 의인화 해 ‘미스터 마켓’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마켓 씨는 이웃에 사는 조울증 환자입니다. 매일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주식들을 사거나 팔라고 제안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비싼 가격을 부르고, 우울한 날에는 헐값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그는 환자이기에, 마켓 씨의 기분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죠. 우리가 틀림없이 아는 건, 그가 매일 찾아와 거래를 제안한다는 겁니다. 그레이엄 교수님은 투자자들에게 조언합니다. 굳이 그의 조울증에 전염되지 말고, 매일 어김없이 오는 제안을 영리하게 이용하라고 말이죠. 그렇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인기 투표나 미인 대회처럼 대중적 변덕의 결과이던 시장 가격이 장기적으로는 체중계처럼 기업의 경제적 실질 근처를 가리키게 됩니다.


가령, 저희 회사의 현재 가치를 한 주당 10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로 제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겨우 6만 원이나 7~8만 원 정도에서 거래되는 중입니다. 제가 만약 효율적 시장 가설을 믿는다면 저의 가치 평가를 재고해 봐야 합니다. 시장은 지적이고 합리적인 투자자들의 집단지성이어서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저는 개인일 뿐이니까요. 반면 미스터 마켓 모델을 따른다면, 제 기준으로 마켓 씨가 요즘 꽤 우울하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이 기회에 주식을 더 사들여서 지분을 늘리거나,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그가 기분이 좋아서 20만 원을 부르는 날을 편안히 기다려도 됩니다. 제가 추정한 가치 범위에 심각한 문제가 없고 많은 주주들이 동의한다면, 6만 원이나 7~8만 원짜리 거래는 장기적으로 줄어들어 사라집니다. 성공적인 거래들은 결국 10~15만 원 근처에서 이뤄지며 주가로 기록될 것입니다.


유럽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주가를 주인과 산책하는 개에 비유합니다. 산책하는 개의 위치는 주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미스터 마켓의 기분처럼) 종잡을 수 없는 변동을 보입니다. 그래도 리드줄은 어쨌거나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를 찾으려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면 됩니다. 그 근처에 있을 테니까요. 개가 움직이는 영역은 산책하는 주인을 따라 점차 이동해 갑니다. 제 생각을 조금만 덧붙이자면 사람은 조깅이 아니라 산책 중이기 때문에 걷기만 합니다. 따라서 강아지의 활동량을(주가의 노이즈) 의미 있게 압도할 만큼 주인이 이동(가치의 성장)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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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들은 주가의 단기적 변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는 단기적으로도 기업의 상황과 정보가 반영되어 있다고 믿지만, 그레이엄과 코스톨라니의 비유에서는 가격과 가치의 일시적 불일치를 관찰하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두 이론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시장의 가격 형성이 결국에는 기업의 현재 가치 근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경험 있는 투자자들은 흔히 시장의 가격 변동이 단기적 전망만을 반영한다고 믿습니다. 워낙 변덕스러우니까 다른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거래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마이클 모부신이 《예측 투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들의 가격에는 10년~15년 정도까지의 현금흐름 전망이 녹아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범위는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과 제도, 주요 산업 구성, 해당 국가의 평균적인 경영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예측 가능성에 좌우될 수 있습니다. 다만 뜻밖에도, 꽤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개별 기업에 대해 현재 가치의 범위를 추정하려면 남들만큼은 긴 안목에서 회사에 대해 근거있는 전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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