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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말 Sep 03. 2020

오늘의 음악 '그 여름의 마지막'

어느 라디오 PD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곡

달력은 9월로 접어들었는데, 마치 장마철 같은 비가 퇴근길에 퍼붓는다. 아직 한낮엔 폭염주의보인데 라디오에선 벌써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을 틀어준다. '벌써?'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잠깐, 노래를 듣다 보니 민소매 아래 팔뚝이 조금 허전한 것도 같다. 역시 음악 한 곡으로 공기까지 달라진다.

끝 곡으로는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흘러나온다.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좋아하는 노래에,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른다. 페이드 아웃되는 노래가 아쉬워 광고가 나오는데도 혼자 더 따라 부른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신보를 기다리며, 음반을 한 장 한 장 사모으고, 한 음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듣고 또 듣던 소박한 음악팬으로서의 기쁨은 언제부터인가 잊고 지냈다. 밥벌이에 바쁜 어른이 된 많은 소년소녀 음악팬들처럼 말이다.
한편으론 배운 게 이거라고, 시사프로그램을 맡을 때 이외에는 늘 노래 듣고 선곡하는 게 업무인 라디오 PD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나만의 취향을 따라가는 음악생활은 도외시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듣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취향대로인 프로그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입맛대로인' 선곡이 아닌가를 자기 검열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말이다.


신입시절 한 선배가 해준 말이다. "지가 듣고 싶은 노래 트는 게 제일 잘못된 피디야."

이 말은 늘 선곡표를 짜는 내 귓가에서 맴돈다. 직업인으로서의 음악 듣기와 개인으로서의 음악생활을 분리해야 하건만 공력이 짧아서 그런지 잘 안된다.



그래도 오늘 밤만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빛과 소금 때문에 오랜만에 생각나는 '내 취향'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빛과 소금의 '그 여름의 마지막'. (참고로 나는 이 곡을 라디오에서 한 번도 틀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정말 슬프게도 어느 라디오에서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 여름의 마지막 (빛과 소금 4집)





나를 두고 떠나버린 당신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 되어  

외로운 내 맘에 스며드네


하늘 가득히 저 하늘 가득  

찬 비가 내려도

견딜 수 없는 나의 마음을  

희미한 내 모습을 그리네


그 피아노 음악과 그 노랫소리 들으며  

내리는 비에 우는 내 마음

그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해  

그 여름의 끝엔 비가 와


나를 두고 떠나버린

당신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 되어

외로운 내 맘에 스며드네


그 피아노 음악과 그 노랫소리 들으며  

내리는 비에 우는 내 마음

그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해  

그 여름의 끝엔 비가 와


그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해  

그 여름의 끝엔 비가 와

그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해  

그 여름의 끝엔 비가 와

그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해  

그 여름의 끝엔 비가 와




박성식 씨가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렀다. 장기호 씨가 '세기의 미성' 박성식 씨가 '세기의 탁성'이라고 주거니 받거니 하던 두 분 특유의 심심한 개그가 생각난다. 고운 목소리는 아니지만, 감정 없이 부르는 박성식 씨의 건조한(?) 목소리가 이 노래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내리는 비에 맞춰 실연에 우는 남자의 사연이 담겨 있지만 이 부분보다는 '그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해 / 그 여름의 끝엔 비가 와'라는 후렴구의 반복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노래다. 느린 보사노바 리듬이, 철 지난 바닷가에 서 있는 듯이 쓸쓸하다.


왜 대부분 여름의 끝은 지루하고 쓸쓸할까? 왜 그런 지루하고 쓸쓸한 여름은 비가 오면서 끝날까?

이 노래가 불현듯 생각나 찾아 듣게 한 오늘 같은 날처럼.

올해 여름처럼 지루하고 쓸쓸한 여름의 끝이 또 있을까? 언제 끝날지 모를, 아니 영원히 끝은 나지 않을지도 모를 코로나 한가운데의 여름은 시작도 끝도 어딘지 모를 만큼 지루했다. 끝을 모르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지루했고 쓸쓸했고 허했다. 손님처럼 찾아온 존재가 역으로 우리가 살던 방식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당황스러움 앞에서, 생전 처음 맞는 것 같은 가을 앞에서 여름의 끝은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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