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경제적 해자에 관한 큐레이션

by 전병조

피터 린치는 주식들을 성격에 따라 6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저는 이걸 두 영역으로 다시 나누어 봤습니다. 경기민감주, 자산주, 회생주는 투자 아이디어가 실현되면 팔아야 하는 성격의 주식들입니다. 저성장주, 대형우량주, 고성장주는 속도가 어떻든 성장하는 내내 주식을 보유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장기투자라는 의도에는 후자가 더 어울립니다. 주식의 규모와 성숙도는 분석의 난이도와 잔여 수명만 좌우합니다. 우리의 초점은 찐득하게 유지되는 자본이익률이 기업의 실력으로 유지되는가의 여부에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그러한 실력을 경제적 해자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것이 장기투자의 성공을 보장하는 치트키는 아닙니다. 다만 해자를 설명할 지도가 투자자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개별 기업을 파악할 때 경쟁력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갖기가 수월합니다. 견해가 있어야 시장의 오해도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좋을 것 같아서, 저만의 재배열이 담긴 큐레이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건 경영진이라는 기초공사 위에 세워진, 사업 구조와 조직 역량의 기둥으로 묘사됩니다. 오늘은 먼저 두 기둥에 대해서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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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업 구조


높은 자본이익률이 ‘유지’된다는 건, 매출이 꾸준히 창출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런 특성을 몸에 새긴 사업은 영업과 마케팅에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매출이 반복적인 사업에서는 고객이 거의 자발적으로 구매를 원합니다. 계속해서 필요하지만 쓰면 없어져버리는 제품/서비스일 수도 있고요. 브랜드를 정체성이나 경험과 동일시하며 효용을 얻기도 합니다. 자신을 ‘아이폰 유저’ 혹은 ‘테슬라 오너’로 소개하거나, 스타벅스에서 갖는 시간 자체를 브랜드라고 느끼듯 말이죠. 네트워크 효과에서는 많은 고객이 있다는 것만으로 더 많은 고객이 몰립니다. 사람이란 남들이 줄 서는 맛집에 가보고 싶고, 마트나 백화점에서 사람들이 쓸어담는 물건을 덩달아 괜히 사게 되는 존재니까요. 전환비용이 크다면 적어도 고객이 이탈하고 매출이 줄어드는 걸 장기간 방어할 수는 있습니다. 전문 소프트웨어나 은행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중독성 상품도 그렇고요. 알고리즘에 의해 고객 맞춤형 콘텐츠를 끊임없이 피드하는(feed, 먹여주다) 서비스도 도파민에 의한 중독성 서비스의 사례입니다.


사업 자체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성장하는 데에 유리한 특성을 지닌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무형적인 서비스는 한 번의 개발로도 중첩해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라고도 하지요. 게임이나 콘텐츠들, 지점을 확장하는 맛집 레시피가 대표적입니다. 비슷한 것으로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가 내는 시너지 효과도 있습니다. 캐릭터, 스토리, 음원은 다양한 형태로 결합해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 냅니다. 기술적인 노하우는 어떤 면에서 특허보다 귀중한 자산입니다. 약간의 응용만으로도 새로운 고객에게 효용을 줄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GPU나 제너럴 일렉트릭의 터빈이 그렇죠. 주문받은 설계대로 제조만 담당해주는 업체가 기술 레시피를 가지고 여러 고객들과 관계를 맺으며 거대해지는 성공 사례들도 많습니다.


끝으로 규모의 우위는 경제적 해자에서 쉽게 과소평가되는 항목입니다. 하지만 자본이익률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칩니다. 규모가 크다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고객과 경쟁자를 더 쉽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필립 피셔는 이 문제에 대해 “일반 대중들은 사업자가 해당 제품의 사실상 유일한 공급업체라고 생각할 정도가 돼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합니다. 특히 무형자본의 경우 권리 침해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데요. 규모가 큰 기업은 작고 유력한 경쟁자를 합병해버리기 쉽습니다. 자신은 우위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후발 주자의 도전 의지도 꺾어버립니다. 또한 규모가 클수록 회사는 생산과 영업/마케팅의 단위 원가를 아끼는 효과도 누립니다. 공급사나 고객에 대한 교섭력도 강하게 가져갈 수 있고, 가격 결정권도 쥐게 하지요.


규모가 큰 사업은 이미 많은 투자자들에게 알려져 있고, 보통은 비싸게 거래됩니다. 하지만 '저 같은' 투자자도 그런 기업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에 걸쳐 경쟁 우위를 보여줬다면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시작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런 기업은 조직을 운영하는 경험 측면에서는 이미 능력을 입증한 셈입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을 효율적으로 굴리는 건 결코 간단한 과제가 아니거든요.


2. 조직 역량


규모 있는 기업의 조직은 당연히 복잡합니다. 분석할 수 있고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하지는 않을 정도로 적당한 단순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필립 피셔의 생각을 따라 생산, 영업과 마케팅, 연구개발 로 나누어 이해합니다. 피셔는 높은 기준을 요구합니다. 이들 세 성격의 조직들이 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요.


생산(혹은 서비스) 부서는 원가를 줄이고 높은 매출총이익률을(GPM) 확보해 줘야 합니다. 연구개발 인력의 요구를 실현하는 생산기술 수준을 갖추면서도, 영업부서가 만든 판매 속도에 공급을 맞추는 것도 과제입니다. 영업 및 마케팅 조직의 본업은 자사 제품/서비스의 품질과 기술적인 특성을 고객에게 설득하는 겁니다. 동시에 시장의 반응을 캐치하고 트렌드를 예측해서 회사 내부에 공유하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연구개발 팀은 전달 받은 시장의 기술 수요와 생산 현장의 한계를 설계에 반영합니다. 완성된 기술은 다시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추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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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이 어떤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맨날 싸웁니다. 생산직이나 서비스 담당자들은 현장을 모르는 개발자들을 비난합니다. 영업과 마케팅 직원들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생산 속도에 답답해 하고요. 그러는 사이 연구개발 부서는 영업팀의 기술적 이해도가 떨어진다며 못마땅해 합니다. 자기만 힘들고 남들은 꿀만 빠는 줄 알거나, 아니면 협력은 잘 되는데 정작 담당한 본업에는 구멍이 나고 기회들이 줄줄 새고 있기도 합니다.


주주님의 입장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건 기본입니다. 자신의 포지션에서만 최선인 태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피셔의 요구는 회사의 누구나가 경영자의 관점으로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것입니다. 평범한 조직은 그렇게 굴러가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구성원들이 강한 동기부여와 조직 문화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해내는 건 경영진입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바보라도 경영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조언했었는데요. 훗날 “그건 철없던 시절에 함부로 내뱉은 말”이라면서 경영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투자에 있어서 가장 미묘한 부분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경영자와 투자자가 서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니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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