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차피 부자는 ETF가 만들어줌 1

by 전병조

벤저민 그레이엄은 <현명한 투자자>를 성격 상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적극적인 투자자는 주식시장이 거두는 평균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행동주의펀드의 온갖 방법론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지분 매입, 장부 열람, 이사회 장악, 로비와 정치, 표 대결, 각종 소송, 기업자본 재배치 등으로 경영에 거의 직접 관여합니다. 무능한 저는 차라리 시장 평균수익률에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방어적인 투자자들에게 그레이엄은 대형우량주에 분산투자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종목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수익률은 시장 평균과 비슷해집니다.(규모까지 반영해서 계산한 시장 평균에 작은 종목들은 별로 기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인의 어깨>를 쓴 홍진채 대표님은 이것이 그레이엄의 의도였을지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투자자들이 시장 수익률을 따라갈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을 소개 또는 제안하려는 것이었을 거라고요.


그레이엄 시대의 방어적 투자자에게는
주식투자 수단으로 우량주 분산투자를
권고할 수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전체 시장에 투자하는
인덱스 펀드나 ETF를 보유함으로써
그 권고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습니다.
─ 홍진채, 《거인의 어깨 1권》─


ETF만으로도 우리가 확정적으로 부유해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늘 [어부E]를 주장하곤 합니다. 어차피 부자는 ETF가 만들어 줍니다. 이런 투자에서 기대하는 연평균 수익률이 6~10%에 불과하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이자보다 조금 더 벌어서 언제 부자 되고 언제 퇴사하나요? 수 백 %씩 ‘먹고 나오는’ 리딩방도 있고, 연평균 50%씩 벌게 해주는 퀀트 전략도 많잖아요.” 실제로 우리나라 개인투자자들의 연간 기대수익률 평균이 50%라고 합니다.


음, 축하드립니다. 그렇게만 하시면 누구보다 빨리 세계 최고 부자가 되실 겁니다. 감히 제가 뭐라고 할 권한도 필요도 없습니다. 취향에는 옳고 그름이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까지 눈부신 속도로 부자가 되는 비법은 모릅니다. 어차피 부자가 될 테니 릭 게린처럼 서두를 필요도 없고요. 워런 버핏처럼, 저 스스로 ‘느리고 확실하게’ 부자가 되려는 겁니다. 감히 누가 뭐라고 할 권한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시장 평균수익률도 충분하다는 점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그게 사실상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주장을 검토하려고 합니다.


정말 충분할까요? 얼마나 충분한가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능력, 태도, 위험과 같은 쟁점들을 각각 살펴야 합니다. 진정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다뤄 보겠습니다.


1. 시장 수익률에 그쳐도 괜찮을까


괜찮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초과수익을 원한다면 적극적인 노력 무언가를 더 해봐야 합니다. 그레이엄이 소개한 '눈앞이 캄캄한' 방식들 말고도 뭔가 비법이 있을지 모르죠. 뭐 일단 좋습니다. 비법 같은 게 있다고 치겠습니다.


대신 평범한 사람끼리 동의할 수 있는 데서 출발합시다. 초과수익을 얻으려면 시장 전체를 담은 지수 ETF와는 종목 구성과 비중이 달라야 합니다. 더 좋은 종목을 더 많이 갖고, 덜 좋은 종목은 덜 갖거나 가지지 말아야 하죠. 문제는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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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Do Stocks Outperform Treasury Bills?", Hendrik Bessembinder


주식을 골라서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난이도를 조사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헨드릭 베셈바인더는 1926년부터 2016년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모든 상장기업 25,332 종목을 조사했습니다. 이 주식들이 기록한 수익을 가장 큰 순서대로 쌓아 올렸습니다(왼쪽 그림). 상위 1,092개 종목이 거둔 수익만으로도 전체 수익합산에 도달했습니다. 그보다는 성적이 저조한 9,579개 종목도 약간의 수익을 더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14,661개 주식이 기록한 손실로 추가수익은 파괴되었습니다.

20%의 개미가 80%의 일을 해낸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입니다. 상위 1,100개 기업으로 줌인해 들어가면(오른쪽 그림), 베셈바인더는 전체 합산수익의 75%가 상위 295 종목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합니다.(수익 50%에 기여한 주식은 단 90 종목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찍어서 맞히려면 1.16%에 불과한 기저율을 극복해야 합니다. 더 많은 수익의 기준을 조금만 높여도 투자가 대단히 어려워진다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실력을 높이거나 비법을 갖는다면 그 결과로 얻는 평균 수익률을 몇 %나 높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 비법에 닿으려면 행운이 따르거나 비용을 꽤 들여야 합니다. 천재성을 타고났든, 우연히 기술을 연마했든, 리딩방에 돈을 내든, 스스로 연구하며 시간을 들이든 좋습니다. 초과수익을 줄 거라고 기대할 만한 비장의 카드를 어쨌든 가졌다고 칩시다. 그런 능력이 평균적인 성과를 얼마나 압도하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런 종류로 흔히 거론되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2. 타이밍을 못 맞혀도 괜찮을까


종목 선정에 실패해도 남들보다 싸게 사고팔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관한 간단한 실험 하나를 먼저 소개합니다.


두 명의 투자자가 있습니다.(구별되는 색으로 표시해 드립니다.) 이 둘은 1985년부터 2025년까지 매달 1,000 달러씩 여윳돈이 생깁니다. A는 현금 전부를 주가지수에 꼬박꼬박 투자했습니다. 역사적 저점을 알아볼 수 있다면 이 방식이 너무 한심해 보일 텐데요. B가 바로 그런 초능력자입니다. 그래서 대폭락의 가장 밑바닥에 이른 타이밍에만 투자합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은행 예금통장에서 연이율 3%의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B는 은행에 모아둔 돈으로 1987년 블랙 먼데이, 1990년 쿠웨이트 전쟁, 2001년 닷컴버블 붕괴, 2008년 부동산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금리인상의 약세장 저점에 주가지수를 풀매수합니다. 부럽네요. B가 주가지수로 바꿔 저장한 자금은 바닥에서부터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에 넣어둔 돈이 겨우 연간 3%씩 자라며 ‘평균’ 속도를 갉아먹습니다. 그동안에도 A의 속도를 상징하는 주가지수는 연평균 9.3%씩 커졌습니다. 덕분에 무능력자의 성과도 B가 거둔 수익에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습니다. B의 자산이 5,856,736 달러가 되는 동안 A도 5,958,830 달러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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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대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가격이 비싸건 말건 기계처럼 매수한 투자자초능력자를 이겼다는 건 이 실험의 교훈이 아닙니다.(어차피 B는 최고점에서 매도할 줄은 모르는 반쪽짜리 천재였으니까요.)


평범해도 꽤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40년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 '평범한' 거라면요. 만약 B에게 적절한 때에 매도하는 초능력도 있었다면 결론이 달랐을까요? 내친 김에 다음 글에서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타이밍의 문제를 끝까지 한번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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