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인투 더 와일드>

by 얼룩말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한달 정도 있고 싶다"

"누가 아니래."

가끔 친구들과 내용도 없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템플 스테이 정도나 꿈꿀까, 그것도 쉽지는 않지요.

이런 마음을 넷플릭스가 알았는지, 꽤 옛날에 나온 이 영화를 갑자기 올려주었네요.

<인투 더 와일드 (into the wild)> , 또는 야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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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논픽션 작가 존 크라카우어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크리스토퍼라는 실제 미국 청년의 이야기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이 청년은 현대 물질문명에 회의를 느껴 가진 돈을 모두 기부하고 알래스카로 빈털털이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닥친 자연 앞에서, 그는 결국 혼자서 이겨내지 못하고 버려진 버스 안에서 사후에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청년이 자신의 발자취와 생각을 일기장에 적어놓았던 것이 버스 안에서 발견됨으로써 작가는 이 내용을 소설로 재구성할 수 있었던 건데, 전에 이 영화를 대충 봤을 때는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알래스카라는 살벌한 자연 속에서 과연 준비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데 넷플릭스의 추천은 참 신기하게도, 똑같은 영화인데도 지금은 담담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네요.

그리고 알고보니 영화의 감독은 숀 펜, 음악은 펄잼의 에디 베더의 목소리가 전편에 걸쳐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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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만 몰두하면서 서로를 상처내고 싸우던 부모님 밑에서 회의를 느끼던 크리스토퍼. 삶의 진리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현대 물질문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 청년은 알래스카까지 가는 무전여행 중에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그 중에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히피들도 있고, 정 반대의 방식으로 살아온 노인도 있었죠. 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굽힘없이 무모한 발길을 옮깁니다.


결국은 알래스카 땅에 도착해 아주 오래전에 버려진 폐 버스를 발견하고, 거기서 생명을 이어가지만 갓 20대가 된 청년은 생존 기술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작은 동물 같은 것을 잡아 먹었지만 생존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큰 곰을 어쩌다 잡았지만 훈제 기술이 없어서 모조리 벌레가 뒤덮어버립니다. 가져온 야생 식물 도감을 보고 식물을 섭취하다가 독성풀을 먹게되어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죠.


이러는 동안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습니다. 인생의 진리는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인류의 온갖 위대한 책들을 그는 계속 탐독합니다.

아래 사진은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사진입니다. 그가 사진기로 스스로 남겨놓은 필름도 이 버스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선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엔 한줌밖에 남지 않은 그의 청바지 가죽벨트를 보여주고, 점점 흐려지는 시야를 보여줍니다. 영양실조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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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현대 물질문명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거부감은 당연히 있지만,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쌓아온 지식과 기술들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누적된 것들입니다. 심지어 버려진 폐 버스 조차도, 그것이 없었다면 크리스토퍼는 단 이틀도 자연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물고기를 잡아서 염장하거나 말리는 방법만 알았더라도, 빗물로 식수를 만들어 먹는 방법만 알았어도, 독성 식물을 구별하는 방법만 알았어도 그의 생존 가능성은 올라갔을 거고, 사실 이 것은 현대 물질문명과는 상관없는 부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장년층에게 최고로 사랑받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네요. <인투 더 와일드>보다 훨씬 슬기로운 쪽은 이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요.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들은 생존의 지혜가 있고, 먹는 것과 건강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시더라구요. 생존을 위한 투쟁이야말로 내가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임을 받아들이는 전제가 아닐까.


알래스카 외딴 강가에 버려졌던 이 버스는 이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이후에 유명 명소가 되서, 여러 무모한 여행각들이 이 곳을 일부러 찾아가다가 낙오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면서, 구조에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서 결국 얼마전에 이 버스를 철거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비극적으로 죽은 곳인데 참. 아이러니 합니다.

크리스토퍼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숀펜의 연출과 에디 베더의 목소리와 함께여서 담담히 볼 수 있었던 <인투 더 와일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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