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영국의 물리학자 켈빈 경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당신이 측정할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경영학 분야에서도 널리 차용되고는 합니다. 물론 저도 깊이 공감하고요.
몇 해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어느 가치투자 카페에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투자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에 관해서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식을 팔아야 손해나 이익도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주변에도 ‘실현손익’ 진영을 믿는 사람들을 가장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보유 중인 주식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또 다른 분들은 주식을 팔아서 확정짓지 않더라도 손익은 손익이라는 입장입니다. 플러스가 되어 있으면 기쁘고, ‘물려’ 있으면 속상합니다. 손익이 실현되는 순간의 감정을 매분 매초 느끼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률을 이해한 다음 이 화두를 꺼낸 것이 힌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실현손익이든 평가손익이든 제 관점에서는 둘 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측정해야 할 것은 포트폴리오 전체 평가액의 연평균 성장률입니다. 그래야 주식 투자를 포트폴리오 단위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손익을 측정하려는 분들이 간과한 사실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분들은 결국 원금과 평가액의 비율 혹은 차이만 생각합니다. 이를 복리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실현손익은 곧 재투자에 동원되며 사라집니다. 주식을 매도해서 받은 금액에는 투자원금과 손익이 뒤섞여 있습니다. 손익은 다음 투자 건에서 모두 새로운 투자원금이 되며 사라집니다. 원금과 손익은 누가 봐도 똑같은 ‘그냥 돈’입니다. 그 둘을 굳이 구분해가며,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있는 건 투자자 본인뿐입니다. 이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보겠습니다.
두 명의 투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주식을 1만 원일 때 100 주씩 매수했었습니다. 현재 주가는 2만 원이라고 칩시다. 투자자 A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투자자 B는 2만 원에 100 주를 몽땅 팔았습니다. 100만 원의 이익이 실현됐지만 2만 원 가격으로 100주를 다시 사들입니다. 모든 것이 원금입니다. 다시, 주가는 3만 원이 됐다고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A는 그대로 있습니다. B는 가지고 있던 100주를 팔고 역시나 3만 원에 100주를 또 매수했습니다. 100만 원이, 생겼다가 사라졌습니다. 세금과 수수료는 없다고 가정합니다.
평가손익은 어떨까요? A의 경우에는 +200만 원입니다. B의 계좌에서는 0이고요.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정말로 그만한 차이가 있나요? 없습니다. 둘 다 300만 원어치 주식을 보유 중입니다. 평가손익으로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이 둘이 현저히 다른 성과로 인식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B 자신은 손익이 없다는 걸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아마 머리 속에서는 원금의 기준을 100만 원으로 옮기는 정신승리가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평가손익도 이렇게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제 멋대로입니다. 주식을 보유한다는 것은 수수료 없이 매순간 주식을 팔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거래에서 실현손익은 사라지고, 기준이 되어야 할 원금도 재조정됩니다. 투자자가 원한다면 자신이 기억하는 초기 금액을 원금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차트 상 최근에 있었던 최고가를 원금으로 느끼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때 “앞으로 나란히”를 하면, 기준이 되는 학생은 움직이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투자원금처럼 입맛에 따라 바뀌는 기준은 믿을 만한 지표가 못 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이렇게 합니다. 두뇌의 한계를 공유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허구의 기준을 만들고 그에 따라 비합리적으로 내리는 의사결정을 앵커링(닻내림) 효과라고 합니다. 이로 인한 대표적인 문제행동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투자원금을 바꾸기 위해 물타기를 하는 경우입니다. 손해를 작아보이게 해서 기분을 달래려는 거겠지요. 물타기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동기가 잘못됐습니다. 기업은 여전히 훌륭한데 더 좋은 가격에 왔으니까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야죠. 투자의 본질과 무관한 측정을 가지고 투자를 관리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물려있는(평가손실 중인) X종목보다 Y종목의 기대수익률이 높은데 손절을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오류입니다. 거래에서 손해가 실현된다고 믿게 만드는 투자원금은 존재하지 않는 기준입니다. 돈에는 이름표도 출신도 없습니다. 어느 주식을 통해서든 현 시점에서부터 더 잘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물타기든 불타기든, 손절이든 익절이든, 모든 결정은 포트폴리오 전체의 연평균 기대수익률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투자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성과를 비교할 만한 후보들에게는 손익이 없습니다. 주식의 가치, 법적 근거, 그 규모, 자신의 기대수익률을 이해하는 동료 투자자들은 원금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준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들의 집합인 주식 시장도 당연히 연간 수익률로 규정되곤 합니다. 주식의 대안 투자처인 채권, 부동산, 금, 하다못해 물가도 1년 전 동기대비 상승률을(YoY, Year on Year) 가지고 비교됩니다. 주식투자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이기라는 게 아닙니다. 프롤로그에서 개별 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라는 게임에는 체계적이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때문에 실력을 높이려면 스스로 적절한 피드백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행자에게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투자자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결과에 끼친 영향을 장기간에 걸쳐 분석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결과를 어떻게 측정할지 미리 알아야 하기에, 마침 포트폴리오 기대수익률을 다룬 차에 잔소리가 길었습니다.
2부에서 우리는 주식의 가치를 수학과 논리의 문법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미래에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다루기 위해 상황극까지 동원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DCF라는 공식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수학이 발견하게 해 준 귀중한 교훈은 이런 겁니다.
투자자의 잉여현금흐름 전망이 실현되고 유지되면, 주식의 현재 가치 범위는 매년 할인율만큼 복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의 현실성을 검토하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가치는 점이 아니라 범위로 존재하며, (모든 변덕이 지나고 나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서 매기는 가격도 가치의 범위 근처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리고 할인율. 저에게는 이 지표가 여러 투자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기능합니다. 가격을 DCF의 결과로 고정하면 기대수익률의 범위를 거꾸로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너무 낮은 수익률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비싼) 가격인지를 매 건마다 판단할 수 있지요. 이렇게 포트폴리오 전체의 관점에서 기대수익률을 측정하면 실현손익이나 평가손익에 묶이지 않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득은 할인율의 크기가 대단히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배운다는 점입니다. 대다수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작아서 좋다는 게 아닙니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큰 경우가 극히 드문 현실을 ‘깨닫는 것’이 이득입니다. 경험 없는 투자자는 기대수익률이 터무니없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주식투자에서 연간 100~200% 수익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워런 버핏이 경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 20% 평균 수익률을 조롱합니다. 현실에서 그렇게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면 보유할 만한 주식을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실력이 좋든 행운 덕분이든 우리 중 누군가가 연평균 15% 수익률을 꾸준히 거둔다고 칩시다. 잘 나가는 미국 주식시장의 장기 평균을 훨씬 앞질렀으니 대단한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도로 자산이 2배가 되려면 약 5년, 10배가 되기까지 16년 6개월이 걸립니다. 여러분께 이 숫자가 충격적이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4부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3부에서는 이론적으로만 다룬 DCF에 현실감각을 살짝 입혀 보겠습니다. 개별기업의 주식을 몇 년이나 보유한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일지 수학적으로 상상해 봤습니다. 기대수익률을 더 높여서 조금이라도 빨리 부자가 될 가능성도 논리적으로 검토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