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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말 Sep 05. 2020

오늘의 음악 '정원영1집- 가버린 날들'

어느 라디오 PD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곡


요즘 맥심 커피 광고에 삽입돼 사람들의 사랑을 또 한 번 받고 있는 노래, 김현철의 '오랜만에'다.

원래 유명한 곡이라 광고를 위해 리메이크를 했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 광고 이전부터 최근 '시티팝'이라는 장르가 재조명되면서 시대를 앞서갔던 우리 가요의 시티팝의 전설 곡들을 하나둘 리메이크하는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근 몇 년 동안 음악 프로그램하고는 담을 쌓고 있어서 음악 트렌드를 너무 몰랐다. 시티팝을 검색해서 유튜브 속을 이리저리 흘러 다녀 보니, 내가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유행가들 중에 시대를 앞서간 윤수일, 나미 등의 이름이 다시 추앙받고 있어 반가웠다. 물론 앞서 얘기한 김현철은 이 씬에서 태조 이성계였다.


시티팝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몰랐어도 김현철은 내 손으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출발선이다. 그 이전까지는 TV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들을 좋아라 했었지만, 나 스스로 음반이라는 것을 골라서 샀던 것은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김현철 1집이 처음이었다. 김현철을 기점으로 나의 음악생활은 이리저리 뻗어나갔는데, 많은 가지 중 아주 굵은 발자국을 남긴 것이 정원영 1집이다.



며칠 전 방송국에서의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들로 머리가 쑤셔오던 채 집으로 향하던 퇴근길, 차 안 라디오에서 정원영 1집의 '가버린 날들'이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서 거의 듣기 힘든 곡이라 "우왓" 하며 볼륨을 높이는 순간, 깨달았다. 중학교 때 친구랑 둘이 음반가게 가서 구입했던 정원영 1집 LP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한 술 더 떠, 그게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결혼을 하면서 친정의 내 방과 물건들은 거의 챙겨 오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혼자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시면서 거의 40년 묵었던 우리 집의 대부분 짐들을 나는 다 버렸다. 다만 오디오 같은 중요한 가전들은 아빠가 알아서 이삿짐으로 옮기셨는데, 그중에 있었는지 아니면 청소년기에 소중하게 모았던 친구들과의 편지나 영화 전단지들과 같이 버려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아빠마저 돌아가시면서 아빠가 가졌던 짐들도 거의 대부분 처분하고 아빠의 LP 컬렉션 중에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것 몇 개와 오디오 시스템만을 챙겨 왔으니 몇 번의 살림 정리 중 어디에 쓸려 들어가 버려졌는지 알지 못한다. 어찌 그동안 이 생각을 한 번도 못했는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아빠의 꽤 많았던 LP 컬렉션 중에 내가 챙겨 온 것은 스무 장이 채 안된다. 비교적 앨범 쟈켓이 멀쩡한 것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내가 챙겨 온 LP들은 아빠가 거의 듣지 않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아빠가 좋아하던 LP들은 쟈켓은 너덜너덜 낡고 만지면 찐득할 정도로 손때가 묻었으며 때로는 쟈켓도 없이 판만 돌아다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독한 담배냄새까지 베인 그 LP들을 도저히 집에 들여놓을 마음도, 자신도 없어서 모두 집 정리해주는 업체에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설사 그것들이 나중에 꽤나 값이 나간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무엇이든 옛날과 단절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는 참 마음이 급했나 보다.  




가버린 날들 (정원영 1집)      



그런 눈길 어울리지 않아요

후회라는 말은 정말 싫어  

언젠가 따스했던 우리만의 비밀  

그 기억 속에 머물러요


낯선 꿈을 좇던 시간들

그대 역시 나에겐 꿈인가

가까이 있어도 건널 수 없는 그대

나를 불러 손짓하고

나 떠나가네


아~ 가버린 날들 다시 찾는다면

우~ 그대 가슴 가득 나의 마음 나의 사랑 전할 텐데

아~ 가버린 날들 다시 돌아와요

함께하던 시간

그때 그대로 머물러요




93년, 그때만 해도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었던 큰 음반가게에 저녁 무렵 친구와 함께 가서 정원영 1집을 사던 기억이 새롭다. 테이프를 살까, LP를 살까? 고민하다가 LP로 샀던 기억도 난다. '가버린 날들'이라는 제목처럼, 이제는 지나가 버린 날들이 가끔 생각난다. 기억은 시간에 비례해 소멸하는데도, 이런 규칙에 맞지 않게 시간이 갈수록 명료하게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다.

정원영의 '가버린 날들'을 라디오에서 다시 들으면서 이 노래도 요즘 각광받는 시티팝의 소위 '띵곡'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티팝이 아니더라도 분명 시대를 앞서간 세련된 명곡임엔 분명하다. 올해 정원영 씨가 벌써 60살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라디오 PD를 하는 16년 동안 아직 아쉽게도 정원영 씨와 방송에서 만나는 행운은 없었다. 하지만 팬으로서 언제나 그의 노래들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유튜브에선 80년대 씨티팝들을 리믹스해서 올리는 젊은 뮤지션들도 있고, 이걸 듣고 옛날 곡들을 즐기는 10대, 20대들도 많던데, 정원영의 '가버린 날들'을 누가 리메이크 또는 리믹스해서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아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리면 아쉬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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